인생여행자의 조직문화 탐사기

'선생님 말씀 잘 듣고!'의 함정_조직문화 탐사기_정연

수평적이고 생산적인 회의문화를 만들기 위해 버려야 할 것

2023.05.29 | 조회 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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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렇게 인사하고 집을 나설 때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말씀이 있었다. “그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비단 나만의 어린 시절 일상 경험은 아닐 것 같다. 우리네 부모님들, 어르신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을 때 배움이 일어난다고 믿고 계셨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들어왔던 이 문장이 가끔 내 안에서도 떠올라서 등교하는 나의 아이에게도 불쑥해 버릴 뻔한 기억도 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믿음은 선생님의 가르침은 옳다는 가정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위험 관리 측면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하면, 나보다 앞서 걸어간 사람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신뢰, 집단주의 속에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때 공격을 받거나 배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 저변에 깔려있지 않았나 싶다.

 

어린 시절 이런 대화의 경험과, 실제 학교생활에서 선생님과 학생 간의 관계에서 직접 했던 수직적 경험은 고스란히 나의 일터로 연결되었다. 선생님의 자리에 선배와 팀장이 자리하고 나는 다시 학생의 의자에 앉게 된 것이다. 물론 직무 경험이 많고 역량이 높은 선배와 팀장을 통해 업무와 관련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 잘 듣고!”의 문장이 “선배와 팀장님 말씀 잘 듣고!” 로 치환되는 순간, 수평적이고 생산적인 토의나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pixabay_startupstockphotos
ⓒpixabay_startupstockphotos

 

당신의 지난주 회의 경험을 한번 떠올려 보자. 통상적으로 매주 하는 주간 회의든지, 아니면 특정한 주제를 갖고 모인 회의든지, 그 회의를 마음속에 잠시 그려보자. 누가 가장 많은 시간 이야기를 했나? 한 토픽에 대한 회의에 참여한 구성원들 간 대화가 오고 간 빈도수가 어떠한가? 한 사람의 주장에 대해 다른 사람이 반박하며 토론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는가? 토론의 상황에서 심리적 안전감을 느꼈는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축구로 말하자면, ’시간‘이라는 공을 누가 가장 오랜 시간 점유했는가? 슛하기 전까지 선수들 간 패스는 얼마나 자주 했는가? 일방적인 공세로 게임이 끝났는가? 아니면 치열한 공방전으로 필드 양쪽 진영을 오가며 열띠게 경기가 진행됐는가? 그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선수로서, 실수에 따른 비난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심리적 안전감을 느꼈는가? 라는 질문으로 치환해 볼 수도 있겠다.

 

정확한 통계를 내기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각자의 경험에서 위 질문들에 대해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는 답을 하기란 어려웠을 것 같다. 회의 시간에 가장 오랜시간 발언을 한 사람은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의 발언에 반박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건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더 공부해야하는‘ 부진아라는 걸 증명하는 것과 다름 아니라는 시선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혹시나 지목받을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수첩이나 패드에 무언가를 끄적였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우리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얼마나 다른 의견과 생각을 주고 받는지에 대해서도 떠올려보면 그런 회의 장면이 그리 많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 역시 오랜기간 그런 회의를 수없이 참여하며 살아왔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장유유서’와 같은 유교적 전통, 동아시아의 문화적 맥락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가 비단 가정이나 일터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 깊게 자리 잡고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론, 그런 풍토를 꼭 바꿔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두 가지 점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다.

먼저, 우리 일터에서 점점 다수가 되어가는 MZ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서 반영되는 건 일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는 조직 몰입과 지속적인 근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러한 바람이 큰 그들에게, 상명하복의 수직적 지시와 소통의 회의가 어쩌면 그들에게 회의라기보다는 ‘폭력적 지시’의 자리일 수 있다.

다음으로, 조직 차원으로 살펴볼 때도, 조직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변화와 혁신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된다. 그러려면 구성원들의 다양한 시선이 담긴 의견이 활발하게 교류될 때 혁신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수평적이고 생산적인 토론문화가 우리 회의의 일상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본다.

 

ⓒunsplash_benjaminchild
ⓒunsplash_benjaminchild

 

시선을 잠시 해외 다른 나라로 돌려서, 우리와 유사하게,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 거의 없고 ‘인적 역량’으로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를 이끌어야 했던 이스라엘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2,000년에 걸친 디아스포라를 거치고 나서 척박한 황무지에 정착하면서, 농업혁신과 과학기술 기반 창업 국가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유대인들의 질문과 창의성, 그리고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텔아비브대학의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지오라 야론의 말이다.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간 우리나라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전략으로 지금까지의 성과를 이루어왔다. 이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처럼 앞서 나가는 선진업체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효율을 더함으로 가능했다. 빠르게 잘 배우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산업군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이 필요한 상황으로 변화하면서, ‘질문과 토론’을 통한 혁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 시작과 기반에 ’수평적이고 생산적인 회의 문화‘가 있다.

 

한 명의 구성원으로 회의문화를 바꾼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나의 리더가 바뀌어야 하고 회사가 바뀌어야 가능하지.’라고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 회의부터는 조금 더 용기를 내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보는 건 어떨까?

2006년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 전쟁 중이었을 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이스라엘에 50억 달러의 투자를 결정한 바가 있다. 당시 워런 버핏은 이렇게 말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이스라엘 땅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다브카(davca)’에 투자한 것이다.” 다브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뜻으로, 상황과 여건이 어떠하건 그 제약에 굴하지 않고 새롭게 방안을 모색하고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우리의 일상의 삶에, 특히 회의의 일상에, 이 ’다브카‘를 가져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이고 생산적인 회의를 위해 작은 시도를 만들어 가보면 어떨까? 나부터 실천을 다짐하며 살며시 제안해 본다.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자동차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9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자동차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인생여행자 정연, 19년차 HR 매니저, 9년차 요가수련자, 14년차 아빠로 살아갑니다.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습니다.
인생여행자 정연, 19년차 HR 매니저, 9년차 요가수련자, 14년차 아빠로 살아갑니다.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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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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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ra.jin

    1
    11 months 전

    스타트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ㄴ 답글
  • penlady

    1
    11 months 전

    모범생이란 '모든 것이 평범한 학생'을 뜻한단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ㅎㅎ 당연해 보이던 것에 질문을 던질 때 개인과 조직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직급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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