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련을 받던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자살 위험이 크거나 정신증적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주로 입원하는 폐쇄병동과,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신경증적 환자들이 입원하는 개방병동이 구분되어 있었다. 외부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는 폐쇄병동과 달리, 개방병동은 타과 병동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당시의 개방병동에는 기운이 없고 무기력하다는 문제로 입원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우울하다’고 본인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았다. 그분들의 진료차트에는 대개 이러이러한 통증 때문에 내과나 정형외과 등에서 진료를 봤지만, 의학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없어 정신건강의학과로 전과되어 왔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분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슬프다’, ‘속상하다’와 같은 감정 언어 대신 ‘기운이 없다’, ‘저릿하다’와 같은 신체적인 문제에 대한 단어가 많이 나왔다. 몸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늘 함께 달려 나왔다.
어떤 분은 중년의 정점을 지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가끔은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통증도 나타났다. 역시 다른 의학적인 문제는 없었다. 그분의 통증은 몸의 이상 반응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꾹꾹 눌러왔던 마음의 해소 반응이었다. 남편에게는 실망한지 오래였고, 삼 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시부모와 갈등을 견디며 그나마 아이들이 자라는 낙으로 지내왔다. 삶의 모든 우선순위가 아이들에게 있었다가 막상 아이들이 독립할 나이가 되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긴 시간 동안 원망, 서운함, 분노가 켜켜이 쌓여오다가 가슴과 머리의 통증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부풀 대로 부푼 튜브의 끄트머리 솔기 사이로 바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과 같았다.
신체화란 자신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신체 증상으로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의학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어지럼증, 소화 불량, 통증, 무감각 등 의학적인 증상을 계속 느끼는 것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이를 억압된 심리적 갈등이 신체증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시험 기간의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것처럼 신체화 증상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나만 해도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거나 걱정이 많은 날에는 쉽게 소화 불량에 걸리곤 한다. 이유 없이 소화가 잘 안되면 ‘무슨 일로 마음이 괴로운 걸까’ 하고 되짚어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유독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이러한 신체화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 이는 문화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타인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권이기 때문에 심리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자칫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고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으므로 신체 언어와 같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게다가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 ‘나약하다’거나 ‘의지력이 없다’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쉽지만 몸이 아프다고 하면 위로와 보살핌을 받는다. 아파서 조퇴를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슬프거나 울적해서 조퇴를 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러므로 ‘열받는다’, ‘속이 쓰리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다’와 같이 신체 언어로 감정을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신체화 증상을 많이 보이는 편인데, 여성에게 보다 제한이 많은 문화권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여성이 표현하는 심리적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이를 신체적 문제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신체적 증상이 심리적 고통의 또 다른 언어가 된다.
사실 지금도 몸은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르고 있던 긴장을, 그리고 미처 인식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알려준다. 내가 가장 극적으로 이를 알아차린 것은 집단상담에 참여할 때였다. 집단상담은 리더의 지도와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 패턴을 알아차리고 성장하도록 돕는 상담의 한 형태이다. 그날 리더는 상담 세션을 시작하면서 ‘지금 여기서 느껴지는 마음 상태를 이야기해 보라’는 주문을 했다.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상담사들이었는데도, 순간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는 모두 힘들어했다. 감정 상태를 잘 모르겠다는 우리에게, 리더는 ‘신체 반응’에 열중해볼 것을 권했다.
낯선 참여자들 사이에서 긴장해있던 나는 몸의 상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얼굴이나 어깨의 긴장 상태, 경미한 두통과 복통, 열감이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감각이 가장 강렬한 곳에 주의를 기울이자, 몸이 건네는 메시지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가슴이 쿵쾅거리다가 배 한 쪽이 아려왔고, 어깨와 팔의 근육이 긴장으로 단단해진 것이 느껴졌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평소에 내 몸이 이렇게 생생하게 나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었던 것일까. 치열하게 갈등 중인 내 마음도 보였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도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모두의 시간을 허비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설임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속에 있는 무언가는 ‘나가고 싶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온몸으로.
그제야 명백하게 느껴졌다. 내게 절실한 감정과 충동을 억누르는 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을 말이다. 온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던 셈이었다. 평소 이러한 억눌린 감정이나 충동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쌓이다 보면 때론 갈 길을 잃고 몸으로 비집고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
내 몸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머리가 딩-하다’, ‘가슴이 눌린 것처럼 갑갑하다’, ‘어깨가 뻐근하다’와 같이 몸의 언어 그대로 불러줘도 괜찮다. 답답하고 결리고 무거운 신체 감각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잠시 머물다 곧 사라지기도 한다. 그것대로 괜찮다. 하지만 그 감각이라는 줄기 아래 욕구와 감정이라는 고구마를 줄줄이 발견하게 될 때도 있을 테다. 그때의 몸의 언어는 자기 검열에 걸려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욕구를 찾게 해주는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을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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