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어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기 전에 ‘사서 고생하는 것 같은데?’하는 질문이 들 때가 있다. 일상의 고민과 어려움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을 내 삶으로 초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자기 보호 본능적 반응‘ 같은 것이다.
얼마 전 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그랬다. 칸 후보작으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소개해 줬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었는데, 국내 개봉하고 막상 예매까지 해놓은 다음에도 보기 전까지 볼까 말까 망설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 보고 나면 분명 힘들 텐데.’ 하는 마음으로.
공감력이 높은 편인 데다가 타자의 고민을 내 삶으로 끌어들여 오는데 탁월한(?) 나는, 보기 힘든 영화나 책을 마주하고 나면 며칠 동안 앓기도 한다. 이제 막 보고 난 시점이어서 이 영화의 후폭풍이 어떨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살짝 걱정도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 볼만해? 보기를 추천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흔쾌히 꼭 한 번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전날 집에서 본 영화 <한나 아렌트>와도 연결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입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시각과 청각의 대조로, 세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루돌프 회스’ 가족의 안온한 일상과 대비되는, 끊이지 않는 비명과 굴뚝에서 피어나는 검은색 연기는 담장 너머의 비참함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부정의에 대한 민감함을 지닌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다른 선택도 선명하게 보였다. 단순히 악을 악마화하는데 머문다면, 복잡성(Complexity)이 가득한 현실에서 정의를 실천할 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깨우침도 준다.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장면 속에서, ‘학습과 질문을 바탕으로, 비판적 성찰과 저항’을 하지 못할 때의 참담함과 해야 할 당위도 말해준다.
얼마 전, 텍사스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강남순 교수님께서 ‘정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강연에서 풀어내셨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새겨보게 된다.
‘빛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어둠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약 80년 전,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인류에 대한 학살’ 사건을 보며, 2024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1) 정의에 대해 어떤 예민성을 가져야 할지, 2) 차별과 부정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인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3) 학습과 질문을 통해 비판적 성찰과 저항의 일상화를 시도하며, 깨어있는 이들과 어떻게 연대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저녁 시간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한나 아렌트>, 강남순 교수님 강연을 순차적으로 접하면서 하나의 커리큘럼처럼 경험하며 학습했다. 민감성, 감수성, 예민성을 가지고, 조직 안 지금의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야겠다.
#존오브인터레스트 #한나아렌트 #악의평범성 #강남순교수님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0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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