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해 줘서 고마워요. 잘 먹어주어 고마워요.”
지난 2주 동안 아빠를 바라보며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말이다.
그의 하루는 밥을 먹는 것, 정확하게 밥을 ‘먹어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암이라는 세포들이 아빠의 몸 사이 사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고, 밥 한 숟갈을 넣고 삼키려 하면 통증은 그를 공격해 버렸다. 그때마다 아빠는 두 눈을 질끈 감거나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 속의 음식을 씹었다. 가끔은 식탁 앞에서 하염없이 그릇만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볼 때도 있다. 하루 세번, 이십 분 남짓이면 비울 수 있는 밥 한 공기를 먹으려면, 그에게는 한 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아빠 잘 드시고 있네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 보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여러 감정이 엉켜버린다. 그렇게 오전은 천천히 혹은 빠르게 흘러갔다.
불과 몇 주 전까지도 엄마가 아빠를 바라보며 건네던 “잘 먹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출근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때, 나의 시야에 들어온 그는 식사를 잘 하고 있었다. 고작 밥 한 그릇 비우는데 엄마가 왜 고맙다는 말까지 해야 하는지, 가끔은 엄마가 너무 과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전 휴직을 하고 아빠와 온전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며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먹는 것이 살기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치열한 시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빠는 하염없이 보내는 식탁 앞에서 가끔 말했다. 밥 한 숟가락은 생명을 이어주는 끈이라고 말이다. 그때부턴 나도 모르게 식사 시간마다 “아빠, 먹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중이다.
오후가 되면 아빠는 양 손에 등산 스틱을 쥐고 밖으로 나선다. 그의 속도로 집 밖 거리까지 나아가는 데는 적어도 5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헉, 헉, 헉”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스무 걸음을 채 걷기도 전에 그는 양손의 스틱을 가운데로 모으고 온몸을 기대 한숨을 몰아 쉰다. 나는 그의 옆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속도를 걷다 멈춰서 그에게 말한다 “아빠 잘 하고 있어요. 운동해 줘서 고마워요.” 나의 발걸음으로 고작 10분도 채 안되는 거리를 걷기 위해 그에게는 꽉 채운 50분이 필요했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옆을 지키는 것과 가끔씩 건네는 목소리 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시작했다.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은 오전 시간을 보낸 아빠와 나는 거실에서 함께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아빠가 좋아하는 장르였고, 나와 아빠는 영화 속 인물과 내용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가끔은 깔깔거리며 두 시간을 꽉 채웠다. 그 순간만큼은 병이나 아픔이라는 공기는 단 한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자 마자 나는 “아빠 우리 저 영화 다음 편은 같이 영화관에서 봐요.”라는 말을 꺼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다시 기나 긴 저녁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아빠와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것 한 가지가 더 있다. 다이어리에 숫자를 붙여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습관이었다. 그와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단조로워진 일상 중에서 무슨 내용을 노트에 적는지 궁금해졌다. 아빠가 다이어리를 쓰는 시간, 무슨 내용을 채워가는지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서는 아침부터 시간 순으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촘촘하게 적힌 기록들이 늘어났다. 흔적들을 따라가 보니 지난 2주 동안 매일 나의 이름이 그의 노트에 쓰여진 것도 찾았다. 식사, 산책 옆에는 ‘지은이와’라는 한 마디가 더 달려 있었다. 내가 더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오늘 날짜 자리에는 ‘지은이와 영화’ 라는 문구가 달려있을 것 같다.
매일 아침 가족들은 아빠를 관찰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제보다 얼굴 색이 나아졌는지, 피곤한 기색은 사라졌는지, 기운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리고 푹 자고 일어난 아빠를 바라보며 “오늘도 고마워요. 일어나서 같이 밥 먹어요.”라는 말을 건네본다.
* 글쓴이: 지은이
우연히 만난 이들과 함께 만든 순간을 기록합니다.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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