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와서 가장 어색했던 장면이 있다면 가는 곳마다 사람 옆에 강아지들이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크고 작은 강아지 한마리쯤은 꼭 보게 된다. 이동 가방에 들어가있지도 않고, 종종 목줄이 풀려있으며, 대부분 입마개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인 발 밑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주인이 내릴 때면 얌전히 함께 내린다. 한참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지루한지 하품을 하며 졸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가끔 동물이 아니라 사람같다는 생각도 든다.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마찬가지다. 식사하며 대화를 하는 주인의 테이블 아래 얌전히 앉아있는 강아지들은 다른 테이블에 눈길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다. 물론 어쩌다 주인이 먹던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진 않을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음식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단 한 번 눈길을 주지 않고 주인이 식사를 마치면 조용히 주인을 따라 식당을 나선다.
동물은 원래 예측 불가하고 통제할 수 없이 본능에 충실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규칙과 사회화라는 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인 줄마나 알았다. 특히 대형견일수록 공격력이 높기 때문에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위기감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독일에 온 지 3년차가 된 지금 어딜 가든 강아지들이 사람 옆에 마치 사람처럼 에티켓을 지키며 앉아있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강아지가 귀여워서 몰래 옆테이블에서 눈짓을 하고 손짓을 해도 그 강아지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다. 낯선 타인에게 손짓 눈짓하며 귀찮게 구는 것은 에티켓에 어긋나는 일인데, 마치 강아지도 알고 있는 에티켓을 나만 어긴 것 같아 무안하게 관심을 거두곤 한다.
실제 독일인들이 강아지를 교육시키는 장면을 보면 냉정하고 엄격하다. 거리를 걷다 맞은편에서 나를 향해 노인과 커다란 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저 걸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내 앞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지점에서 노인은 개의 목줄을 거칠게 당기며 마치 잘못했다는 듯 ‘안 돼!’하고 호통을 쳤다. 단지 그 개는 나를 빤히 바라봤을 뿐이었는데, 바라보는 행위 자체로 엄하게 가르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비슷한 일은 자주 있었다. 그저 귀여워서 다른 테이블의 강아지를 쳐다봤는데, 그 강아지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빤히 쳐다보자 주인이 시선 자체를 차단시켰다.
그제서야 다른 개들도 눈에 들어왔다. 주인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 이 곳의 수많은 강아지들. 사람을 보면 짖거나 물면 안 된다는 지침이 아니라,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갖지 말라는 엄격한 훈육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관심이라도 끌고 싶어서 눈짓하고 손짓했던 나의 행동이 강아지 훈육을 방해하는 실례였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아차 싶었다. 그 후론 아무리 귀여운 강아지를 봐도 슬쩍 곁눈질만 할 뿐이다.
개들이 입질을 하고 큰소리로 짖는 유일한 한 가지 경우는 지나가는 다른 개를 마주쳤을 때 뿐이다. 물론 그 때마다 주인이 강하게 목줄을 당기고 통제해서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거나 사고가 발생하는 건 보지 못했다. 그럴 때면 저 얌전했던 개들도 영락없는 강아지일 뿐이구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강아지들이 여태 사람에게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견해보이기도 했다.
독일의 개들은 한국에 비하면 털도 꼬질꼬질하고, 덥수룩하고, 눈빛도 기운이 없어보여서 한 때는 오히려 한국이 강아지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 사람의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갖는 기세 등등한 한국에서의 강아지들에 비해 얌전하고 가끔보면 위축되어 보일 정도로 조용하지만, 오히려 이 곳의 개들은 그토록 엄격한 훈련 덕분에 주인과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동 가방 안에 넣을 필요 없이 주인과 함께라면 걸어서 지하철도 탈 수 있고, 식당도 가고, 카페도 간다.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대신 주인과 어디든 갈 수 있는 독일의 개들이 달라보였다. 덕분에 엄청난 자유를 누릴 수 있던 것이다.
물론 강아지가 출입 불가한 가게도 있다. 그럴 땐 문 앞에 목줄로 묶어놓아야 하는데, 마치 자기 자리인 듯 익숙하게 자리 잡고 누워서 주인을 기다린다. 대형 마트는 주로 출입이 불가해서 장보러 갈 때면 입구에서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을 볼 수 있다. 한 번은 마트 주차장에 묶여서 외로운 늑대마냥 하울링을 하는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잠시 후 한 할아버지가 헐레벌떡 나와서 강아지를 데리고 가는데, 저 개는 더 사회화가 되어야 주인이랑 여기저기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개인데도 왜 유독 독일에서는 엄격하게 훈련이 되어 있는 걸까? 주별로 상세한 내용에 차이는 있겠지만, 독일에서 개를 키우려면 시에 개를 키운다는 등록을 해야하고, 견세(Hundesteuer)를 내야 한다.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개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인지 확인을 받아야 하고, 의무적으로 산책을 시키고 교육을 시켜야 한다. 즉 법적으로 개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인지 주 정부가 확인을 하고 매년 세금을 내므로 공공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귀엽다고 누구나 다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견주가 될 자격이 있는지 정부가 확인하는 절차가 선행된 덕분인지 이 곳의 개들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에 맞게 잘 훈련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화하고 있듯이 사람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강아지도 학습하게 되는데, 어쩌면 강아지에게는 이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이 곳의 강아지들을 보며 다른 사람을 쳐다보기만 해도 엄하게 교육하는 모습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규칙을 학습시키는 것보다는 그저 사랑만 주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하는 것이 강아지를 위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규칙이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으면, 오히려 더욱 강제적인 제한 조치가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동 가방에 넣어야 하고, 허가된 펫카페만 갈 수 있고, 입마개를 씌우는 등 더 많은 제한이 필요해진다.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을수록 대부분의 강아지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인을 따라 어디든 갈 수 있는 강아지와 모든 것을 다 해주지만 오직 집 안에서만 자유로운 강아지 중 누가 더 진짜 자유로울까?
넓은 잔디밭, 어린 아이가 신이 나서 달려간다. 그리고 아이가 달려가는 방향의 몇 미터 앞에는 중형견 한 마리가 햇볕을 즐기며 졸고 있다. 달려오는 아이를 보면 순간 놀라서 강아지도 짖거나 으르렁거릴만 한데, 아이를 보자 고개를 돌려 옆으로 피한다. 또 나 혼자 아찔했던 장면이었다. 아이도 강아지도 평화로웠다. 강아지를 믿는다기보다는 견주를 믿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사람과, 특히 어린 아이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개들의 천국. 천국을 만들기 위해선 더 엄격한 규칙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참고 - 재밌는 사실은 불과 옆 나라인 프랑스만 가도 강아지들이 기세 등등하고 사람을 향해 왕왕 짖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여기 개들은 독일 개처럼 점잖지가 못하네” 하고 남편과 농담하기도 했다. 파리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오는 기차 안, 주변의 개 승객들이 점잖게 앉아있는 걸 보며 말했다. “교양있는 강아지들 보니 독일에 오긴 왔나보다”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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