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출처. Wikimedia)
금기의 사랑이었던 것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주연한 영화 '캐럴'(2015)이 개봉했을 때, 아름다운 영상미와 섬세한 감정 묘사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두 여성의 금기된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사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2년에 발표한 소설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을 원작으로 하죠. 현대 관객들에게는 아름다운 로맨스로 다가오는 이 이야기가 당시에는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소금의 값'은 레즈비언 로맨스를 다룬 소설 중에서 행복한 결말을 제공한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동성애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고, 문학에서 동성애자 캐릭터는 비극적 최후나 '치료'를 통한 이성애자로의 전환이라는 결말을 맞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패트리샤는 테레즈와 캐럴이라는 두 여성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용기 있는 선택을 했습니다.흥미롭게도 패트리샤는 이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클레어 모건(Claire Morgan)이라는 필명을 사용했죠. 그는 이미 '재능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로 문학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작가였지만,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 자신의 경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습니다. 이는 그의 에이전트의 주장이기도 했고요. 소설이 출간된 후, 패트리샤가 자신이 '소금의 값'을 집필했음을 인정하기까지 약 4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영화 '캐럴'은 원작의 정서를 충실하게 담아냈습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패트리샤가 글로 표현한 억압된 욕망과 사회적 제약,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사랑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죠. 특히 1950년대 미국의 물질주의와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테레즈의 여정은, 패트리샤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캐럴'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 억압에 맞서 자신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시대를 앞서간 작가 패트리샤 패트리샤의 용기를 보여주는 증거이죠. 영화가 개봉된 2015년,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패트리샤가 60여 년 전에 꿈꾸었던 세상이 비로소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골몰하는 모습의 패트리샤 (출처. Courtesy Swiss Literary Archives)
범죄의 심리를 해부한 거장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하면 많은 독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단연 '재능있는 리플리'와 그 후속작들입니다. 톰 리플리라는 매혹적이고 위험한 캐릭터를 통해, 패트리샤는 범죄 소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고, 독자들이 반사회적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드는 그의 능력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습니다.패트리샤의 소설은 단순한 '누가 범인인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대신 '왜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는가'라는 심리적 탐구에 집중합니다. 그의 소설 속 범죄자들은 괴물이 아닌 인간입니다. 그들은 두려움, 욕망, 불안, 소외감 등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죠. 톰 리플리는 특히 정체성의 유동성과 자기 창조의 욕망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패트리샤의 대표적인 창조물입니다.'리플리' 시리즈 외에도 '두 얼굴의 사나이(Strangers on a Train)', '심연의 땅(Deep Water)' 같은 작품들은 패트리샤의 심리 스릴러 작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의 소설에서는 종종 평범한 인물이 상황에 의해, 혹은 자신의 어두운 욕망에 의해 범죄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과정이 묘사됩니다. 히치콕이 '두 얼굴의 사나이'를 영화화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두 거장 모두 인간 심리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공유했으니까요.패트리샤의 소설들은 출판 당시에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 스릴러와 범죄 소설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패트리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죠. '나를 찾아줘(Gone Girl)', '샤프 오브젝트(Sharp Objects)' 같은 현대 심리 스릴러들은 패트리샤가 개척한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복잡한 여성 캐릭터, 도덕적 모호함, 사회적 불안의 탐구 등 패트리샤의 주요 테마들이 현대 소설에서도 반복됩니다.끊임없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인간 심리의 어두운 구석을 탐구하는 패트리샤의 작품 세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도발적입니다. 그는 단순한 범죄 소설가가 아닌,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진 문학적 거장으로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영화 캐롤에서 테레즈와 캐롤의 첫 만남 (출처. 캐롤 영화 갈무리)
패트리샤의 삶에도 캐럴이 있었다
'소금의 값'은 패트리샤의 작품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작가 자신의 경험과 욕망이 강하게 투영된 자전적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1948년, 패트리샤는 뉴욕의 백화점에서 일하던 중, 모피 코트를 입은 금발의 우아한 여성 고객을 만납니다. 그 짧은 만남은 패트리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그는 열병에 시달리며 단 이틀 만에 '소금의 값'의 초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소설 속 테레즈가 백화점에서 캐럴을 처음 만나는 장면은 패트리샤 자신의 경험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실제로 패트리샤는 그 여성의 주소를 고객 기록에서 찾아내어 그의 집 근처를 배회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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