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투표를 하는가?

정치의 주체가 된 여성들

2025.06.03 | 조회 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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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유권자로서 한 표를 행사하는 날입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처럼 느껴지는 한 장의 투표용지가 한때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무지하거나 감정적이라는 편견 아래 배제되었고, 그 침묵은 너무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죠. 

그렇다면, 여성은 언제부터 투표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여성 유권자들은 어떤 목소리와 마음을 가지고 투표장에 들어설까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여성 참정권의 역사부터 선거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적 실현에 이르기까지를 다루어 보려 합니다.

 

한국 여성 참정권의 역사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여성의 정치 참여는 너무 감정적이거나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가정을 돌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수없이 무시되어 왔습니다. 그런 시대에도 '정치는 누구의 것인가'를 질문하고, 거리로 나섰던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여성에게 처음으로 투표권이 부여된 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거부터입니다. 광복 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의 보통 · 평등 · 직접 · 비밀선거권을 보장했고, 그 안에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로써 한국 여성들은 세계적으로 비교적 빠른 시기에 참정권을 얻은 셈이지만, 이것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어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정치적 요구와 해방 후 여성단체들의 목소리가 이 권리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국회 Ⓒ 에너지데일리
대한민국국회 Ⓒ 에너지데일리

당시 여성 단체들은 단순한 교육이나 복지 문제가 아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분명히 주장했습니다. 해방 직후 결성된 조선 여성동맹, 대한부인회 같은 조직들은 여성도 독립된 국민이자 정치 주체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요구했죠. 남성 중심의 정치 질서에서 '여성도 투표할 수 있다'는 선언은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를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여성의 투표권 제도의 이면에는 수많은 여성의 말과 글, 행동과 연대가 있었습니다.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던 존재가 '주체'로 등장하는 일은 항상 저항과 상처를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여성에게 투표란, 단지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도 여기에 있다"는 선언과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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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유권자는 단일 집단이 아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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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담론에서 '여성 유권자'라는 표현은 종종 하나의 통일된 집단으로 간주하곤 하는데요. 실제로 여성 유권자들은 나이, 계층, 지역, 결혼 여부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 성향과 투표 행태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20대 여성은 진보 성향을 보이지만, 50대 이상의 여성은 보수 성향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여성표'를 단일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요구와 관심사를 이해하고, 반영하는 정책을 제시해야 하지만 단순히 여성 유권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접근하는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봄알람 Baume à l'âme X에 올라온 투표인증용지 Ⓒ X
봄알람 Baume à l'âme X에 올라온 투표인증용지 Ⓒ X

최근 몇 년간 정치권에서는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여성 혐오적인 발언이나 정책을 통해 남성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 했지만, 이는 여성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반면, 젠더 감수성을 갖춘 정책과 발언을 통해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얻은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여성 유권자’라는 이름 아래에도 수많은 삶의 조건과 정치적 입장이 공존합니다. 누구도 누군가의 대표로 쉽게 대변될 수 없듯, 여성 유권자 역시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가 이 복잡성과 다양성을 외면하지 않고,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성을 하나의 ‘표’가 아닌, 다양한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 그 지점에서부터 더 포용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정치의 판도를 바꾸는 여성의 한 표

정치계에서 여성 유권자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은 다양한 연구와 선거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인들이 여성 유권자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함을 시사합니다.

그 예시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이 처음으로 남성보다 높았으며, 특히 40대 여성의 지지가 박근혜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여성 유권자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제2~7회 지방선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후보자의 수와 이전 선거에서의 여성 당선자 수가 많을수록 여성의 투표율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 유권자가 정치적 대표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치 참여에 적극적임을 나타냅니다.

Ⓒ 시사IN
Ⓒ 시사IN

한국 정치에서 여성 유권자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2030 세대 여성들은 후보들의 공약을 면밀히 검토하며, 정치인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스타트업인 뉴닉, 어피티, 뉴웨이즈의 대표들은 약 7,000명의 2030 세대 응답자들의 의견을 모아 '표심의 정석'이라는 자료를 제작했습니다. 이 자료는 저출생, 주거난, 기후 위기 등 주요 사회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을 담고 있으며, 이를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하여 정책 반영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제21대 대선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권영국 후보자 4명의 여성, 성평등 공약 비교 / 자료.남은주 칼럼니스트 Ⓒ 평화뉴스
제21대 대선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권영국 후보자 4명의 여성, 성평등 공약 비교 / 자료.남은주 칼럼니스트
Ⓒ 평화뉴스

그렇다면, 21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여성/성평등 정책은 여성들의 바램에 부합할까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여성가족부 및 성평등 추진 기구에 대한 입장입니다. 성차별을 인지해야 젠더 인식을 바탕으로 성평등 정책을 세울 수 있고 이를 실행할 독립적 부처 및 행정 집행 구조가 갖춰져야 각 부처가 성평등을 실현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이 있음을 인정한 후보는 이재명과 권영국 후보이나 여성가족부 강화와 성평등 추진체계를 공약한 후보는 권영국 후보가 유일하죠. 

그럼에도, 우리는 분명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2030 여성 유권자들은 공약을 ‘읽는’ 수준을 넘어, ‘검증하고, 요구하고, 비교’하는 능동적 정치 주체로 떠오르고 있죠. 후보들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지적하고 바꾸려는 유권자들의 움직임은 훨씬 앞서 있습니다. 정치는 언제나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와 참여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니까요. 정치인들은 이제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으며, 실질적인 정책 반영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할 시점입니다.

 

투표는 끝이 아니라 시작

선거 때마다 여성 정치인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 여성은 소수입니다. 21대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19%에 불과하며, 이는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죠. 정당 공천, 지역 기반, 정치 경력 등 구조적인 제약 속에서 여성의 정치 진출은 여전히 좁고 험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인의 존재는 단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여성의 삶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정책이 마련되고, 젠더 감수성을 반영한 의제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성 정치인의 ‘등장’ 자체로 변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과연 그 이후, 여성 정치인은 실질적으로 여성 유권자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을까요?

독일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 Ⓒ 경향신문
독일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 Ⓒ 경향신문

물론 여성 정치인의 등장은 여성 유권자들에게 상징적입니다. 정치권에서 여성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수적 균형이 아니라, 정치 담론에 여성의 목소리가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상징이 곧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정치 안에서 여성의 존재감이 커졌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여성 정치인은 당론과 조직 논리에 묶여 젠더 이슈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여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도덕적 책임을 요구받고, 특정 역할에 갇히기도 하기 때문이죠. 결국 정치가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몇몇 여성 개인이 아닌 제도와 환경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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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유권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입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정치인을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고 압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젠더 이슈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뜨거울수록, 여성 유권자들이 지속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주도하는 힘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투표는 그 첫 번째 행동일 뿐, 정치 참여의 끝이 되어선 안 됩니다.

진짜 정치는 선거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여성 정치인을 당선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여성이 정치 안으로 진입하고, 그들이 여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그 과정을 유권자인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정치를 함께 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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