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다시 발명한 무용수, 피나 바우쉬

소통의 부재, 그러나 소통하려는 인간

2024.08.13 | 조회 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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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지난 8월 7일 입추가 지나고 더위가 한 풀 꺾이긴 했지만 아직 매미가 울고 에어컨을 틀어야하는 여름입니다. 구독자님은 올해 어떤 피서를 하셨나요? 감자 농부인 에디터 N은 작년보다 더 많이 물놀이를 다니면서 더위를 조금씩 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다녀온 강원도 삼척은 마치 외국의 바다 같이 아름답더라구요. 물놀이 뿐 아니라 다양한 실내 활동으로 피서를 하기도 하죠.

이번 여름엔 한 작가의 전시회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파리의 건축가라, 페데리카의 특별한 여정이라는 전시였죠. 물놀이처럼 직접적으로 체온을 낮추는 피서는 아니지만 예술 작품을 통해 일상을 벗어나는 것 또한 확실한 피서 방법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림, 사진, 뮤지컬, 뮤직페스티벌,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죠.

페데리카의 특별한 여정 전시 포스터
페데리카의 특별한 여정 전시 포스터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연극 같은 무용인 탄츠테아터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신표현주의 방식의 무용을 이끌어 내며 1970년대 이후 현대 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피나 바우쉬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이죠.

그럼, 오늘의 피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카페 뮐러를 공연 중인 피나 바우쉬 (출처. 이투뉴스)
카페 뮐러를 공연 중인 피나 바우쉬 (출처. 이투뉴스)

소통의 부재를 다룬 작품, 카페 뮐러

피나 바우쉬는 독일 졸링겐이란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모부의 밑에서 자라며 형제자매들과 함께 일을 도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리고 바로 직후에 그의 모부는 이 식당을 운영했죠. 식당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습니다. 피나는 사람들이 나누는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슬픔과 분노 등 여러 감정과 관계를 관찰하며 사람들을 이끄는 근본적인 것들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유년시절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 녹아들게 되었고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페 뮐러(Café Müller)에서 표현되는 소통의 부재, 기다림, 외로움은 유년시절 모부의 식당에서 관찰한 인간 군상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피나는 '어렸을 때의 경험들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무대 위에서 재현되곤 한다'라고 이야기 했죠.

카페 뮐러는 피나의 초기작 중 하나로 공허, 상처, 소통의 부재, 위태로운 관계와 같은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전합니다. 관계 안에서 온전히 소통하지 못함으로써 오는 고통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죠. 짧고도 불확실한 스텝, 탄식, 두 눈을 감고 무언가를 갈구하듯 팔을 뻗어 공간을 부유하는 무용수들은 번뇌와 고독 그리고 우울로 황폐화 된 전후 독일 사회에 대한 메타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나는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며 괴로운 감정에 초점을 맞춘 초기 작품들에 대해 크게 입장이 변했다며, 이미 세상에 괴로움이 많기 때문에 이를 무대에서까지 재현할 필요성에 대해서 고심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카페 뮐러 중 세 여남의 반복 프레이즈

 

2004년 통영바닷가에서 남해안별신굿을 관람하는 모습 (출처. 더프리뷰)
2004년 통영바닷가에서 남해안별신굿을 관람하는 모습 (출처. 더프리뷰)

문제작들을 공연하는 안무가

모부의 식당에서 항상 춤을 추고 뛰어다니는 피나를 본 졸링겐 극장 합창단원들을 통해 다섯 살의 피나는 극장의 어린이 발레 교실을 다니게 됩니다. 무용과 피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죠. 어린 피나는 첫 수업에서 유연성을 칭찬 받았고, 이후 무용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갑니다. 그리고 예술학교인 폴크방 스쿨에 진학하여 당시 독일 무용계의 주축이자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요스에게 지도를 받습니다. 요스는 학생들이 요스 자신의 테크닉이나 스타일을 배우고 모방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상상력과 개성을 발휘하도록 지도했습니다. 피나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 중 하나로 요스를 언급했음에도 그의 작품에서 요스의 흔적을 크게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폴크방 스쿨에서 그는 무용을 비롯하여 연기, 회화, 음악, 조각,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하고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석으로 폴크방 스쿨을 졸업하여 특별 장학생에 선발되어 미국 줄리아드 스쿨로 유학을 떠났죠. 당시 무용의 황금기를 맞고 있던 미국에서 피나는 예술 감독 튜더의 눈에 띄었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무용수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폴크방 스쿨에서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던 예술가들과 무용 황금기 미국에서의 경험은 피나의 예술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그의 작품에 낯선 문화에 대한 포용성과 장르의 규칙을 두려움 없이 벗어나는 대담성으로 나타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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