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12.3 비상계엄'이 일어난 지 두 달 가까이 되었다. 일련의 이번 사태는 현직 대통령의 체포, 구속기소, 탄핵심판 출석 등 우리나라 헌정사상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기록 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여러 기록 관련 단체가 모여 '기록관리단체협의회'의 이름으로 이번 시국에 대해 지난달 12월 10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공공기록물 관리와 관련한 생산 맥락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관련 공공기관이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기록물을 온전히 보존하도록 촉구하며, 정보공개센터는 국군방첩사령부 관련기록물 무단폐기에 대해 고발했다. 전국에서 일하는 기록연구사들이 국가기록원이 위치한 대전정부청사에 근조화환을 단체로 보낸 '이벤트'는 특히 기록인들의 기억에 강렬히 남았을 것이다. 각 기관에서 1인 기록관 체제에서 어렵게 일하는 연구사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공공 기록관리 체계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기록 전문가로서도 내상이 작지 않았음을 짐작하는 일이었다.
한편으로 이번 사태는 기록 분야에 희망 또한 가져다 주고 있다. 이번 '12.3비상계엄'은 비록 몇 시간 만에 해제되었지만, 이를 역사의 한 페이지로 보고 이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록학 전공자가 아닌 이들도 이번 사태는 '우리의 역사'이므로 '무언가 기록해야겠다'는 직감을 한다. 특히 2024년 12월 21-22일 '남태령 대첩'(전국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을 계기로 남태령에서의 시민발언을 비롯해 당시 일어난 놀라운 여러 현상을 기록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많다. <기록과사회>에서도 지난 1월 6일자 뉴스 클립핑을 통해 비상계엄 기록의 아카이빙을 하는 언론사, 단체, 개인 등을 소개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최근에 만난 비상계엄 이후의 일련의 상황을 기록하고자 하는 여러 주체를 소개한다. 이들은 지난 1월 22일 서울 모처에서 한 차례 모임을 갖고 각자 어떤 주제로 어떤 대상을 수집, 정리하고 있는지 내용을 공유하는 간담회를 가진 바 있으며, 이 자리에서 3월 초 계엄 및 남태령대첩, 그리고 아카이브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을 논의했다.
12.3 계엄사태와 민주주의의 위기 "12.03아카이브"
'12.03아카이브'는 <기록과사회>에도 한 차례 소개되기도 했지만, 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석박사생 및 교강사들이 모인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기록과정보·문화연구모임'에서 만들었다. 지난 1월 3일 비상계엄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될 무렵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록 수집은 이보다 훨씬 앞서 시작했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12월 4일 새벽 2시부터 모임 설립 선언문을 발표했고, 이후 비상계엄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집회 참여 기록, 담론 기록(성명서, 선언문, 밈)은 물론, 내란 세력의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준동에 맞선 다양한 기록을 수집하였다. 관련 공공기관의 '행정기록'과 정치 진영별 '시사유튜브' 컬렉션을 별도로 두었다. '국내언론', 언어권별 '해외언론'은 관련 기록을 수집, 정리 중이며 기술이 마무리되는 대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12.03 아카이브는 사건의 발생 시점과 기록 시점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오픈 아카이빙으로 실시간 공개를 목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록관리자보다는 기록 활용 대상을 고려했다. 이용자들을 고려하여 단순한 검색으로 정확한 검색 결과가 출력될 수 있도록, 유형별 최소한의 필수항목을 산출하여 메타데이터 항목을 설계했다. 그러나 향후 확장성을 고려하여 기존 기록관리 메타데이터 23개 상위요소, 66개 하위요소, 58개 세부 요소의 3계층 중 상위요소의 필수요소 12개를 산출할 수 있는 요소로 일반적인 기록관리시스템에의 적용을 염두에 두었다(변선영, 2025).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2024년 12월의 목소리들"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곳곳에서 발표된 성명과 자보를 수집한다. 초기에는 대학가에 부착된 대자보를 중심으로 수집을 시작하였는데, 이후 성명서나 자보가 부착된 장소, 작성자 관계 없이 이번 '계엄 선포' 관련 성명과 자보를 수집하고 있다. 누구나 관련 성명과 자보의 사진을 촬영하여 연구소가 마련한 양식에 제보할 수 있다. 성명과 자보의 이미지 파일을 업로드하고, 이미지의 출처(사진촬영자 등), 연락처 등을 남기면 된다. 수집된 자료는 이후 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남태령 대첩 아카이빙팀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부산대 여성연구소 최나현 씨는 동료들과 함께 남태령 대첩을 비롯해 이번 비상계엄과 관련한 광장에서의 여성들의 집회 참여를 취재하여 오마이뉴스에 연재기사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남태령 대첩에 참여한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취재하였기에 이름을 '남태령 대첩 아카이빙팀'이라고 정했다. 이후 인터뷰를 거듭 진행하면서 “2030여성의 (탄핵) 집회 참여 경험”으로 주제가 확장되었다.
어느 사회든 여성의 목소리는 충분히 기록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는 곧 남성의 역사인 세월 속에서 여성의 삶과 경험은 진지하게 적히지 못했다. 누군가 어렵사리 기록을 만들더라도, 소수만 공유하거나 손쉽게 유실되었다. 그래서 여성은 늘 계보와 관계에 목말라한다. 나와 비슷한 여성이 이전에 없었는지, 주변에 없는지 찾아다닌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질문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들은 것을 쓰기로 했다. 우리의 작업이 여성들의 갈증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 된다면 더 바랄 것 없겠다.
최나현(2025.1.19). 페미니스트가 유시민에게 고함, 우리의 목소리를 읽어라-현장에서 밤낮없이 힘쓰고 있는 여성들...이게 우리의 삶이다. 오마이뉴스 연재"백날 지워바라 우리가 사라지나" 1화.
비상행동 사회대개혁특별위원회 시민발언 분석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은 지금까지 신청한 시민발언문의 내용을 수집하고 있다. 2024년 12월 5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집회부터 지금까지의 시민발언자는 330여 명이다. 집회에서 발언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온라인 신청을 통해 발언문을 미리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시민들의 발언문에는 윤석열 퇴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개혁과 관련한 의제를 담고 있다. 비상행동에서는 이러한 시민발언문을 취합하여 워드클라우드와 연결망 등의 형태로 분석하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질적분석을 할 계획이다. 온라인 신청은 하였지만, 집회에서 실제 발언으로 참가하지 않은 발언문 또한 분석 대상으로 분석 결과는 오는 3월 9일 비상행동 사회대개혁 대토론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롤링다이스 전자책 "(가제) 우리는 왜 이곳에 모였나"
전자책 출판사 롤링다이스는 2030 여성들의 (탄핵) 집회 참석을 주제로 한 전자책 출판을 기획하고 있다. 2030대 여성들이 어떤 생각과 심정으로 집회에 나갔는지, 이 모든 과정이 어떤 방식의 저항이길 바랐는지, 시위에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번 탄핵 집회가 첫 집회 경험인 경우에도 이번 사태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여 참여할 수 있다. 지난 12월 18일부터 저자모집을 하였으며 현재는 저자가 마감된 상태이다.
개인 단위 계엄&집회 아카이빙
SNS에서도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시민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트위터리안 '이울'은 지난 1월 7일부터 개인 단위의 시민발언 아카이빙 활동을 하고 있다. 12.3 내란 이후 각종 집회에서 소중한 시민 발언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수집할 필요성을 느껴 제보 창구를 만들었다. 발언문, 대자보, 성명문, 집회 사진 및 동영상, 시민 깃발 이미지 파일 등을 제보 링크를 통해 업로드하면 된다.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을 공부하는 김해은 씨는 이번 비상계엄과 집회를 주제로 한 '아카이브의 아카이브', 메타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다. 다양한 단체와 개인이 작업한 아카이브를 한 데 모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꾸준한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발언문 아카이브'를 만들어 여러 집회 유튜브 라이브 속 시민발언, 혹은 발언 신청은 했으나 선정되지 못한 서랍 속 발언문을 한 데 모아 열람하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남태령대첩'과 관련하여 주최 측(전농TV)의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 기록이 삭제되면서, 이를 복원하는 작업을 최근 진행하였다.
또한, 계엄 정국을 지켜보는 우리의 트위터 데이터를 모아 재구성한다. 네트워크 분석을 비롯한 정량분석을 하는 밑거름을 마련하는 동시에, 트위터 서비스에 어떤 변동이 생기더라도 자료를 보존할 수 있게 한다.
2024년 12월 3일의 기억을 찾아봅시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당시의 기억을 수집하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2024년 12월 3일 계엄 당일 국회의사당에 달려간 시민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12월 21-22일 남태령 대첩에 참여한 시민들의 기억 또한 수집 중이다. 방송사인 KBS에서도 '12.3 비상계엄 증언 채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의 다양한 증언을 수집한다는 캠페인을 공개한 바 있다. 증언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제보 이메일(1203@kbs.co.kr)로 증언을 신청하면 된다.
함께 쓰는 12.3 비상계엄의 역사
공공역사는 광범위한 공중(Public)을 지향하는 공적 역사 표현의 모든 형태를 의미한다(마르틴 뤼케, 이름가르트 췬도르프 지음, 정용숙 역(2020).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34쪽). 역사서술, 재현, 활용, 그리고 실천이 전문 학술활동을 넘어 사회의 공적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표현 및 실천은 물론, 공중이 주체가 되는 실천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번 12.3 비상계엄 이후에 등장한 시민들의 아카이빙 활동을 공공역사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까. 다양한 주체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각자의 역사 표현을 공공역사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전문가는 아니지만 뭔가를 기록해야 겠다'고 느끼는 시민들의 직관적인 생각에 기록인들이 어떻게 공감하고 무엇을 함께 해야 할 것인지는 기록인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 아직 '함께 쓰는 12.3 비상계엄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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