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기50] 하루는 시 쓰는 날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이번엔 마지막까지 시를 고치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전 늘 월초에 시를 완성해놓고 여유 있게 재신을 재촉하곤 하는데요. 이번엔 써둔 시가 미묘하게 미완처럼 느껴져서 뭐가 문제지 몇 주간 고민했어요. 어젯밤에는 재신에게 페이스톡을 걸어 대체 뭐가 문젤까 한참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도무지 고칠 방법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 시는 그냥 이렇게 생긴 시인가 보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마무리해야지 생각하고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커피 덕분인지(단골 카페 사장님이 히든 메뉴라며 한 잔을 더 주신 덕에 더블 카페인 각성 효과를 맛보았습니다) 한 연을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초고와 비교해보니 훨씬 낫더라고요. 딱 한 연이 더해졌을 뿐인데요. 그런 방식의 수정이 가능하다니 시는 참 재밌지요. (소설가 친구들을 놀리고 싶네요)

금요일이고요, 저녁입니다. 좋네요. 한 주 마무리하며 저희 글을 읽어주신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차재신

중고 이미지 판매

이번 시의 제목은 ⟨인공 파도⟩. 그렇다. 지지난달부터 쓰려다 실패했던 단어를 드디어 사용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짧은 시가 나왔다. 시의 첫 문장은 말 그대로 바다를 생각하며 썼다. 바다에 갈 때면 보통 바다 자체보다는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부터 고려하게 되니까. 내가 발을 담그거나 거닐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출발한 시다. 바다를 보러 가는 건데 막상 바다보다 바다의 주변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이상해서.

일부러 다루려고 한 것도 아닌데 요즘 내가 쓰는 시들에서 빛과 물이 자주 나온다. 아마 빛과 물이 지닌 특징 때문에 그런 거겠지. 둘 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구체적이고 흔한 사물이지만, 동시에 아주 추상적이라고 느껴진다. 피부에 닿고 온도가 느껴지며 마실 수도 있지만 뚜렷하게 떠올릴 만한 원본이 없는 이미지. 그런 모순적인 부분이 나를 계속 쓰게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미지에서 더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예전에 시를 쓸 때는 한번 썼던 소재는 웬만하면 다시 안 다루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게 나오면 좋으련만, 막상 그러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시를 쓰는 것조차 힘겨워진다. 그 마음을 내려놓은 후로 시 쓰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일단 뭐라도 써야 하니까. 마음을 계속 붙잡는 게 있으니까 쓰게 되는 거겠지, 하고.

내가 물과 빛으로 무엇을 해소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다만 계속 붙잡히기만 할 뿐이다. 요새는 붙잡히면 붙잡힌 대로 내버려둔다. ‘시인처럼’ 말하자면 ‘이미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 위해, 다르게 말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쓰려고 노력한다. 시가 나오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그렇게 해야 재밌으니까. 재밌어야 계속하게 되니까. 왜 계속해야 하는 거지? 거기까진 생각 안 한다.

예전에 한창 AI와 놀던 시절. 첨단 인공지능조차 시 쓰기가 재미없으면 할 가치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당시에 시 쓰는 게 정말 힘들었다.

연정모

몸 쓰기

겨울은 정말 싫다.

또 저 소리네 해도 어쩔 수 없다. 겨울은 정말 싫다.

요 며칠은 그다지 춥지 않았지만, 그리고 올 겨울 역시 (갑작스런 이상 한파가 종종 찾아오는 것 외에는) 평년보다 훨씬 기온이 높을 것이라 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침침하고 피로하다. 사무실을 벗어났을 때 바깥이 캄캄한 것을 보면 숨이 막힌다. 뭔가 잘못되었어. 

심지어 어제는 미세먼지가 내내 ‘최악’ 상태였다. 방독면을 쓴 검은 얼굴 아이콘이 홈 화면에 떠 있었고, 세 시간에 한 번 꼴로 알림이 왔다. 위험! 절대 밖에 나가지 마시오! 먼지를 들이마셔서인지 종일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머리가 탁하고 코와 목에 불편감이 있었다. 집을 향해 걸어갈 때쯤엔 콜록콜록 다 지겹기만 했다.

그러나 겨울은 시 쓰기 좋은 계절이다. 기본적으로는 야외활동이 어려우니 집에서 뭐라도 쓸 시간이 늘어난다는 이유도 있겠고, 낮이 짧다는 것도 한몫하겠다(울적하다는 뜻이다). 시의 재료로는 기쁨보다 불쾌감이 훨씬 적합하기에, 불편과 울적은 꽤 큰 도움이 된다. 심지어 겨울에 느끼는 불쾌감은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타당하다.

이 감정은 다른 무엇도 아닌 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추위를 싫어하는 건 타당하다. 사람의 신체는 추우면 굳고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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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원고를 묶으며 마음먹은 게 있었다. 다음 시집에서는 세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싶다는 거였다. 지금까지 써오고 모은 시편들은 나의 탄생과 나의 기분으로 가득하다. 그 세계에서 타인은 나의 바깥 혹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일부로만 등장할 수 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건 아니고, 단지 그렇다는 거다. 

그것에 대해선 충분히 썼으니 다음번엔 좀 더 세계에 대해 쓰고 싶다는 마음인 것인데(지난 메일에서도 적은 ‘좋은 이야기 만들기’와도 연결된다), 해본 적이 없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우선 너무 거대한 말이라는 문제가 있다. 세계에 대해 쓰기, 라니. 지인들에게 이 얘길 하면 사회 현상에 대해 쓰고 싶다는 말이구나?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것만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다른 예시로 설명하기가 아직은 어렵기 때문에 애매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나의 바깥에 있는 세계, 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부터 생각해본다.

세계에 속한 대상 중, 내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나의 몸. 

정직하고, 실체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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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엔 귀신과 몸에 대한 시 두 편을 동시에 썼다. 한 편을 쓰다 보니 나머지 한 편의 제목이 떠올랐고, 첫 문장이 떠올랐고, 그러다 보니 이것과 저것을 번갈아 쓰다가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중 한 편인 〈몸 산책〉을 11월의 시로 보낸다. 

겨울에는 몸이 번거롭고 불편하다. 내 것 같지 않다. 언제라도 강가에 내다버릴 수 있는 남루한 외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새 몸 사는 이야기를 썼는데, 어떻게 읽힐지는 모르겠다. 동지와 귀신과 팥죽과 작은 겨울새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지만 이 시에서는 여기까지만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에 대해 쓸 거라고 구구절절 썼지만, 이건 그런 종류의 시는 못 된다. 다만 나의 매개로서의 몸에 대한 연습처럼 써보았다. 어딘지 밍숭맹숭해 보인다면 정상이다. 의도했다고 말하면 변명 같겠지? 그러나 나는, 내가 매달 어디까지 고민했는지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일단은 감사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덧) 

아직 동지까지는 한 달여가 남았는데 벌써 팥죽 타령인 걸 보니 동짇날을 어지간히 기다리나 보다. 그 하루만 안전히 지나면 밤이 짧아지기 시작한다는 게 그렇게 희망적일 수 없다.  

덧2)

그나저나 내가 귀신 얘기를 자꾸 쓰니까 재신은 내가 귀신을 안 무서워하는 줄 아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며칠 전에도 꿈 밖의 꿈(악몽에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눈 뜬 곳도 꿈속인 것. 침실과 똑같이 생겼다는 점에서 악질이다)에서 귀신 목소릴 듣고 새벽에 깨서 다시 잠들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밖에서 아빠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잤다. 사실 거실 나가서 아빠 옆에서 잤음.

🚶생활기

차재신: 일주일에 하루는 게임만 하는 날, 하루는 일하는 날, 하루는 헬스 하는 날, 하루는 농구만 하는 날, 하루는 책 읽는 날, 하루는 시 쓰는 날로만 구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근데 제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네요. 세상은 아름다운데 저 혼자 아름답지 못한 삶입니다.

연정모: 쓸쓸해지는 일이 많은 걸 보니 초겨울인가 봐요. 어제 일정을 마치고 나니, 혼자 흑맥주 한 잔 마시며 청승 떨고 싶더라고요. 근데 바깥으로 나서자마자 너무 추워서 그냥 집 갔습니다. 잘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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