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기47] 단순하고 아름답게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지난 메일에서, 서울 퍼블리셔스테이블에 부스로 참여한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성원(🫶!)에 힘입어 무사히 즐겁게 안전히 끝마쳤습니다. 메일을 보고 와 주셨다는 말씀에 “헉 정말요…?” 하고 바보같이 대답하는 저를 보신 분도 계시겠지요. 아래에도 썼지만, 사람들의 기운 사이에 있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몽땅 다 친해지고 싶었어요…. 이렇게 서로 실물 존재를 확인할 기회가 또 종종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주말엔 가족 멤버들과 함께 페스티벌에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지난여름부터 ‘내가 락스타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다소 유치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데요. 이번에 본 무대를 계기로 그 염원이 더 강렬해졌어요(진짜로 락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

이 마음이 문득 생겨난 이유는 단순했어요. 밝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라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다니, 너무 멋지잖아요. 나만 좋아하는 이야기 말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부러웠고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현장에서- 희망찬 가사를 끝없이 이어부르고 싶었어요. 

두렵고 괴롭고 끔찍한 이야기 말고,

깨끗하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이 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새로운 미션입니다.  

차재신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이번 시의 출발은 간단하다. 문득 ‘물숲’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물과 숲이 왜 붙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서로 나름 가까운 단어다. 보통 숲에는 물이 있으니까. 어쨌든 ‘물숲’이 주는 이미지를 쫓아가 봤다.

눈을 뜨자 물숲이었다. 물로 된 줄기로 뻗어나가는 나무와 풀. 빗방울처럼 잎사귀에 앉은 벌레들. 투명한 나무 안에서 물이 흐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은 숲과 같지만 이곳은 모든 것이 물이다. 숲이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숲이 흐르고 있다.

…

그래서 시의 도입부가 이렇게 나왔다. 모든 게 물로 된 숲. 일렁이는 숲의 형상. 그런데 이제 뭐 하지? 역시 시 쓰다 막힐 때는 ‘다른 시인한테 물어보기’가 있다. 그래서 정모한테 물어봤다. “너가 만약 물숲에 떨어지면 어떨 것 같아?” “물숲이 뭔데?” “모든 게 물로 되어 있는 숲이야.” “그럼 난 물놀이할래!”

...역시 도움이 1도 안 된다. 시 쓰다 막힐 때 다른 시인에게 물어보는 건 이 사람이 나와 ‘얼마나 멀리’ 상관없이 떨어져 있는 사람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나는 물숲에서 물놀이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가 개운해졌다. 나라면 이 숲을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벗어나려 했다. 벗어나는 과정에서 다른 것들이 침범했다. 그래서 침범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이번 시 〈물로〉는 그런 내용이다.

시를 읽어 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번씩 듣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대충,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야”라고 한다. 아주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내 시에 별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자기가 쓴 시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시인이 있을까? 일단 나는 아니다.

최근에 명 박사님을 만났다. 명 박사님을 만나면 늘 값진 시간을 보낸다. 내가 ‘시의 내용’에 대해 고민하면 “내용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고 일침을 놓는 척척박사님이기도 하다. 심지어 나한테 술도 사 줬다. 고마워요, 박사님.

나에게는 시만큼 ‘나만 잘하면 되는 관계’가 또 없다. 가끔 모든 것이 변해도 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은근한 안심을 한다. 안심이 된다.

연정모

우정 또는 우정

사흘간의 북페어에서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부스 앞에 멈춰 선 분들도 계셨고, 가까운 친구와 오래간만인 친구들이 번갈아 등장하며 나를 놀래켰고, 멀리 이어져 응원하던 관계들이 반갑게 찾아주었다. 근처 부스의 셀러들과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프로그램 행사장에서 수줍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밌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선 일기를 썼다.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편안했는지에 대해. 밝은 얼굴로 사람들과 인사하는 즐거움에 대해.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편안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 낯가린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너무 많이 좋아하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

예전에도 한번 쓴 것 같은데, 난 어쩌면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얘기 나눠보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좋은 인간이다. 가까워지고 싶다. 그러나 우정이란 종종 복잡스러워서 전부 집어치우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애정을 쏟는 대상’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 힘겨운 일이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우정뿐이 아닌데도 그 괴로움이 크게 느껴지는 건 아마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정은 멋진 것이다, 하는.

*  *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근 몇 달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시집을 보았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집을 탄생시켰을지 생각하는 일은 단순 독서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이 시인이 시편들을 묶고 배치한 방식, 특정 시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시집이라는 신체를 어떠한 형식으로 만들어내려 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어렴풋하게 보였다.

48호로 보내드리는 시 〈이 세계에서 만난 첫 친구〉는 첫 시집 원고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쓴 시다. 시집의 유기성이랄지 통일성을 고려하여 다른 제목의 시를 한 편 쓰려 했는데, 그 제목에 매달리다 보니 내 안에서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얘기를 썼다. 

열차 안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다(이 요약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해리 포터가 론과 처음 만나는 장면의 캡처본을 보았고, 왜인지 강한 인상을 받아 쭉 기억하고 있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명절 특선 영화로 잠깐 본 게 전부고, 둘의 관계성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는데도. 

아무튼 저 둘의 서사와는 조금도 관계 없이 새 친구를 만날 때의 마음에 대하여 써보았는데… 대충 이런 거다. (시 읽는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 길게는 설명하지 않겠다)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작동할 때 우리는 어떤 말씨를 쓰게 되는지. 

그리고 쓰다 보니 알게 된 것. 시를 쓸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 쓰기는 새 친구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고, 뫄뫄를 좋아해’ 보여주고 설명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신나서 떠들다가도 문득 멈춰서게 된다는 것도. 내가 하는 이야기가 뻔하게 들릴까 봐 혹은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봐. 그런 남루함이 있고, 이토록 대담하지 못한 마음이 있고.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원고의 마지막을 다듬을 그 한 편의 시를 못 썼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면 이 시집을 하나의 닫힌 이야기로 두지 않고, 열차에 태워 다른 세계로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그렇기에 이건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시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향할 것이다.

🚶생활기

차재신: 농구 대회 나갔다가 2연패로 예선 탈락했습니다. 이제 좀 '농구가 쉽다'고 느껴질 때쯤 박살나고 마네요. 역시 인생은 평생 우매함의 봉우리를 오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연정모: 10월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어요.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놀고 싶습니다. 11월에는 친구들을 만날 것입니다!

🍀☕

전날 밤에 시 안 써져서 끙끙대다가, 아침 카페에서 후루룩 한 편을 완성했습니다. 아침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