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쓰의 손편지

흔적

2026.10.01 | 조회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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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촌을 걷다가 통인시장 뒤편 작은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창가 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는데, 테이블 위에는 젖은 냅킨과 둥근 물기처럼 조금 전까지 누군가가 앉아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인 듯 보이는 사람이 테이블을 닦으러 와서 젖은 행주로 한 번 훑자 금세 깨끗해졌습니다. 잠시 전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던 누군가의 흔적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습니다. 함께 주문을 할까 망설이던 시나몬빵은 쳐다 보고 말았습니다. 커피를 기다리며 활짝 열린 폴딩도어 너머의 골목을 바라봤습니다. 건너편 작은 꽃집에서는 주인이 밖에 내놓은 화분 사이를 오가며 분주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는 둥근 차양막이 달린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걸음이 우아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생각 하나가 당겨집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많이 남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떠올리는 것은 대개 눈에 보이는 큰 성과나 특이점을 갖는 이름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실제로 우리 마음에 남는 것은 의외로 작은 것들입니다. 식사하러 들어간 음식점에서 물컵을 먼저 채워주는 일, 햇빛이 뜨거운 날 그늘진 자리를 내어주는 일, 헤어지고 돌아서기 전에 한 번 더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 같은 것들입니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들이 문득 떠오르는 날이면 마음 한쪽이 따뜻해집니다.

잠시 뒤 주문한 커피가 나왔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진동벨을 쥐어 주니까 사람이 직접 커피를 테이블까지 가져다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주문한 커피 나왔습니다." 커피를 가져다 준 사람과 카페와 앉은 자리 그리고, 제가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잔을 내려놓자 비어 있던 테이블에 다시 둥근 물기가 생겼습니다.

조금 전 누군가가 남기고 간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일어나면 누군가 또 이 자리에 앉을 겁니다. 주인은 다시 테이블을 닦고 의자를 밀어 넣겠죠. 그러면 제가 남긴 흔적도 금세 사라질 겁니다.

아마 살아가며 남기는 대부분의 흔적도 그럴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금세 지워지고, 이름도 기억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잠시 머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건넸던 작은 친절이나 따뜻한 마음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테이블 위의 물기는 지워져도, 어떤 마음은 조금 더 오래 남을테니까요.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글로 함께 하겠습니다. 문의나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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