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율의 손편지

슬픔의 곁에 있다는 것

2026.10.16 | 조회 24 |
1
|

친구의 오빠가 아이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나는 내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게 너무 아파.”

그 말에 적당한 위로가 없었습니다.

가족의 죽음은 무엇과도 쉽게 비교할 수 없는 비극일 겁니다. 특히 부모가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은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상실의 순서마저 뒤집어놓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슬픔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부모가 느끼는 상실과 형제가 느끼는 상실이 같을 수 없고, 부부가 같은 아이를 잃었다고 해서 그 슬픔의 모양이 같지 않을 겁니다.

누구는 말을 잃고, 누구는 계속 말을 하고, 누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밥을 먹다가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슬픔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사이일수록 알 수 없는 부분이 더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바로, 저는 어머니 혼자 그 집에 남겨둔 채 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때의 저를 누가 이해했을까요.

어머니는 너무 외롭고 지치고 두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어머니의 슬픔까지 껴안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저를 지켜내기 위해 제 생활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일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대신 앓아줄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요.

대신 아파줄 수도, 대신 울어줄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지나야 할 시간을 대신 건너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큰 슬픔 앞에서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자꾸 망설이게 됩니다.

힘내라는 말도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더욱 마땅치 않습니다. 괜찮아질 수 있는 슬픔인지조차 내가 정할 수 없으니까요.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밥을 먹었는지 묻고, 필요하면 옆에 앉아주고, 전화가 오면 받고, 찾아오면 문을 열어주는 일.

그 정도일 겁니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을 굳이 가늠하려 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의 슬픔을 그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되, 그렇다고 혼자 두지는 않는 것.

그리고 멀어지지 않는 것.

어쩌면 곁에 있다는 건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글로 함께 하겠습니다. 문의나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채율의 서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꿈꾸는쵸코파이의 프로필 이미지

    꿈꾸는쵸코파이

    0
    약 8시간 전

    이 마음 너무 잘 알거 같아요... 저도 아버지 떠나보내고... 친구들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내고.. 미오 떠났을때도 누구도 저의 슬픔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들 덕에 잘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슬픔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곁에 있어준다는 것 만으로도 이겨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용...💕💖❤

    ㄴ 답글

다른 뉴스레터

채율의 서와 대화하기
© 2026 채율의 서

글과 책 사이, 잠시 머무는 곳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대표번호: 070-8027-1409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