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가 함께 지켜봐주자._손호영

한유주의 「작별하는 각별한 사람들」을 읽고

2026.10.23 | 조회 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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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리병이에요.

당신의 해변에 편지가 도착했답니다.

  이번엔 어떤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까요?

  같이 한번 읽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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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복도식 아파트는 220세대가 단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함께 쓴다. 출근 시간엔 22층부터 지하 2층까지 엘리베이터가 거의 모든 층에 서는 꼴을 지켜봐야 한다. 가끔 2층에 멈추기라도 하면 사방에서 한숨이 튀어나온다. '지금 장난하냐'는 말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럴 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건물에 붙어 산다는 게 피곤하고 기형적인 일로만 느껴진다.

거의 모든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시간이 또 있다. 화요일 저녁 8시, 재활용품 분리배출 시간이다. 일주일간 쌓인 택배 박스, 플라스틱, 스티로폼 따위를 들고나온 사람들로 엘리베이터는 금세 만원이고, 저층부에선 몇 대를 그냥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아침과 사뭇 다르다. (하필 그 시간에 걸린 배달 기사를 제외하면) 한숨 쉬거나 짜증 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저녁을 먹었고, 좁은 집에 쌓인 쓰레기도 해결하고, 나온 김에 산책도 하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혹은 나와 비슷한 기분일 수도 있다. 이 시간만큼은 우리가 '함께'라는 걸 확인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종이 상자는 펼쳐서 내놓으세요. 스티로폼은 흰색만, 아이스 팩과 테이프를 제거한 다음 쌓아두세요. 모두가 같은 규칙을 지킨다. 뒷사람을 위해 출입문을 잡아주고, 떨어뜨린 페트병을 대신 주워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도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나는 가끔 우리에게 재난이 닥치면 재활용품을 버릴 때처럼 힘을 합쳐 서로를 돕는 장면을 상상한다.

 

한유주의 단편소설 「작별하는 각별한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분리수거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썼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다원예술 전시의 일부로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펴낸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에 실린 작품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몇 줄로 요약하는 건 별 의미가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소설은 인천공항에 막 도착한 영은을 시작으로 민재, 정숙, 젬마, 그리고 이름 없는(혹은 우리가 제멋대로 이름 붙인) 행인들의 시점을 차례로 경유한다. 모두 서로 모르는 사이다. 영은이 입국장을 빠져나온 새벽 세 시 반부터 약 네 시간 사이, 이들은 같은 버스를 타거나, 식당에 들어가거나, 거리에서 스치거나, 그저 바라보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다.

연결되는 건 이들만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읽는 나에게도 끊임없이 '우리'라고 말을 건다. 1월 추위에도 정숙이 담배를 끝까지 피울 수 있도록, 반팔 차림으로 꿈속을 헤매는 젬마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지켜봐 주자"고 한다. 미래에서든 과거에서든 울고 있는 이들이 없도록. 그러다 보면 읽는 나마저 서로에게 "어떤 기대와 희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우리'로 묶여버린다. 대체 어느 대목에서부터 이들에게 속수무책 붙들린 건지, 의식하지 못하는 새 독자를 소설 속으로 잡아끄는 그 자연스러움에 감탄하게 된다.

쥐처럼, 시간처럼,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는 것들. 어떤 사랑, 어떤 연민… 그 가운데서 소설 속 사람들은 서로 "영원히 작별"하는데, 나는 그 전에 이들을 한 번씩 안아주고 싶다.

어떤 소설에 유독 마음이 끌리면 그 이유를 나의 현실과 겹쳐 보며 오래 곱씹는 습관이 있다. 이 소설은 물론 문장이 아름답고,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이며, 언제쯤 이런 노련함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되는 대목이 많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나의 생활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

나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데, 요즘 몇 달간 회사일을 쉬면서 그런 자리를 최소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외롭거나 고립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잠시 구석으로 물러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혹은 사회나 세상과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연결되어 있다는 건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뜻이고, 나 역시 여전히 바깥세상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내 세상과 내 주변 너머의 더 많은 사람을 지켜보고픈 힘을 얻었다.

 

『

전자적 숲 : 더 멀리 도망치기

』, 문학과지성사, 2023 
『 전자적 숲 : 더 멀리 도망치기 』, 문학과지성사, 2023 

 

from 손호영

손호영

2025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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