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리병이에요.
당신의 해변에 편지가 도착했답니다.
이번엔 어떤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까요?
같이 한번 읽어 봐요..!

혼자 스코틀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어느 밤에 에딘버러의 돌 깔린 길을 걸어 골목을 밝힌 펍을 찾았다. 처음엔 긴 테이블에서 혼자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 자꾸 눈이 마주치는 한 여자와 합석을 하게 되었다. 곧이어 가까운 자리에 있던 한 남자도 우리 쪽으로 건너왔다. 우리 셋은 그날 밤,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사랑을 얘기했고 여자와 남자는 죽음을 얘기했다.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여자였다. 에딘버러에서 태어났다는 여자는 맥주 몇 잔 끝에 눈물을 흘렸다. 그날 오전에 자기 집안의 누군가가 죽었다고 했다. 그로써 여자의 집안에는 오롯이 그녀만이 남게 되었다며 여자는 울었다. 아마도 살가운 가족은 아니었을 테다. 그러니 장례식 대신 홀로 펍을 찾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온 남자는 이라크 참전병이라 했다. 숱하게 죽음을 경험했을 그는 띄엄띄엄 지난 기억에 대해 얘기를 했으나 거의 침묵했다. 대신 여자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했던 나는 그때 조부모의 죽음 이외엔 어떠한 죽음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죽음 대신 사랑을 얘기하긴 했으나 그 사랑들은 대개 성공하지 못한, 끝도 여운도 제대로 남지 못한 그런 사랑들이었다. 나는 치기 어린 사랑을 얘기하는 대신 애도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죽음을 잘 알지 못했고 애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흉내만 내었다. 내심 죽음보다 사랑이 우선이라 생각하면서.
보틀레터의 리뷰 청탁을 받고 나는 사랑에 대한 소설에 대해 리뷰를 쓰고자 마음먹었다. 작품은 한창훈 선생님의 「밤눈」으로 일찌감치 정했고 제목도 미리 정해두었다. ‘사랑은 시, 어쩌면 시시’, 라고. 나는 이 소설 속 사랑을 이야기하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얘기하고자 했다.
그런데 재독하는 도중에 마음이 변했다.
「밤눈」이란 소설에서 여자는 자신의 술집을 찾아든 객을 앞에 두고 성공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자는 객이다. 그는 여자를 가리켜 성공이 지나쳐 약간 허전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여자는 가정 있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고 그 사랑은 기한을 정해놓은 불륜이었다.
소설 속 그 밤은 눈이 함뿍 내리는 밤이었다. 눈은 한없이 하얘서 여자의 머리가 마치 양극단의 세계처럼 몹시 새까매 보이는 밤. 객은 그녀를 보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내가 에딘버러의 울던 그 여자를 아름답다고 생각했듯이. 소설 속 여자는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에딘버러의 여자는 죽음을 얘기했다. 슬퍼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힘껏 애도하지 못하고 함부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객은 술집 주인의 성공한 사랑에 대해 이렇다 할 판단은 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술집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던 연유를 밝힌다. 오늘 그 남자가 전화를 해왔노라고.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한 통화라고 했다. 남자는 화장터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겪은 남자는 그 죽음을 애도하며 지난 사랑을 기억해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기로 한 옛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 나는 이 소설이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글인 줄 알았다. 거듭 읽는 동안 에딘버러에서의 밤이 떠올랐고 나는 이 소설은 사랑만이 아닌 죽음을 얘기하는 소설이란 걸 깨달았다. 무게중심은 어쩌면 죽음 쪽으로 더 기울어 있거나, 아예 사랑과 죽음은 같다고 얘기하는 소설일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나는 에딘버러에서와는 달리 여러 사랑을 경험한 상태이다. 또한 무수한 죽음을 경험했고 또 경험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아직 사랑이 뭔지, 애도란 또 뭔지 잘 몰라서 그 경험들 앞에 번번이 무릎이 꺾인다. 무릎이 꺾이는 와중에 나는 결국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랑은 죽음과 동의어라는 걸.
기한이 있는 삶… 삶은 항상 끝을 향해 치닫는다. 그런 중에도 끝이 정해져 있는 사랑을 하고 최종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사랑을 한다는 행위는 죽음을 미리 경험하는 행위이다. 정해진 끝을 미리 경험하고 그 끝에 아무 것도 없음을 경험하는 게 사랑이다.
소설 속 객은 눈과 밤, 밝음과 어둠이라는 양극단 사이에 있다. 술집 주인에게서도 그 양극단을 엿본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으나 문 닫은 술집 앞에서 그가 깨닫는 것은 여자가 전하고자 한 것은 사랑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라는 것. 그녀는 사랑을 애도하고 죽음을 애도한다.
남자가 죽음을 배웅하는 길에 걸어온 전화는 여자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여자는 이미 죽어버린 사랑을 연장하고자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녀는 또 죽음을 경험할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게 될 사랑, 사랑은 곧 죽음이므로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을 애도하게 될 것이다.

from 기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