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Alex
배낭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되도록이면 낯선 나라로요.
며칠 전 「Career Advice」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다음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제가 기대한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커리어 조언 같은 건 묻지 말고, 차라리 알래스카로 히치하이킹이나 다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글쓴이가 궁금해 찾아보았습니다.
목시 말린스파이크(Moxie Marlinspike).
메신저 앱 시그널(Signal)을 만든 암호학자이자,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엔 화물열차에 몰래 올라타 미국을 떠돌고, 낡은 배로 바다를 건넜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글을 다 읽고 나니 설득당해 있었습니다. 아니, 설득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까웠습니다. 떠나야겠다는 확신.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저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려 합니다.
어딘가에 멈춰 있다고 느끼거나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에디터 픽!
- 직업은 신중하게 골라라. 직업이 당신을 바꿔놓을 테니까.
- 일등석에 앉는 걸 목표로 삶의 선택을 쌓아간다면,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의 칙칙함까지 고스란히 물려받기 십상이라는 걸 나는 안다.
- 하지만 젊은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 것을 모두 제쳐두고, 그곳에서 일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다... 사람들을 보라. 거기에 당신의 미래가 있다.
- 그렇게 깔때기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우리 자신이라기보다 그 구조를 비추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순간의 자기결정은 단순히 무언가를 고르는 일일 수 없다.
- 감옥을 나서는 일이 두렵다면 진짜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 역시 두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는다.
에세이
본 아티클은 <Career Advice>의 내용을 번역 및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뜻밖에도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서 커리어 조언을 구하는 연락이 심심치 않게 온다. 대부분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인데, 보안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쪽으로 진로를 잡으려면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솔직히 답하기 참 까다로운 질문이다.
무엇보다 질문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될 때가 많다.
속마음을 털어놓자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개 "그러지 마라"에 가깝다.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똑같은 질문의 답을 찾는 데 매달렸는데, 돌이켜 보면 그게 하마터면 인생 최대의 실수가 될 뻔했다.
이런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니, 답장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글을 하나 써두기로 했다.
1. 당신이 곧 당신의 직업이다
1971년, 필립 짐바르도 박사는 훗날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널리 알려질 심리학 실험을 진행했다.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 임시로 모의 교도소를 차려놓고, 심리검사상 '정상'이면서 전과도 없는 자원자들을 모았다. 그러고는 동전 던지기로 절반은 '수감자', 나머지 절반은 '교도관'으로 나눴다.
처음엔 다들 어색해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과도, 살아온 삶과도 너무 동떨어진 상황이라 낯설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수감자들은 원래의 자신을 잊고 수감자의 자리에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소소한 항의를 벌이는가 하면 서로를 고자질했고, 단식에 들어가거나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이들도 나왔다.
교도관들도 영락없는 교도관이 됐다. 8시간 근무를 마치면 평소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들은 심리적 처벌을 고안하고, 독방을 만들고, 수감자끼리 싸움을 붙여 기를 꺾었다. 복도를 느릿느릿 오가며 나무 곤봉으로 창살을 드르륵 긁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동전이 반대로 떨어졌다면 사람들은 창살 반대편에 서 있었겠지만, 역할이 빚어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손쓸 수 없을 만큼 치닫자, 2주로 계획했던 실험은 엿새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이 실험은 흔히 제도의 문제를 고발한 사례로 거론된다. 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내가 얻은 교훈은 그보다 단순하다.
직업은 신중하게 골라라. 직업이 당신을 바꿔놓을 테니까.
이렇게 극단적인 사례에서라면 누구나 수긍할 얘기다.
세관원을 떠올려 보자. 일주일에 40시간씩 사람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훑어보고, 저 말이 진짜인지 따져 묻고, 눈동자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며, 헷갈리는 질문을 던져 말실수를 유도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파티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할 때 이 일을 하기 전과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0년 동안 교도관으로 일한 사람과 같은 기간 애도 상담사(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도록 돕는 상담 전문가)로 일한 사람이 연애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리라는 것도 쉽게 그려진다.
하지만 경찰이나 교도관, 세관원만의 얘기가 아니다.
삶의 맥락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좌우한다. 그리고 직업은 삶의 맥락을 장악하기 마련이다. 그 일이 커리어의 일부라면 더더욱 그렇다. 직업은 당신을 바꾼다.
2. 우리가 내리는 선택
얼마 전 미뤄뒀던 에런 코멧버스의 독립잡지 『코멧버스 54호: 그린데이와 함께 중국에?!!』를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마음에 든 대목이 있다.
어떤 것들은 그렇다. 이유를 따지기 전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아마 자라온 문화나 받은 교육 탓일 것이다. 프랑스어 '고슈(gauche, 세련되지 못하다는 뜻)'가 떠오르지만, 나는 히브리어 '트레이프(treyf)'가 더 마음에 들었다. 트레이프는 원래 '코셔(kosher)가 아닌 것', 곧 율법상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을 뜻하지만, 나는 자동차, 술집, 스트립 클럽, 총, 개, 로큰롤, 미식축구 경기 같은 것에도 이 말을 붙인다. 트레이프는 피한다. 그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 그걸 피해야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에런 코멧버스, 『코멧버스 54호』
나도 같은 이유로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에런처럼 내게도 트레이프 목록이 있다.
딱히 즐겁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내가 싫어하는 무언가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행기에 올라 일등석 옆을 지날 때마다 나는 늘 같은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 처음엔 부럽다. 그 승객들은 벌써 푹신한 좌석에 앉아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이륙하자마자 누에고치 같은 좌석에 몸을 파묻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볼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생각이 바뀐다. 대개는 하나같이 건강해 보이지 않는 중년 백인 남성이다. 한눈에 봐도 지난 1년 동안 말 그대로 수백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낸 사람들이다. 그러면 갑자기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그 좌석이 내게 트레이프인 건 넓은 다리 공간이 부럽지 않아서가 아니다. 거기 앉은 사람들이 부럽지 않아서다. 일등석 승객들이 서로 닮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교도관들이 비슷하게 행동하는 데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등석에 앉는 걸 목표로 삶의 선택을 쌓아간다면,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의 칙칙함까지 고스란히 물려받기 십상이라는 걸 나는 안다.
3. 미래가 당신을 마주 보고 있다
커리어에 이 생각을 대입해 보면 미래를 내다보기가 한결 쉬워진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채용 공고에서 흔히 풀어볼 만한 어려운 문제, 프로젝트가 불러올 파급력, 회사가 제공하는 복지, 알록달록한 빈백 소파 같은 것을 앞세운다. 다른 업계도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스스로를 내세우는 나름의 잣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 것을 모두 제쳐두고, 그곳에서 일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다.
그들이 곧 미래의 당신이다. 나는 다를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들이 회사 안팎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눈여겨보라. 당신의 삶도 십중팔구 그렇게 흘러갈 테니까. 뻔한 얘기 같지만, 젊은 사람들이 자기만은 다른 미래를 맞으리라 기대하는 경우가 놀라울 만큼 많다.
사람들을 보라. 거기에 당신의 미래가 있다.
4. 자신을 찾기도 전에 커리어부터 찾지 마라
물론 이 모든 얘기는 우리가 이런 질문을 제대로 따져볼 수 있는 처지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완벽한 객관성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 생각의 틀은 사회가 짜놓은 것이기도 하고, 이제 와서 그 영향에서 온전히 벗어나기엔 너무 늦었다.
경험이 우리의 욕망 자체를 바꿔놓는다면, 우리는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대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커리어 전략을 고민할 무렵의 젊은이들은 대개 지금까지의 모든 선택을 철저히 지원 구조 안에서 내려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치열하게 노력했더라도, 계층이나 인종 탓에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을 해온 이들이 있더라도, 그런 지원 체계의 틀을 크게 벗어나 본 젊은이는 드물다.
고등학교엔 '진학 상담사'는 있어도 '중퇴 상담사'는 없다. 장학금과 학자금 지원은 한 방향만 가리키고, 대학 생활은 인턴십과 맞물려 돌아가다가 결국 대부분 줄줄이 이어지는 '취업 박람회'로 귀결된다.
이런 결정에는 전폭적인 지원이 따르지만,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선택에는 기댈 곳이 거의 없다.
그렇게 깔때기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우리 자신이라기보다 그 구조를 비추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순간의 자기결정은 단순히 무언가를 고르는 일일 수 없다.
우리 선택을 빚어내는 조건 자체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자기결정'에서 '자기'부터 의심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지원 구조에서 최대한 멀리, 최대한 오래 벗어나 봐야 한다.
당연히 두려운 일이다. 나는 무정부주의자이자 상습 은행 강도였던 알프레도 보난노가 출소하는 순간의 심정을 적은 글을 자주 곱씹는다.
감옥 문을 나서는 순간, 아끼던 무언가를 두고 떠나는 느낌이 든다. 왜일까? 삶의 한 조각을 그 안에 두고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끔찍한 환경이었다 해도 거기서 보낸 시간은 여전히 당신의 일부다. 그 시간을 비참하게 살며 지독하게 고통받았다 해도(늘 그런 건 아니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당신의 삶에 남는 '무(無)'보다는 언제나 낫다.
- 알프레도 보난노, 「갇힌 몸(Locked Up)」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뜻깊었던 시기는 모두, 보난노가 말한 그 '무' 속으로 뛰어들 만큼 어리석거나 운이 좋지 않았다면 결코 머리로 따져 고를 수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 수도 없었던 순간들이었다.
감옥을 나서는 일이 두렵다면 진짜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 역시 두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는다.
5. 끝나지 않는 일을 서둘러 시작할 필요는 없다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든 단계에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늘 끝이 정해져 있었기에 그 제도들이 안기는 온갖 모멸도 버틸 만했다. 하지만 풀타임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남은 평생 출석해야 하는 '끝없는 한 학기'가 펼쳐진다.
그러니 그 길에 하루라도 빨리 들어서고 싶어 설레고 있다면, 한 번쯤 발걸음을 늦춰 보길 권한다. 영원히 계속된다는 점만 빼면, 그 길은 생각만큼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다.
6. 변명 삼아 덧붙이자면
결국 이 긴 얘기는 누군가 커리어 조언을 구할 때 내가 "나라면 이번 여름엔 차라리 히치하이크로 알래스카나 가겠다"는 식으로 답하곤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내 커리어 조언은 대체로 이렇다.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일하라.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돈과 상관없고, 지원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그저 '경험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 일을 하라.
기타 코드 세 개만 익혀 밴드를 꾸리고 투어를 떠나라. 자전거로 갈 수 있는 데까지 달려 보라. 우프(WWOOF, 농장에서 일손을 돕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으며 머무는 국제 자원봉사 여행 프로그램)를 떠나거나 동네에 공동체 텃밭을 일궈라. 떠돌이 인형극단을 꾸려라. 자국 경찰이 띄우기 시작한 드론에 맞설 드론을 만들어라.
무엇이든 좋다.
다만 불편한 일이어야 한다(감옥 문을 나서는 것처럼).
그리고, 의미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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