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 정재은, 플레인 아카이브
영화 평론 수업의 마지막 날.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교육원 근처에 있는 '책방무사'에 들렀다. 책방에서 찾고 싶은 책은 딱 한 권. 정재은 감독님의 에세이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이다. 책은 <말하는 건축가>라는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던 당시 감독님의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 과정과 영화를 만든다는 것, 창작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아직 <말하는 건축가>를 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는 것으로도 왠지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 편의 영화를 만들며 들었던 생각과 에피소드는 결과물인 영화보다도 흥미롭고 극적인 지점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번을 계기로 <말하는 건축가>도 재개봉하기를..!
책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사서 수업 한 시간 전 카페에 들러 책을 읽었다.
"어디 가면 숨을 구석부터 찾는다. 나는 가급적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앉고 싶다. 나는 주인공에게 무대를 양보하고 싶다. 정기용은 나를 숨기기에 넉넉한 품을 가진 주인공이었다. 나 자신을 더 잘 반영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바랐는데, 나는 여전히 주인공 뒤에 숨기를 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 책 속에서. p.13
정재은 감독은 <태풍태양>, <고양이를 부탁해>, <나비잠> 등 극영화를 비롯해 <말하는 건축가>, <아파트 생태계> 등의 다큐멘터리까지 넘나 들며 활발히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다. 정재은 감독의 영화 중 내가 본 작품은 아직 <고양이를 부탁해>가 유일하지만 책을 읽으며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두 장르를 오가며 영화를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데 사실 두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영화는 흥미로워진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도 다큐와 극영화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며 그가 바라보는 풍부한 시선을 담아낸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에게 무대를 양보'한다는 점에서 픽션인 극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의 차이가 크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의 형식으로 허구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나 TV프로그램을 지칭하는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도 있는 것처럼. 때론 가상의 인물과 배경이 나오지 않고, 우리가 발딛고 사는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는 실제 인물의 시간을 충실히 기록하고 보여주는 것만으로 큰 울림을 주는 영화도 있다. 결국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영화에 반영하느냐, 창작자의 태도와 시선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느냐가 영화의 외양을 결정되는 게 아닐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봤거나 만들 자신은 여전히 없다. 아직 나는 허구의 인물로 만든 상상의 이야기만을 써보았을 뿐이다. 정재은 감독님의 세심하고 내밀한 기록을 통해 '아 다큐멘터리를 찍을 땐 이런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구나.' 하고 짐작해 본다. 책을 읽는 동안만은 잠시 '정재은 감독'이 되어본다. 그래서 독자 겸 영화 에세이를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작은 욕심이 있다면, 영화감독 혹은 다양한 파트의 스탭들이 직접 쓴 에세이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부터 완성하기까지, 그 시간을 통과하며 겪은 것들은 분명 삶 어딘가에 남아 또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 그 이야기를 통해 영화 너머에 존재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니까.
영화 글을 쓸 때도 늘 그 시간들을 헤아리며 써야겠다고 마음 속에 새겨두었다. 영화는 늘 무언가와 관계를 맺는다. 시대와 환경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 극장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단순히 와 좋다 나쁘다 별로다 재미있다 없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영화 평론 수업을 신청한 것이다. 생각보다 그 관계를 헤아리고 들여다보며 글쓰기란 쉽지 않은 것 같지만, 분명 나에게 남는 것은 있는 작업인 것은 분명하다. 글쓰기가 막막해질때마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을 떠올릴 것 같다. 영화와 책. 모두 혼자서는 그릴 수 없으니까. 거울 삼아 펼쳐 볼 든든한 책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2. 스탑 메이킹 센스
아니 대체 <스탑 메이킹 센스>는 어떻길래 그렇게 극찬 일색일까, 궁금해져서 일요일 당일 예매를 해서 명필름 극장에 갔다. 예고편만 봐서는 잘 감이 오지 않았지만 음악 영화, 콘서트 실황도 재밌게 보는 편이라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큰 기대도 하지 않고, '토킹 헤즈'의 노래도 찾아 듣지 않은 채 일단 보러 갔다. 재미없어도 근처 카페에 가서 밀린 책을 읽을 겸 느긋한 일요일을 보낼 요량으로.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냅다 혼자 무대에 올라서 기타를 치는 토킹 헤즈 프론트맨 데이비드 번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관객들에게 인삿말 같은 것도 없이 "테이프 좀 틀게요."라는 말 한 마디만 하고선. '싸이코 킬러Psyco Killer. 께스크 쎄 Qu'est-ce que c'est 파파파파파-' 라며 난해하지만 뭔가 심오한 가사를 담은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이게 뭐지? 설명할 순 없지만 중독적인 리듬과 데이비드 번의 잘생긴 외모 덕분에 점점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이 공연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콘서트 관객 중 한 명이 되어있었다.
<스탑 메이킹 센스>는 1983년 12월, LA 할리우드의 팬테이지스 극장에서 4일 간 열린 토킹헤즈의 라이브 공연을 담아낸 영화다. 콘서트 실황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 스테이지 풍경,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샷, 인터뷰는 이 영화에 전혀 없다. 영화는 오로지 무대와 음악, 토킹 헤즈가 만들어내는 기이한 분위기를 그날 공연장에 온 사람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온전히 담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그 덕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날 밤은 영화로 기록되어 약 40년 후에 되살아났다.
<스탑 메이킹 센스>의 조너선 드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양들의 침묵>을 찍은 감독이다. 그가 <양들의 침묵>으로 스타 감독이 되기 전, 토킹 헤즈의 열혈 팬이었던 감독은 최대한 공들여 그들의 공연을 담아내기로 한다. 카메라는 공연에 방해되지 않게 여러 대를 잘 숨겨 촬영했고 편집이 너무 드러나 흐름이 깨지지 않도록 긴 호흡의 롱 테이크도 과감히 사용해 음악에 빠져있는 멤버들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냈다. 흥미로웠던 것은 공연의 연출 방식이었다. 볼 때는 솔직히 음악에 취해 아무 생각없이 그냥 즐겼는데, 돌이켜보니 모든 게 의도대로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처음엔 기타 하나만 메고 등장했던 '사이코 킬러'에서 다음 곡에서는 베이시스트 티나 웨이머스가 합세하고, 그 다음 곡에는 드럼이 합쳐지고 차례차례 코러스, 키보드 등 세션들이 추가되는 형식이다. 화려한 무대 조명, 효과가 없이도 다음엔 어떤 곡이 연주 될까 기대하게 만든다. 모두가 등장한 뒤에는 이제 광란의 휘몰아침이 이어지고 무아지경의 경지에 이른다.
조너선 드미는 토킹 헤즈의 공연을 보고 어쩌면 그들의 공연 그 자체가 '영화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혼자에서 하나 둘 씩 캐릭터가 추가되고, 토킹 헤즈의 노랫말에는 서사가 담겨있다.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한 가사는 하나의 대사로 와닿는다) 특히 'Found a job'은 무료하게 티비만 보던 커플이 직접 쇼를 만들어 관계를 회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머릿 속에는 음악과 함께 또 다른 영화 한 편이 상영된다.
밴드의 이름처럼 그들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그건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대사를 하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주인공의 언어같다. 혼자 사이코 킬러 케스크 쎄-를 외쳤던 남자는 하나 둘 동료들을 얻고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외친다. 그의 말에 경청하고 함께 동조하는 사람들 (관객)도 생긴다. 결국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영화로 남은 토킹 헤즈의 라이브 공연은 <스탑 메이킹 센스>라는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내내 토킹 헤즈의 노래를 들었다. 한동안 토킹 헤즈 중독 증세가 이어질 것 같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음악을 영영 놓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영화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누군가 덕분에 모르고 지나쳤을 무언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추억 혹은 전설으로만 남을 뻔한 순간이 영원한 기록으로 남았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는 유일한 시간이 영화 혹은 책이 될 때, 그것은 관객과 독자에게 또 다른 시간을 선물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번 주에 만난 좋은 책과 영화를 놓칠세라 어쩌면 유일한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함이다.
<스탑 메이킹 센스>가 더 오래 여운이 남게 해주었던 건 '가사'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그 중 <Once in a lifetime>은 단순히 와 음악이 너무 좋아! 를 넘어서 깊.생을 하게 하는... 그런 가사였는데요.
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내 것으로, 나아가 내 인생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록 혹은 메모가 아닐까요. 아주 간단한 한 줄 짜리 메모, 일기라도 구독자님의 소중한 시간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 될 거예요. 그 기록들이 쌓여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될지도 모르고요.
+ 이건 그냥 여담인데... 데이비드 번 보면서 자꾸 김영하 작가님이 생각난 건 저 뿐일까요 😺 왠지 분위기가 비슷하더라고요! 냉소적인 가사의 느낌도 김영하 작가님 작품과 비슷해서인지 보는 내내 떠오르던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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