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시네마 카이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영화 노트

영화는 영화가 되고

시민케인 (1941)과 맹크 (2020) / 지옥의 천사들 (1930)과 애비에이터 (2004)

2025.11.04 | 조회 79 |
0
|
시네마 카이에의 프로필 이미지

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2021. 01. 04에 쓴 영화 일기.

 

우연하게도, 최근 본 두 편의 영화 <맹크>와 <애비에이터>는 공통점이 있었다. 실재하는 영화 작품이 주요 소재라는 것. 

첨부 이미지
첨부 이미지

 

 

<맹크>는 시민 케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집필한 허먼 맹키위츠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애비에이터>는 ‘지옥의 천사들’이라는 영화를 제작, 감독한 하워드 휴스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소재로 등장하는 ‘시민 케인’과 ‘지옥의 천사들’ 모두 이제는 영화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남았다. 어떻게 그런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맹크>와 <애비에이터>는 흥미로운 영화일 것이다.

 

1. <맹크>를 보기 전에는 <시민 케인>이 오슨 웰즈가 혼자서 다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시민 케인하면 오슨 웰즈, 오슨 웰즈하면 시민 케인이라고 워낙 유명하니까. 그런데 시민 케인의 줄거리가 허먼 맹키위츠라는 할리우드 각본가에 의해서 탄생한 줄은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30~40년대 할리우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영화를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전개방식도 친절하진 않다. <시민 케인>과 비슷하게도 타임라인은 뒤섞여있고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대와 장소를 나타내는 자막은 시나리오 형식으로 나와서 신선했고 마치 그 당시 필름 영화처럼 일부러 노이즈 효과를 줘서 필름시대의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이지만.

작가 ‘맹크’는 술과 담배를 정말 많이 핀다. 사고를 당해서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 신세인데도 떠오르는 이야기를 줄줄 읊으면 타이핑 담당 겸 보조작가가 그것을 종이에 옮겨주는 방식으로 각본을 집필한다. 게다가 60일이라는 마감일 안에. 그게 바로 프로인걸까? 맹크도 대단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종이에 일단 받아적은 다음 시나리오 형식으로 정리하는 리타의 역할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맹크의 머리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지면에 옮겨서 각본의 형태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만약 지금도 그런 보조작가 자리가 있다면 해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역할이었다.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시민 케인>은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맹크는 할리우드라는 집단 안에서 영화 산업, 정치, 언론계의 이면과 진상을 몸소 겪은 후 그걸 토대로 만든 이야기를 써냈다. 어떻게 20대였던 젊은 오슨 웰즈가 그런 내용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조금은 의문이었는데, 역시 작가가 따로 있었다. 항상 <시민 케인>하면 감독 오슨 웰즈가 혼자 다 만든 것처럼 박수받지만, 그 뒤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의 존재를 드러낸 영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결국 영화에서 어떤 장르든 어떤 이야기인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핵심이다. 감독이 혼자 각본 감독을 다 쓴게 아니라면 그것을 창작한 작가도 주목 받았으면 한다. 영화는 혼자만의 예술이 아니므로. 어찌보면 <시민 케인>도 맹크가 쓴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혹은 아예 없었다면 오슨 웰즈는 그 영화를 만들 수도 없었을 테니, <시민 케인> 또한 맹크의 작품으로 불려야 할 것이다. 

첨부 이미지
첨부 이미지

2. <애비에이터>를 보기 전에는 우선 <지옥의 천사들>부터 찾아봤다. 다행히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다. 당시 최대 제작비와 엄청난 스케일이라는 사전 배경을 알고 보았지만 1930년대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일단 모든 컷에서 돈을 쏟아부은 티가 났다. 보조출연자들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소품, 의상도 다 비싼 것같이 보였다. 이 영화는 원래 무성영화로 찍혔다가 도중 유성영화 기술이 도입되면서 다시 유성영화로 재촬영되었다고 한다. 촬영 당시는 1920년대 말이었을 테니 그 당시의 소리가 담긴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더 놀라운 것은 공중 전투장면을 실전에 가깝게 재현해서 찍어냈다는 것. 지금도 하기 힘들 촬영일텐데 그 당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휴스는 해냈다. 실제 전투기와 파일럿을 대동해 전투 장면을 찍었고 그 와중에 3명의 파일럿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에 담긴 장면은 거의 실제 전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자료 화면과 흡사할 정도다. 하지만 그 장면이 꼭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과도하게 전투 장면이 길었다. 전쟁 때문에 비극을 맞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공중에서 실제로 전투용 비행기를 띄워서 찍는 그 장면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 정도로 집요하고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했을 일을 해낸 인물이 바로 하워드 휴스다.

<애비에이터>를 보고 나니 왜 그가 <지옥의 천사들>을 찍으려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영화보다도 비행기에 더 큰 꿈을 품은 사람이었다. 실제 공군들이 쓰는 전투기로 하늘 위에서 날아다니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후에 항공기 회사를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애비에이터>는 그의 그런 노력과 영광스러운 순간만을 담아낸 영화는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계획과 꿈을 이뤄내는 과정 이면에 겪었던 그의 어두운 면 또한 숨기지 않는다. 지독할 정도의 결벽증, 여성 편력, 강박과 불안장애 때문에 망가지는 그의 모습을. 그는 태어날 때부터 억만장자로 태어났다. 그래서 돈이 늘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거의 원하는 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지옥의 천사들> 이나 비행기도 돈이 없었다면 그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아예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부분에 있어서는 불안해하고 결벽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모든 걸 자기 통제 아래에 둬야하는 그의 성격 때문에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린다. 돈으로 해결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의 손에 묻어있을 세균, 수돗물 등 그 안에 보이진 않지만 나를 위협할 것 같은 존재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다고 해도 나는 그에게서 존경심을 느끼지는 못했다. 완벽주의를 넘어 강박증이 심한 사람일 뿐. 그래도 그가 만들어낸 것은 결과적으로 후에 많은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위대한‘ 영화제작자, 항공기술자라고만 부르기는 어려웠다. 

마틴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도 연상됐다. 이 영화 또한 <성난 황소> <대부> 처럼 욕망의 화신인 남성 주인공의 어두운 내면과 몰락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대단하다. 거의 하워드 휴스 그 자체를 연기했을 정도로. 개인 영사실에서 나체로 갇힌 채 지내는 장면에서는 무서우리만큼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 기록된다. 영화를 쭉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 두 영화는 내게 질문을 남겼다. 영화를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영화‘로 남고 싶은지.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시네마 카이에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