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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시네마 카이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영화 노트

사라져도 기억한다면

2025.11.11 | 조회 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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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내가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에는, 큰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어릴 때 자주 놀러가던 큰댁에서 나는 큰아버지와 함께 비디오를 자주 빌려보곤 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하던 큰아버지는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신프로 (최신 영화)로 들어온 영화를 빌려 나와 함께 보곤 했다. 내가 그 영화를 이해하든 안하든, 어린이가 보기에 부적절하든 안하든 그저 영화를 틀어두셨다. 

 

어릴 때 함께 영화를 보던 거실에, 이제 큰아버지는 없다. 10월의 마지막 날. 따스했던 오후에 큰아버지의 부고 전화를 받았다. 감히 짐작치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추석 날 찾아뵀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것이라고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지금도 큰아버지는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고 계실 것만 같다. 30년간 버스 기사를 하셨던 큰아버지는 은퇴 후, 부산 남포동의 대영시네마의 경비직으로 알바를 시작하셨다. 오래지않아 대영시네마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영화도 보며 알바를 하던 큰아버지의 표정은 편안해보였다.

 

사라진 극장의 자리를 떠올리면 큰아버지가 생각난다. 이젠 그 자리를 지나칠 때면 큰아버지가 떠오르겠지. 왜 미리 댁에 넷플릭스를 깔아드리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언젠가 내가 참여하거나 만들 영화를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늘 큰아버지 덕분에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고 얘기드릴 때마다 그는 왠지 모를 민망함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다. 

 

황망한 죽음에도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그를 대신한 자리에는 남아있는 가족들이 남아있었다. 잠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드라마를 틀어두었고 그 순간만큼은 원래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에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찾는다. 오히려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한 면을 도려내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아픔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이 잠시 앉았다 갈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먼저 떠나가신 큰아버지도 흐뭇해하실까. 

 

극장은 사라지고 영화는 죽어가는 시대라고 한다. 낙엽이 떨어지듯. 큰아버지는 낙엽처럼, 텅 빈 극장처럼 인생의 끝을 맞이했지만 결코 가족들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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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니

    1
    about 1 month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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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시네마 카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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