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시네마 카이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영화 노트

영화와 함께한 시간을 말하기

책 『세계 영화 읽기』 , 『불이 켜지기 전에』

2025.09.08 | 조회 574 |
0
|
시네마 카이에의 프로필 이미지

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18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영화는 우리의 삶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20-21세기 사람들에게 영화가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근에 구입한 책 『세계 영화 읽기: 무성 영화부터 디지털 기술까지』 와 『불이 켜지기 전에』 을 읽으며 새삼 영화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겹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The Story of Film

 『세계 영화 읽기: 무성 영화부터 디지털 기술까지』 은 672쪽에 달하는 벽돌책이다. 당연히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서문과 초반 몇 페이지만 읽고 아직 읽는 중이지만, 고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과 비슷하게 영화사를 다루는 책은 이미 몇 권 가지고 있다. 이 책과 기존 영화사 책의 다른 점은 '창작자'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사의 변화 과정을 단순히 나열했다기 보다 시대별, 국가별로 등장한 뛰어난 영화감독들,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에 대해 주목한다. 어렵고 딱딱한 학술적인 책이라기 보다 재미난 영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다). 책의 저자인 마크 커즌스는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이다. 직접 영화를 찍고, 인터뷰하고, 강연을 하며 영화를 몸으로 체득한 인사이트들이 책에 녹아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면밀하게, 영화가 발생한 시점부터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까지 영화가 우리 곁에 존재하기까지의 궤적을 따라가고 싶어졌다. 묵직한 책의 두께만큼 영화와 인간의 삶이 함께한 시간도 꽤 길어졌다. 언제 어느 날, 그 수많은 영화 중 한 편과 만나느냐에 따라 내 기억 속 '영화사'는 다르게 쓰일 것이다. 종종 앞날을 불안해하곤 하는 나지만 그 생각을 하면 조금은 덜 불안해진다. 설레는 여행을 앞둔 사람처럼. 

 

영화를 보고 쓰는 사람의 이야기

영화 기자, 평론가들이 쓴 책을 좋아한다. 그들이 쓴 책은 영화에서 시작되지만 영화와는 다르게 끝맺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고 재미있는 글. 그런 글을 선망한다. 출간한지 며칠 되지 않은 김소미 기자의 『불이 켜지기 전에』 는 그런 책 중 하나다. '마음산책'이라는 최애 출판사와 영화 기자의 산문집이라니!

책 소개글을 읽지도 않고 일단 빨리 받아보고 싶어 주문을 했다. 

우선 김소미 기자님이 나와 동갑이라는 것을 보고 놀랐다. 가끔 GV 진행을 하시는 모습이 노련하고 진중하셔서 한참 '어른'같다고 느끼곤 했는데, 그런 기자님이 쓴 글도 비슷한 인상이었다. 단어 하나하나 고심해서 고른 흔적과 깊이 있는 글이 마음을 울렸다. 

영화를 보고 쓰는 것을 업으로 하기까지, 작가는 오래된 기억 안으로 들어가 생생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간을 길어올린다. 동갑이니만큼, 그의 기억은 곧 나의 기억과 겹치기도 했다. <쉬리>나 <친구>를 어른들이 빌려온 비디오 화면으로 처음 접한 것, 중고등 학교 시절 '씨네21'을 읽으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운 것, 영화과에 진학해 감독을 꿈꾼 것 등. 어린 시절 비디오와 밀접하게 자라온 것이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다. 90년대생에게 '비디오'란 이젠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은 잠깐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 접점으로 인해 더 친숙하게 와닿는 한편, 너무 잘 쓴 글을 보면 생기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영화 평론 수업을 들으며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즐거운 일인지 깨닫고 있다. 영화는 끝나도 보는 사람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영화와 내가 어느 시점에 만났는지도 중요하다. 영화와 잠깐 스쳤던 시간과 끝난 후의 여운을 붙잡아 기어이 마침표를 찍어내야하는 것이 영화에 대한 글쓰기의 어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 어려운 작업을 거쳐 한 사람의 삶과 영화가 겹쳐 이어진 이야기들은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문득 버거웠다. 모자란 내 평론 과제 글 때문인지 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참 부족한 실력을 정면으로 마주 할수록 외면하고 싶기만 한데 그럴수록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가슴을 짓눌러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로지 조금씩 읽는 것 외엔 할 수 없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쓰레기가 될 것 같아서. 아직 완전히 에너지가 차오르진 않았지만 적어도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면, 특히 영화에 관한 책을 읽으면 다시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 쓰고 싶어진다. 책에 언급된 영화들이 궁금해지고 영화보다 탁월한 글들은 감탄을 일으킨다. 이 두 권의 책 덕분에 그저 담담히, 나의 삶과 영화가 만나며 생겨난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조금씩 피어났다. 물론 잘 써야하겠지만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결국 쓰지 못한다. '잘' 쓰기 보다 내 스스로가 우선 재밌게 쓰고, 읽고 싶다. 나에게도 영화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고, 그 시간들이 이만큼 쌓여있다고 책으로 말하고 싶다. 


 『세계 영화 읽기』. 마크 커즌스. 북스힐. 윤용아 옮김
 『세계 영화 읽기』. 마크 커즌스. 북스힐. 윤용아 옮김

책 속의 문장

"화면에 무엇을 담아냈는지, 어떤 이야기를 펼쳤는지 등 내용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화란 무엇이며 인간의 삶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가 더 관건이다. - p.15

"영화는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몽상가, 소외자, 이상주의자, 절규하는 자, 소심한 자의 국제어다. 그들은 모두 그들만의 형태로 영화 역사와 함께할 것이며 영화의 즐거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p.23

 

 

 

『불이 켜지기 전에』. 김소미. 마음산책 
『불이 켜지기 전에』. 김소미. 마음산책 

책 속의 문장

"영화를 보고, 쓰고, 말하는 일을 해오면서 개별 영화를 해석함에 있어 섬세해지고자 하는 욕구만큼 지속된 것이 어둠에 대한 매혹이었다. 불 꺼진 극장은 축축하고 불온한 운명에서 출발해 외톨이나 도피자들을 기어코 교육하는 장소로 품을 키워왔다. 어쩌면 나 역시 그 속에서 매번 다른 존재로 태어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 p.8

"세상 모든 영화는 오직 그 시기에만 가능한 양태로 완성된다. 그 시절의 내 슬픔은 <주온>의 열악함을 만나서 특별한 위로를, 나아가서 돌봄의 효과 같은 것을 얻었다." - p.29

 

 

구독자님의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와 함께한 시간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그 시간들은 구독자님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나요. 『세계 영화 읽기』 와 『불이 켜지기 전에』 는 그 기억을 더듬어 갈 때 읽으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관처럼 어두운 방에 독서등만 켜둔 채 읽으면 더욱 좋아요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시네마 카이에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