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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시네마 카이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영화 노트

도쿄의 극장 사이를 떠돌며

브런치북 마감 후기

2025.10.28 | 조회 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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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약 일주일간의 도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의 모든 순간이 좋았다곤 할 순 없었지만 가지 않았다면 분명 느끼지 못했을, 보지 못했을 풍경들을 마주했다. 그 시간들은 마음 어딘가에 남아 또 다른 이야기들의 씨앗이 될 거라고 믿으며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봤다. 결론적으로는 어찌 저찌 브런치북 응모도 마쳤으니 뿌듯했다!

 

2016년 즈음부터 우연히 해외를 여행하다 그 곳의 영화관을 발견하고, 영화박물관이나 시네마테크도 방문하면서 느낀 것들을 써보고 싶었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진 않아서 일단 지금까지 갔던 곳 중 영화를 봤던 에피소드가 있는 곳을 추려 목차를 구성했다. 프랑크푸르트, 빈, 프라하, 파리, 베이징, 오사카, 교토 그리고 이번에 간 도쿄까지. 겨우 최소 분량인 목차 10-11개 분량을 채웠다. 이번에 도쿄에 가지 않았더라면 절대 끝내지 못했을 거라고, 그나마 가서 마무리하고 돌아오자고 다짐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여행의 의미를 찾아내었다. 나의 또다른 마음 속에선, 굳이 갔어야했냐고 글쓰는 건 집이나 집 근처에서 하면 되지 않냐고 끊임없이 '가성비'를 따지는 또 다른 내가 죄책감을 주고 있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집에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버리는 나를 견디는 거였다. 도저히 작업이 안되면 이렇게 떠나기라도 해서 뭐라도 하는 게 맞았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쓰려는 글이 일종의 여행기였기 때문에 여행 중에 쓰는 것이 꽤 몰입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던 무기력도 일단 혼자서 낯선 환경에 던져지고 나서는 어떻게든 움직이게 됐다. 나를 챙길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니까. 내가 길을 찾고 일정을 짜고 시간 맞춰 열차를 타고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여기까지 와서 다 못 쓰고 돌아가면 정말 사람도 아니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혼자 돌아다니다보니 말할 사람도 없고, 종종 쓸쓸해졌다. 오히려 그런 마음이 글을 더 쓰고 싶게 만든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 진보초의 진보초 시어터, 시부야의 이미지포럼과 분카무라 르 시네마, 긴자의 일본 국립영화 아카이브, 에비스 역에 있는 에비스 가든 시네마, 이케부쿠로의 그랜드 시네마 선샤인에서 영화를 봤다. 총 6편의 영화를 보았다. 일주일이나 있었는데도 글을 써야했기에 실제로 가보니 더 많은 미니 시어터 (독립 예술영화관) 들이 많아서 도저히 다 가볼 순 없었다. 신주쿠에만 약 5개의 미니 시어터가 있었고 중심가를 벗어난 지역에도 3군데나 더 있었다. 신주쿠의 극장들은 로비만 구경하면서 극장의 분위기만 느꼈다. 각 극장마다 분위기와 개성, 자체적으로 꾸며 놓은 전시들이 다양해서 그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신주쿠 '테아도르 시네마'에서는 여행을 결심하게 했던 영화 <여행과 나날>의 의상 전시와 미야케 쇼 기획전 영화가 상영중이었다. 그날 상영하는 <와일드 투어>를 볼까말까 고민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끝날 것 같고 그러면 브런치북을 다 못 끝낼 것 같아서 결국 극장 밖을 나왔다. 

 

숙소의 책상, 콘센트가 있거나 조금 넓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작업을 했다. 자그마한 규모의 카페가 더 많고 콘센트가 없는 곳이 흔한 도쿄에서 스타벅스를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이 불쑥 들었다. 마감기한에 맞춰 다행히 제출까지 했지만 생각보다 기쁘거나 만족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이 더 보이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지는 당장 모르겠고...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이 정도겠지. 브런치북 공모에 당선이 될지 안 될지는 이제 내 손을 떠난 일이 되었다. 나는 그저 쓸 수 있을 뿐이고 정해진 시간 내에 제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몫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왜 더 부족한 것만 같고 채워야한다는 생각만 강해질까. 확실한 것은 더 좋은 글, 책읽기, 좋은 영화들 더 많이 보기, 언어 공부하기. 이것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자막없이 보느라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만 꽤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영화 번역을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쓰고 싶었던 글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나자, 이제 또 다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걸 느꼈다. 이번 브런치북을 다 써내지 못했다면 계속 미련이 남았을텐데. 가보지 못한 나라와 극장이 너무나 많다. 돈과 시간이라는 한계로 그 곳을 다 가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슬펐다. 일단 갔던 곳으로라도 써보자, 라고 마음먹고 실제로 써보니 조금이나마 그 아쉬움이 덜했다. 가지 못한 곳도 많지만 이만큼 가본 것도 어디인가. 나에게 남은 이 몇 안되는 경험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언젠가 또 갈 수 있을 날을 기약하며. 나의 기억, 몇 장으로 남아있는 사진에 의지한 채 과거의 시간들은 글을 쓰며 다시 되돌아왔다. 마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써두어서 다행이었다. 이 다음에 새겨질 기억들도 차근차근 채워가면 되겠지. 앞으로 다음 나라, 극장이 어디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 곳에선 또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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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난 도쿄 여행은 영화와 극장들 사이를 떠돌던 시간들이었다. 그 사이의 골목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과 지금까지의 삶 사이를 걷기도 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주워 담았다. 이런 시간의 제약, 체력 부족으로 인해 브런치북에 다 담지 못한 도쿄에서의 시간들은 또 다른 형태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에세이일 수도 있고 시나리오의 형식일 수도 있다. 아직 뚜렷히 정해지지 않았다. 지금은 일단 마음 가는 대로 써보고 싶다. 발길 닿는대로 걷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과 마주했던 것처럼. 다음 영화가 상영되기 전까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의 다음도 묵묵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여행에서도 무사히 돌아왔듯 어떻게든 되겠지.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저의 브런치북입니다! 구독자님에게는 용기내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주 에세이 레터을 발행해 온 덕분일까요? 그래도 전보다 어떻게든 마감을 지키는 것을 해낼 수 있게 되었어요. 다 저의 글을 읽어주고 구독해주신 구독자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해요.

브런치북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책의 형태로 연재하는 글인데요, 매년 실제 출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공모전을 진행중이에요. 저도 응모를 위해 이번을 마감으로 정해두고 글을 완성했습니다. 부디 좋은 기회로 연결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어떤 글이든 성실히 써나가겠습니다!

이번 달에는 추석연휴와 도쿄 여행으로 '기다림의 장면들'을 연재하지 못했는데요,

다음 달에는 2편의 기다림의 장면들로 찾아오겠습니다! 😺 

벌써 10월의 마지막 주네요. 부쩍 쌀쌀해진 날씨, 부디 따뜻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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