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금산에 갔다. 지방에 드라마 촬영 일을 하러 간 남편의 운전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스케줄은 빡빡빡했다. 1차 장소인 익산에서 금산으로 넘어가 저녁에는 합천 세트장에서 마무리되는 일정. 나는 정식 스태프가 아니니 촬영장 근처 시간을 떼울 수 있는 곳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주차장으로 지정된 곳은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앞이었다. 마침 2-3시간 정도 대기하며 시간을 보내야했는데 카페에 가기엔 마땅한 곳이 없던 차에 마침 박물관 특별전시로 '어디서 만날까요? 금산중앙극장'이라는 전시를 발견했다.
충남 금산은 처음 가본 곳이다. 인삼으로 유명하다는 금산에는 박물관 앞에 사람보다 더 큰 인삼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작은 도시에도 오래된 극장은 있었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 상영을 끝으로 폐관되어 방치되었다가 완전히 철거된 '금산중앙극장'은 이제 박물관 속 유물이 되었다.
박물관 2층에 들어서면 마치 여전히 영화 입장권을 팔 것 같은 매표소가 있다. 최대한 운영 당시의 극장을 재현해낸 전시장 안은 아담했지만 65년 간 금산을 지켰던 극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나처럼 타지에서 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안 방문객에게도 금산중앙극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주민들의 인터뷰와 철거 직전 극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흐르고 벽면에는 극장의 역사를 요약한 연표가 붙어있었다.
벽을 지나면 자그맣게 상영관을 재현한 공간이 등장한다. 최대 6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빨간색 영화관 시트와 스크린에는 영화 대신 6-70년대 금산 주민들의 삶이 AI 영상으로 되살아나 움직이고 있었다. 사진 속 코흘리개 꼬마는 미소짓고, 나물을 파는 시장 상인은 손님에게 손을 흔든다.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삶에 자연스레 존재했을 금산중앙극장은 이제 없다.
천장과 벽이 허물어진 상영관 내부, 입구부터 2층까지 부서진 잔해들이 쌓인 복도, 먼지 쌓인 장부, 산화되어 날아가버린 필름 속 그림... 아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면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전시 영상에서 흐르던, 운영이 중단된 금산중앙극장의 내부는 폐허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폐허 속에서 영화를 보고 웃고 울었을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영화를 보고 싶어 모르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극장 안을 들어가다가 걸렸다는 어르신과 담을 기어 올라가 화장실 창문을 통해 극장으로 들어갔던 청소년들, 관광 버스 2대가 꽉 차도록 밀려 들었던 관객들 같은 일화가 무색할 정도로 극장 안은 쓸쓸했다. 언젠가 아무도 영화를, 극장을 찾지 않아 상영이 중단되고 텅 빈 극장은 무너져버릴 미래를 종종 상상한다. 그 미래를 미리 경험한 기분이었다. 공유된 기억이 사라진 자리. 그 자리에 사라졌지만 남은 것은 결국 영화를 함께 봤던 추억일 것이다. 현재 금산중앙극장의 부지에는 '우리동네 아지트'라는 이름의 주민 복합문화시설이 세워져있다.
전시 정보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금산로 1575
매주 월요일 휴관. 09~18시까지.
입장료 무료.
🎥 떠오른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Close Your Eyes. 빅토르 에리세. 2023
<작별의 눈빛>이라는 영화를 찍던 중, 배우 훌리오가 사라진다. 그 영화의 감독인 미겔은 약 22년 동안 미완의 영화 필름을 안고 배우이자 친구인 훌리오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훌리오를 봤다는 제보 전화를 받고 도착한 곳은 한 양로원. 그 곳에서 미겔은 기억을 잃은 채 가르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훌리오를 만난다. 미겔은 훌리오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인근에 운영이 중단된 극장을 빌려 <작별의 눈빛>의 마지막 장면을 상영하기로 한다.
간단한 줄거리로 요약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영화 안에는 인간에게 기억이란, 영화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노감독의 깊은 고민이 모두 담겨있었다. 특히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극장에서 미처 완성되지 못한 <작별의 눈빛>을 틀고 그 영화 속 자신을 바라보는 가르델/훌리오의 눈빛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금산에 다녀온 후, 뒤늦게 집에서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보았다. 이 영화를 본 후 박물관 속 금산중앙극장이 자꾸 떠올랐다.
존재의 희미한 빛이 점차 사그라진다해도, 누군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영원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눈을 감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마음 속에선 선명히 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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