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노란문: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노란문'이라는 영화연구모임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단편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단순히 영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청년이었던 봉준호 감독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는 타고나길 어딘가 다른, 천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서툴고 시행착오 투성이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노란문’ 시절 고릴라 인형을 가지고 만든 단편 영화<룩킹 포 파라다이스>를 보고 지금의 그가 세계적인 거장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플란다스의 개> 흥행 실패 이후에도 영화에 대한 사랑과 꿈을 놓지 않고 계속 작품을 만든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 등장한 노란문 영화연구소의 멤버였던 분들의 이야기도 감동깊었다. 그들은 90년대 시네필 그 자체였고 90년대에 기이하게도 일어났던 영화에 대한 열광을 그대로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시네필 Cinephile. 즉 영화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이상하게도 늘 관심이 간다. 나도 영화를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시네필’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당당해질 수 없다. 내가 과연 시네필인가? 솔직히 매일 영화를 보지도, 영화관에 자주 찾아가려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데… 영화에 대한 지식과 이론도 여전히 공부 중일 뿐 해박하지 않다. 영화를 제대로 구해서 보기조차 힘들었던 90년대 초반, 그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물리적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해가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했던 노란문의 회원들은 그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왜 그랬지? 90년대 초에 미친 듯이 다들 모여서 영화 공부를 했었어요.”
보고 싶은 영화라면 얼마든지 휴대폰, 태블릿, TV에서 편한대로 골라 볼 수 있고, 아쉬운대로 유튜브에서 한 장면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영화에 관련된 책도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읽어야할지 골라야하는 시대에는 그들의 증언이 과연 역사책 속 사례처럼 들렸다. 이미 나도 ‘비디오’라는 매체가 대중화 되었을 때 유년시절을 보냈다. (심지어 몇 년 안 가 망하긴 했지만, 부모님은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셨다) 9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 영화는 어디든 손쉽게 가서 볼 수 있는 친숙한 매체가 되었고 그 많은 영화들 중 실패하지 않을 작품을 고르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노란문의 멤버들은 영화를 너무 알고 싶고, 보고 싶은데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책으로라도 알고 싶은데 서점에는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와. 잭 씨 엘리스의 『세계영화사 』 딸랑 두 권만 있던 때. 그들은 그 책을 필사해보기도 하고, 흑백 스틸컷이 전부인 영화를 상상하며 영화에 대한 사랑과 목마름을 달랬다.
90년대 초는 그렇게 미지의 예술인 영화를 사랑하고자 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다큐에서 봉준호 감독은 정부가 ‘전국민 시네필 만들기’ 프로젝트라도 연 것은 아니냐고 농담을 할 정도로, 90년대 초의 청년들은 주체할 수 없는 영화에 대한 열망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만들고 연구하는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노란문’도 그렇게 생겨난 공동체 모임 중 하나였다. 영화 속에선 이들을 ‘갈 곳을 잃은 젊은이들. 뭘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고, 학생운동은 끝났고. 영화를 의식적으로 공부해서 산업에 뛰어든 최초의 세대.’라고 조심스레 회고한다. 순수하게 영화와 사랑에 빠진 그들의 눈빛에는 근심이나 불안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온통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있는 그 또렷한 눈빛과 표정이 유난히 빛나 보였다.
최종태 (현재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동훈, 봉준호 이 셋은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일단 공동체의 문을 열긴 했는데, 볼 수 있는 영화와 자료가 전무한 상황. 당시 봉준호 감독은 노란문 영화연구소의 자료 담당을 자처하면서 닥치는 대로 비디오를 빌리고 모으며 복사해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덕후의 원동력이 집착이거든, 사실. 자료에 대한 갈증이 많았기 때문에 집착도 많았던 거 같아요. ”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 Raising Bull>가 ‘분노의 주먹’, 장 뤽 고다르의 <경멸 Le mépris>이 ‘사랑과 경멸’로 비디오로 수입되며 바뀐 제목 인해 출시 목록에 대한 정보가 부정확한 것도 많았다. 바뀐 제목을 제대로 모르면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비디오 테이프 더미에서 보물같은 영화를 놓치는 건 흔한 일이였다. 이때 도움을 준 분이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이라는 책을 낸 1세대 영화광 ‘김홍준’ 감독님이라고 한다. 김홍준 감독님은 당시 이미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장밋빛 인생>으로 데뷔한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의 원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이처럼 노란문 멤버 외에도 당시 영화계에 있었던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큐는 깊이를 더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인 영화 자료들을 보며 열띤 토론과 분석,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조그 셔틀 비디오’ 기기가 출시되자 <대부>를 컷 단위로 분석을 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당시 <대부>의 한 장면을 분석하며 직접 그린 콘티를 첨부해 노란문 소식지에 싣기도 했다. 이젠 직접 영상도 찍어볼 차례. 8mm 필름 카메라로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던 그들에게 곧이어 나온 비디오 카메라 ‘히타치 슈퍼 VHS’는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봉준호 감독은 모아둔 알바비를 몽땅 털어 히타치 카메라를 사고 그것으로 온갖 결혼식, 돌잔치 비디오 촬영 알바를 했다고 한다.
“영화가 주는 힘이 그거지. 알게 모르게 잠식되는 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노란문 영화연구소의 송년회 날. 봉준호 감독은 히타치 비디오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룩킹 포 파라다이스> 라는 단편 영화를 공개한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 된 이후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그가 만든 첫 극영화를 노란문 멤버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고릴라 인형과 하얀 찰흙을 손으로 빚어 만든 ‘똥벌레’ 두 캐릭터만 등장하고 한 프레임씩 움직여 스톱모션으로 만든 조악한 그 영화는 놀랍게도 훗날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놀라운 영화의 요소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둡고 칙칙한 지하실, 괴물, 크리처, 티비 화면… <플란다스의 개>부터 <기생충>까지 봉준호 영화속에서 변주하며 반복되던 것들이 <룩킹 포 파라다이스>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용은 이렇다. 아파트 지하실에 외롭게 살아가는 고릴라는 드넓은 초원에서 바나나를 먹고 싶은 꿈이 있다. 고릴라가 싼 똥이 괴물로 변해 고릴라는 그 괴물과 사투를 벌이고 (심지어 액션!) 결국 넓은 초원에 당도하는데… 이 짧은 영화 속에 반전이 등장한다. 나무 아래 고릴라에서 서서히 넓은 화면으로 빠지면, 그 초원은 티비 속 화면이다. 그 화면을 바라보는 고릴라의 뒷모습으로 끝.
티비 속 화면을 열망하며 여기가 아닌 ‘낙원 (파라다이스)’를 열망하는 마음. 당시엔 그저 영화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청년이었을 봉준호 감독이 꿈꾸던 낙원은 어디었을까.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노란문 멤버들은 끝내 낙원에 도달했을까.
<노란 문>을 보는 관객들은 미래를 알고 있는 채로 당시 노란문 영화 연구소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다. 노란문 멤버들은 원탁에 둘러 앉아 함께 영화를 보고, 각자 본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에게 이 곳은 얼마 안가 사라지지만, 당신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거장 감독이 되어 있을 것이고, 당신은 장편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영화와는 상관없는 사업을 하게 될 것이고, 당신은 이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미래에 대한 고민, 걱정없이 그저 ‘영화’ 하나로 행복해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일 것이다. 믿지도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너무나 사랑할 땐 미래 따윈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은 사라져가고 흐려지고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각자가 가장 사랑했던 무언가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과도 같다.
그래도 길을 찾아가는 건 의미 있는 거 같아.
그 당시를 회상하며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영화 속 인터뷰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콱콱 박혔다. 한 시절을 후회없이 사랑해본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말. 단단한 말. 아직도 영화를 마음 속에 품은 채 답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그들의 말은 다시 중심을 잡고 설 수 있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노란문 영화연구소는 1년 남짓한 시간동안 운영되고 사라졌지만, 그들이 보냈던 시간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바람을 일으켜 몇년 후, 제도화된 영화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관 동숭 시네마텍 개관, 영화잡지 키노와 씨네21 창간, 국립영화학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개원,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이 모든 게 95~97년 사이 일어난 일이라니. ‘영화의 낙원’은 이 나라 바깥에 있을 거라고 (영화 속 김홍준 감독님의 말 인용) 생각했던 이들이 만들어낸 쾌거였다.
나는 그 시대의 선배님들이 어렵사리 만든 ‘영화의 낙원’ 덕분에 이십대를 정말 행복하게 보냈다. 고등학생 때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니며 영화학도의 꿈을 키우고, 바람대로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고,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인 김홍준 감독님에게 시나리오 수업을 듣기도 했다. 심지어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도 했으니 영화에 대한 꿈은 분명히 나의 인생을 좋은 곳으로 이끈 셈이다. 신기하게도 우연의 일치인지 영상원 건물에도 ‘노란 문’이 있었다.
아마도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즐거운 시절인 것 같다. 해가 지날수록 그 생각은 선명해지고 있다. 그 때를 함께 했던 친구들은 졸업 이후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도 1학년 때 같은 조원이었던 동기들과 꾸준히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스무 살, 눈치보지 않고 영화를 사랑했던 나로 돌아간다. 과제로 말도 안되는 영상을 찍고는 밤을 새서 작업하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대며 웃고, 다음 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쪽팔림을 당하고는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던. 시간이 흘렀기에 모두가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대하진 않지만 나는 그저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는 것에 크게 상처를 받지 않고 영원히 순수한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노란문 멤버 민향님의 말대로 그 시절은, ‘저에게 시작이 되어 준 시절, 기억하고 싶은 시절, 그리고 그곳을 떠났어도 거기서 계속 이어지는 길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곳’이다. 영화를 사랑했던 누군가의 실천이아니었다면 나는 그 ‘노란 문’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란 문>과 최근에 읽게 된 책 『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를 보며 시네필이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영화를 볼수록 그것에 대한 의미는 흐려지고 그저 ‘영화’만이 남는 것 같다.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스러운 것으로. 당연히 영화의 모든 면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순 없다. 그러나 영화가 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동시에 응답하지 않아 더 간절해진다면, 지긋지긋하다가도 그리워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와 버린 것이니 받아들이시길...
한때 나는 졸업 이후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로 '입봉'(데뷔를 일컫는 용어) 하지 못하고 공모전에 번번히 떨어지는 것에 조바심이 나고 괴로워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요즘은 그 마음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인정받는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되지 않아도, 영화를 취미로만 즐긴다 해도 나는 놓지 않고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 타인과의 비교나 자격, 법칙 같은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영화를 사랑하기로 했다.
요즘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은 매주 영화에세이를 쓰고, 영화에 대한 책을 사서 읽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 그리고 영화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영화 평론 수업을 들으러 간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 즐겁다. 솔직히 영화를 매일 보진 않는다. 한 편을 보더라도 제대로 골라서 보고 싶다.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 주변을 맴돌며 사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덕분에 인생이 좀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졌다고 믿는다.
그저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그 사랑을 순수하게 즐기기를. 그 시간들이 쌓여 시퀀스를 이루고 한 편의 영화로 마무리 될 때, 누군가는 분명 감동을 받고 그 영화로 인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끝말잇기를 하듯, 저의 관심사가 이끄는 대로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떠오른 영화를 다루어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재미 중 하나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또 다른 작품과 만나게 되고,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끝도 없이 영화라는 세계를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렇듯 우연한 만남과 발견을 여러분에게 전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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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작품이 공개된 이후, 넷플릭스의 주최로 봉준호 감독을 포함한 노란문의 멤버들과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현장을 꼼꼼히 기록한 기사가 있어 공유드려요!
영화에는 담지 못한 뒷이야기들, 90년대 시네필과 현재의 젊은 시네필들이 만나는 것만으로 뜻깊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과거와는 또 다른 영화에 대한 고민을 가진 시네필 청년들의 질문에 진심을 담아 대답해주신 노란문 멤버 분들의 답변이 모두 소중하더라고요. 영화에 대한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면 분명 조금의 실마리를 얻어가실 수 있을 거예요. 그 기록을 함께 읽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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