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주간모기영 193호

[최은의 ‘그 영화 봤어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2026)

2026.05.09 | 조회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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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의 ‘ 그 영화 봤어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2026): 변했지만 변함없는 것들 너머

 

악마가 프라다를 입고 나타난다 한들 저는 필시 명품을 알아보지 못해서 차려입고 나타난 악마를 민망하게 할 부류의 인간입니다만, 그래도 이건 꼭 봐야 하는 영화였습니다. 20년 만에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그녀가 다시 나타났잖아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물론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가 메릴 스트립만은 아니겠지요. 전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개봉하던 2006년 무렵은 문학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여성 캐릭터가 꽤 다채로워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는 2001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 보아도 좋겠네요. 인형처럼 예쁘고 발랄한 여성 주인공 대신 뚱뚱하고 담배를 끊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술에 취해 실수를 연발하는 여성들이 스크린에 출몰하기 시작했고요, TV 시리즈에서 출발했으나 영화로 대단원을 마감한 <섹스 앤 더 시티>(2008)와 신문연재소설에서 탄생한 TV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던 1억원 고료의 세계문학상으로 주목받은 소설 『스타일』같은 작품들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뒤를 이었죠. 사랑과 일, 이상의 숭고함과 현실의 비루함 또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젊은 여성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입니다.

그로부터 20년, 브리짓(르네 젤위거)은 그 사이 다시 연애를 하고 친부가 누구인지 모를 아이를 낳고, 미시즈 다아시가 되었다가 미망인이 되어 총 네 편의 영화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어렵게 잡은 커리어의 기회도,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도 다 팽개치고 꿈을 찾아 당차게 독립을 선언했던 <악마는 프라다>의 그녀, 앤디 삭스(앤 헤서웨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진정성(명분)과 광고주(현실) 사이에서  

15년 넘게 떠나있던 뉴욕에 다시 돌아와 ‘뉴욕 뱅가드’의 기자로 커리어의 정점에 오른 앤디는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기업합병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언론계 대량해고의 칼 앞에서 최고의 저널리스트상도 방패가 되어주지는 않았거든요. 마침 ‘런웨이’가 자사 위기돌파의 수단으로 앤디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앤디는 녹물 나오는 아파트에서 비참하게 중년을 맞이하게 됐겠지요. 두 배의 연봉에 혹한 앤디가 한때 자기 영혼을 팔았다가 간신히 되찾아 나온 그 ‘악마’에게 돌아가기로 하면서 친구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할 때,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앤디는 “이 곳을 발판으로, 내 책을 쓰든지 진짜 저널리즘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거야.”라고 말했거든요.

맞아요. 나이 마흔이 넘었으나 앤디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현실 너머 이상의 자리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그 이상이란 것이 매번 타인의 현실 또는 욕망을 낮잡아보는 위치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20년 전에도 20대의 앤디는 그랬죠. ‘뉴욕 타임즈’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찾아온 도시에서 ‘런웨이’는 이력서를 보낸 수십 수백 개의 회사 중 면접이 허락된 유일한 잡지사여서 어쩔 수 없이 들어왔다고 말했어요, 오래 있진 않을 거라고요. 패션과 유행에 관심 없는 패션잡지사 에디터의 비서라는 것이 오히려 자랑인 것처럼 굴었다가 상사 나이젤(스탠리 투치)과 편집장 미란다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합니다. 앤디가 점차 패션의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남자친구인 네이트는 “그들이 내미는 명품 구두를 받아 신는 순간, 너는 네 영혼을 판 거야.”라고 말하며 앤디를 비난했는데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타락’일지 모르나 적어도 앤디에게 그것은 동료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이 처한 현실과 세계를 존중하며 보다 겸허해지는 성숙의 과정이었음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죠.

그렇기 때문에 탐사보도 기자로서 자신의 ‘정의로움’과 ‘다름’을 전제로 여전히 “이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40대의 앤디는 친숙하고 친밀하면서도 애잔합니다. 과거에 저널리스트라는 이상과 자신의 기준으로는 업계 최하위 레벨인 패션잡지사 에디터 비서라는 현실 사이에서 분투하던 앤디는 이제 그 ‘하위그룹’ 내부에서도 진정성 있는 기사쓰기와 면피용 광고기사 및 조회수의 유혹 사이에서 다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그 세계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말이지요.

직업과 소명 사이에서

영화의 내러티브는 앤디와 미란다의 재기를 향해 달려가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를 보는 동안 초반의 이 지점에 꽤 오랫동안 생각을 묶어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커리어 상으로도 스스로 경계인 또는 주변인의 자리에 서 있다고 느꼈던 여러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은 “이 곳은 내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야.”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따로 있어.”라는 생각에 주변을 열심히(하지만 나름 진정성 있게) 관찰하면서, 때로는 냉소하면서 거리를 두고 지내왔던 시절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놓친 것은 일이나 머물 장소나 커리어 자체보다는 혹시 그 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내가 정해놓은 경계는, 예컨대 ‘악마’에 대한 매혹의 두려움을 묘한 우월감으로 위장해놓은 정신승리는 확실히 미성숙의 표지이기도 했을 텐데요. 모태신앙으로 자라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네.”라고 아직 의심 없이 노래할 수 있던 무지와 신념의 계절 이야기이기도합니다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앤디는 저널리즘이 자신의 천직 또는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돈벌이 직업으로서의 잡지사 비서 일이나 가십성 책을 쓰는 일은 그에 비해 하위의 일이었겠지요. 화려한 의상과 명품 브랜드로 자신과 세상을 꾸미는 일은 더 하찮은 일처럼 보이던 시기도 그에게는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자리를 매번 부정하고 습관처럼 다른 곳만 바라본다면 정작 소명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즉각 알아보고 그 일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을까요.

『당신의 소명은 무엇인가요』(바람이불어오는곳, 2026)에서 캐런 스왈로우 프라이어는 참된 소명은 당신에게 ‘적합하고’ 알맞으며, 아름답게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선을 이룬다고 말이지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장소에 머무르든지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진.선.미) 신의 성품을 추구하는 한 우리는 소명 안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앤디는 불가피하게 직업을 바꿨을망정 한 번도 자신의 소명을 놓은 적이 없는 사람인 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마녀 같은 상사라도, 위기에 빠졌을 때 매번 그를 지켜주려 했고, 승진과 성공의 기로에서 바로 그 마녀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곳을 뛰쳐나오는 선택을 했고, 자신의 교만과 실수를 반성하고 돌이키곤 했습니다. 결국 전편에서는 매번 통하지는 않았던 선한 의도와 진심이 후속편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가장 큰 보상은 역시 사람들, 즉, 그 길에서 앤디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과 우정이었어요. 애인인 피터나 나이젤과 릴리 같은 오랜 친구들 뿐 아니라, 미란다와 늘 앙숙 같았던 에밀리(에밀리 블런트)까지도요.

‘책 쓰기’라는 타협과 우정

메릴 스트립에 관해 말하자면, ‘악마’ 자신이며 영화사 최고의 매력적인 빌런이 결국 가족과 동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니 적잖이 당혹스럽긴 하겠습니다만, 결말에서 저에게 가장 흥미로운 관심사는 과연 앤디가 미란다 프리슬리의 평전을 쓸 것인가, 였어요. 이왕 ‘런웨이’에 다시 돌아왔으니 미란다의 만행을 폭로하는 글을 써보라고, 출판계의 친구가 제안했는데요, 미란다에게 연민을 품게 된 앤디는 계속 거절하고 있었죠. 성공을 위해 타인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에도 어긋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미란다가 “책은 꼭 써.”라고 말해요. 고료 35만불을 잡으라고요. 단, 미란다가 잃어버린 것들, 예컨대 자녀들과 함께할 시간 같은 것들을 꼭 넣으라고 덧붙입니다. 치열하게 산 워킹맘-여성으로서의 삶을 앤디가 기록해주기를 바랐던 거겠지요. “사람들도 알아야지. 대가가 따른다는 걸. 그래도 나는 이 일이 좋은 걸 어떡해.”

미란다의 허락으로, 명분이 중요한 앤디에게 새로운 사명 또는 소명이 주어졌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공간과 도시에 대해 탐구하는 글을 남겼던 앤디가 이제는 미란다 프리슬리라는 인간을 탐구하고 증언하는 기록을 맡게 된 것이죠. 미란다는 이 말을 통해 앤디에 대한 그의 완벽한 신뢰를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돈을 위한 앤디의 평전쓰기가 설령 배신이라고 할지라도 평소 신념에 따라 그는 감당하고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 배신하고 잘못하고 실망시키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미란다는 믿었거든요. 그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앞에서, 훗날의 배신자들과 한 식탁에 앉은 인간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다만 미란다는 역시 미란다여서,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깁니다. “네가 구하고 싶은 것은 (나와 런웨이가 아니라) 너 자신이었어.” 미란다의 냉정한 이 선언을 저는 타인을 구하는 일이 반드시 완벽하게 이타적인 것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격려와 위안으로 읽습니다. 타인을 구하는 것이 곧 자신을 구하는 일이라는 모순된 진실은 궁극의 선한 일이 지닌 신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꿈틀대고 충돌하는 우리의 욕망을 가만히 끌어안고서, 그럼에도 진실함과 선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일 겁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데이비드 프랭클, 2026), 이미지출처: KMDB

극장에서 나오면서 미란다처럼 새하얀 머리를 한 두 분의 어르신을 보았습니다. 친구로 보이는 두 분은 여느 할머니들처럼 꼬불이 펌을 하고 등에는 작은 백팩을 메고 계셨어요. 75세인 미란다가 아마도 비슷한 연배일 그분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 하면서, 두 분의 우정을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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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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