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나요?
안녕하세요, 희소입니다. 어젠 국내 코치들의 가장 큰 행사죠. ‘대한민국코칭컨페스티벌’이 마곡 코엑스에서 있었어요. 이 자리에 가면 그래도 동료 코치님들도 1년에 1번은 서로 얼굴 마주보며 안부를 나눌 수 있지요. 아니나 다를까, 어제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장면들이 있었어요.
그 장면들에서 새로운 알아차림 하나가 있었어요. 이전엔 어쩌면 자동적으로, ‘네, 잘 지내고 있어요’하고 넘어갔을 대화 장면일 수도 있는데, 이번엔 뭔가 음미하고, 차분하게 ‘같은 말’을 뱉는 저를 알아차렸어요. ‘네, 전 잘 지내고 있어요.‘하고요.
그런데, 그 뒤에 붙는 말이 좀 색달랐어요. ‘저는 늦봄 즈음부터 최근까지 제 안의 열등감, 그림자들을 마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야 좀 올라오고 있어요 라고 말하더라고요.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눈을 마주치면서, ’제 안의 열등감‘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었던가 하고 그 대화를 마친 후, 잠시 돌아봤을 정도였지요. 저는 차분했고, 고요했고, 평안했어요.
‘내 안의 바닥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좋았다’고 말하는 나는 뭐였을까. 돌아오는 길, 머물러 생각했어요. 그리고, 알아차렸습니다. 아, 충분히 바닥에서 억지로 올라오려 하지 않고, 자꾸 바닥으로 내려가도 그런 나를 그 자리에 머물도록 허용해주고, 나의 실패와 좌절을 안아주고, 이대로면 못 올라올 수도 있겠다, 다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어도, 그것마저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받아들인 시간이었구나. 그리고, 충분히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다, 움직여보고 싶다란 마음이 들게 해 주었구나. 하고요. ‘충분한 겨울’이었습니다.
어쩌면 요 몇 달 제 레터 글에서 그런 제 과정을 느끼셨을 분들도 계실 거에요. 저에게 서툰 위로나 격려보다 묵묵히, 그 여정을 같이 걸어주셨던 여러분에게 이 아침,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긴 땅 속 어둠의 계절을 지나, 이제 깊은 땅에서 떡잎 하나가 조금 올라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달은 내 안의 모든 영감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 달이 그랬어요. 지난 달 ‘제 의도문’을 아무리 가슴에 품으려 해도, 잊혀지기 십상이고, 지난 달 엔젤을 일하는 책상 앞에 두고, 아무리 명상하고, 묵상해도 그 어떤 영감 하나 올라오지 않더군요.
그러다, 어제 귀가하며 우연히 ‘이번 달 엔젤명상’을 플레이(아래에 영상 넣어뒀어요)하게 되었어요. 신기하지요. 녹음하고 컨텐츠를 만들다보니, 컨텐츠 속 제 목소리가 마치 남 같아서, 남이 안내해주는 명상을 하는 듯한 몰입이 일어났습니다. 한 번 듣고, 떠오르는 단어들을 놓칠까 메모하고, 또 다시 듣고, 자기 전에 듣고 하다 오늘 아침 그 모든 영감들이 ‘통합’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엔젤이었던 ‘Acceptance’를 보며, 지금 내 삶은, 나의 영혼은 나를 어떤 문으로, 어떤 세계로 열어주고 있는가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모든 경험이 끝난 후에야) 그 문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바로, ‘나 자신(self)’을 향한 문이었습니다. 명상하며 떠오른 이미지는 그 문 앞에 ’오랜 세월 나를 만나주길 기다렸던‘ 더 깊은 ’내 자신‘이 서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아, 나는 나를 만나러 가는 문 앞에 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이어진 이번 달 엔젤 ‘Resilience’를 보면서는, 나는 ‘내 자신/과의 ’회복‘의 달이겠구나 알아차렸습니다.
티.용.티.용., 트램폴린 위를 뛰어오르내리는 제 자신을 상상하며,
’그래, 나는 이제 내가 떨어져도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힘‘이 있어. 나는 다시 빛으로 나아오는 법을 알아. 라고 내 자신에게 들려줍니다.
또 떨어질 수 있어도, 올라올 수 있음을 내가 믿으니, 마음껏 튀어오르고, 마음껏 추락하라고. 그 모든 여정에 함께 내가 나 자신과 함께 해 줄테니라고요.
‘아무도 관심 없을‘ 나의 모습에
‘아무도 기억하지도 않을’ 나의 모습에
내가 나를 가둬두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했구나.
안에 있는 사람은 밖의 자유를 동경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안의 안정을 동경하며,
어디에도 이상적인 곳은 없다는 진실을 외면했구나.
계속 내가 있는 이 자리를 부정했구나.
지금 있는 자리를 받아들이고,
내가 있는 곳에서 나만의 이상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구나.
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매우 밝고, 아름답게 일어나는 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진짜 제가 반년 간 경험한 ‘자기 사랑’은 오히려, 바닥에 있을 때, 그 바닥이 있음을 인정해주는 것. 그 바닥에 더 머물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 바닥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충분히 겪을 수 있게 허락해주는 것이란 걸 이렇게 배웠습니다. (코액티브 코칭 4단계 프로세스에서도 깊은 U자 터널을 코치가 고객과 함께 하지요)
![[출처] 책 ‘코액티브 코칭’ - 고객이 그것을 경험하도록 한다](https://cdn.maily.so/du/coachheeso/202611/1794034736857037.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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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어떤 11월을 원하시나요?
11월을 향한 여러분들의 의도(intention)는 무엇인가요?
[이번 주의 영상] 11월의 엔젤명상


누군가가 깊게 ‘잘 되면 좋겠다’라고 지지해 준 적 있나요.
‘저 사람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저 사람이 하는 일이 잘 됐으면’하고요.
그 마음 그대로 내 자신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품어보면 어떻게 될까요.
나를 축복(blessing)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의 11월의 의도문은 ‘나의 열등감을 껴안는다’ 입니다. 그것이 드러나는 실천 방식은 ‘제가 저 자신과 제 삶에 깊이 ’만족‘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비교’에서 오며, ‘타인과의 비교‘는 마음 지옥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이라 했습니다. 그 지옥에서 나오려 해도 자동적으로 계속 그 안에 들어가는 저를 어떻게 구원해줄까 생각하다, 지하철 역사 스크린도어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바로 [만족]이란 단어였습니다. 저는 제가 저 인 것에 만족합니다. 제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만족합니다. 제게 주어진 삶에 만족합니다. 깊이 만족하는 것을 경험하는 11월이 되고자 의도를 세우고, 여러분과 나눕니다. 여러분의 11월의 의도문과 실천 방식 모두를 제가 있는 자리에서 깊이 ’지지‘ 보냅니다.
오늘 레터 글을 읽으시며,
1) 어떤 자기 자신을 만났나요?
2) 그런 자기 자신과 다음 한 주 어떻게 살아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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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는코치
그것마저도 '그럴수 있지' 라고 말해주는건 어쩜 나 스스로에 대한 큰 용기이자, 나를 품어주는 위로가 될거란 생각을 합니다. 저역시 스스로를 자책하고 싶었던 수많은 시간을 곱씹기 보다는 '그땐 그게 최선이었어' 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달랩니다. 늘 생각나고 또 생각나지만 이제는 그 생각을 조금은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도 생겼어요. 저의 이 여유가 [따뜻함]으로 풍겨 나오는것 같아요. 요즘 종종 만나는 이들에게서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 라는 얘기를 듣게 되거든요..감사한 일이지요. 아직 엔젤명상 전이지만 오늘밤 저는 이 메시지를 품고 명상을 하게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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