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숴의 재즈레터 #8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클로이 넌 정말 여전히 낯선 매력이 있는 여자라니깐. 재즈처럼 말야.

2022.02.01 | 조회 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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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를이로부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재미있는 음악레터, 그리고 요즘 여행소설.

낯설고 그리운 너-
낯설고 그리운 너-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좋은 설날 저녁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또 푹 쉬셨나요. 사실 전 좀 바빴답니다. 제가 사는 곳에는 설날이 없어서, 오늘은 그저 평범한 화요일이거든요. 저는 마음속으로 설날을 최대한 따사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구독자님께서는 몸과 마음, 부디 평화롭고 따뜻한 설 연휴를 마음껏 즐기고 계시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럼, 오늘의 재즈레터를 쓰겠습니다. 

매력적인 여자란... Cara Sophia Köhler, nee Goldammer - Leo Putz
매력적인 여자란... Cara Sophia Köhler, nee Goldammer - Leo Putz

알랭 드 보통의 책의 인기가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 학년 여름방학이었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을 보고 단숨에 팬이 된 저는 동네에 있던 작은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그의 책을 빌려 보았지요.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책을 사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같은 책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불안’이라든가 ‘일의 기쁨과 슬픔’ 도 재미있게 읽었지요.

정말이지 알랭 드 보통은 세련된 느낌으로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고전이나 철학책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제주가 탁월합니다. 덕분에 파스칼의 ‘팡세’와 몽테뉴의 ‘수상록’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유학길을 떠나면서 가장 소중히 품고 온 책이 바로 이 두 권이 되었답니다. 당시 용돈을 아끼느라 보수동 책방 골목을 서성이며 팡세와 수상록을 찾아 냈던 기억은, 여러 풋풋한 기억들과 함께 그 시절의 즐거운 헌책방 골목의 냄새를 간직한 채 저만의 스윙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Swing! 흥겨운 재즈 상태를 말하는 거라고 할까요...?_)

Jazz Party! 사람들이 모이는 건 즐거운 일인데 말입니다. 요즘은..... Au Revoir (1924) - George Barbier 
Jazz Party! 사람들이 모이는 건 즐거운 일인데 말입니다. 요즘은..... Au Revoir (1924) - George Barbier 

책 뿐 아니라 모든 다른 취미가 그렇지만, 책을 예로 들었으니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책한권이 또 다른 책을 소개하고, 한 작가가 또 다른 여러 작가를 소개합니다. 전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책읽기를 참 좋아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교육 책이 한창 또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ㅎㅎㅎㅎ 사실 요즘 방영중인 꼬꼬무 라는 프로그램 이름의 원작인 셈인데…. 역시 뭐든 돌고 도는 겁니다....😁)

사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이전에 읽었던 책이나, 아니면 책을 정말 많이 읽지 않아서 내가 무엇을 읽고 싶은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그런 분들에게 저는 책 추천을 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막연한 추천이 사실 그 사람의 책 읽기에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그 책이 좋았다고 한들, 자신에게 와 닿지 않는 책 읽기는 지루하거나 또 주체적으로 즐거이 이해하지 않을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 몰랐을 책이니만큼, 좀 추천하기가 민망하죠. 서로의 책 취향을 잘 아는 사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데면데면한 책읽기 사이에서 책을 추천하는 건 어쩐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색의 옷을 추천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좀…. 미안한 마음도 들고, 굳이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달까요.

(재즈를 추천하는 글을 쓰면서 좀 모순입니다만,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만의 취향을 꼭 찾아가시기를 바라거든요. 누구의 추천도 좋지만 정말 좋아하는 걸 듣는 것! 말입니다.)플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배경은 프랑스가 많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배경은 프랑스가 많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란 작가는, 독자들에게 그 다음 책읽기에 대해 열정적으로 그리고 감미롭게 소개해 주는 분이 맞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소개하느냐 하면, 바로 살짝 귀띔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의 책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죠. ‘이 세상에는 이런이런 책들이 있어.’ 라고 하며 여유롭게 흘린다고 할까요. 이것이 좋으니 꼭 이걸 읽어 봐! 가 아닙니다. 선택하는 사람의 취향에 맡기는 방식이죠.

제가 북모임을 마냥 찬성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방식이 왠지 주체적인 글읽기라기보다 누군가 추천하고 따라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무분별한 책 추천과 그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구조가 좀 맘에 안 든다고 하겠습니다. 조금 조심스럽습니다만, 어쨌든 자유로운 책읽기를 강하게 찬성하는 쪽이라고 하지요. 

사실 책을 고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서평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 않습니까? (저는 서평을 보고 책을 사지는 않습니다. 뭐, 유명한 사람이 하는 말을 꼭 우리가 다 수용해야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 분의 취향이 그러하구나… 하는 정도로 참고를 할 수는 있겠지요. 물론 책을 쓴 작가의 입장에서 소중한 분들이 써 주시는 서평이란 정말 고마운 일이겠지만요. 책이란 어쨌든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읽는 사람이 느끼는 내용에의 감동이니까요.)

알쏭달쏭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키에르 케고르는 그의 대표작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이런 말을 써 두었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부조리한 존재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유는 행사하지 않고, 자신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자유를 요구한다. 그들은 사색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요구한다.”

키에르 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중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중-  모리미 토미히코 책 원작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중-  모리미 토미히코 책 원작

수 많은 글자들이 쌓여 길고 긴 두루마리를 이루듯 지금까지 그 수많은 책들은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책들이 자유롭게 소개하는 책들을 역시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거죠.

아하하!!! 각자의 스윙에 맞춰 마음껏 임프로비제이션 할 수 있다 이 얘깁니다.

책처럼 재즈 앨범들 사이에서도 이런 수줍은 소개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서로서로 아 이 곡은 저쪽 분이, 저 곡은 이쪽 분이하는 식으로 수줍게 소개를 건네죠. 일단 재즈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대중적으로도 또 재즈씬에서도 유명했던 연주자들을 만납니다. 예를 들여 쳇 베이커, 빌 에반스를 만날 수 있죠. 그들이 연주한 앨범을 하나하나 듣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눈에 익은 제목들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이때부터 재즈에 푹 빠지게 됩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죠? 아는 멜로디가 무섭습니다. 복잡한 것 같은 화음과 리듬 속에서 낯익은 소절을 만납니다. 친숙해 좋던 얼굴이 오늘따라 낯설고 색다르게 느껴지는 기분이랄까요. 그때, 우리는 새삼스럽게 익숙하고도 낯선 설렘을 느끼지 않습니까? 하하!

낯선 향기. 재즈칼럼니스트 '낯선청춘' 님은 그 작명이 기가막힙니다. 재즈를 한 단어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The Sweet Scent - Louis Picard
낯선 향기. 재즈칼럼니스트 '낯선청춘' 님은 그 작명이 기가막힙니다. 재즈를 한 단어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The Sweet Scent - Louis Picard

? 이 곡은 저번에 들었던 앨범에도 있었는데…”

안 들어 볼 순 없죠. 그러면 지금껏 낯익었던 곡이 완전 새롭게 들립니다.

, 이건 저번이랑 좀 다르잖아?”

우리는 같은 곡, 그러나 새 버전을 찾은 겁니다. 설레는 순간이죠.

저번 버전이 좀 더 내 취향인가, 아니야 이건 마지막 부분이 좋은데?”

아마 이런 감상평을 스스로 내립니다. 자자, 그렇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가는 건 식은 죽 먹기입니다.

? 처음보는 연주잔데? 같은 곡을 녹음 했잖아? 피아노랑 트럼펫 버전만 들었는데, 색소폰이네?”

어떤 느낌인 지 감이 오시나요?

오늘처럼 눈 내리는 밤에...
오늘처럼 눈 내리는 밤에...

우리에게 재즈 앨범들이 저마다 다른 시대와 다른 인생을 살았던 연주자들을 불규칙적으로 소개해 주는 겁니다. 언제 소개를 받게 될 지, 또 약속을 잡을 지 모르는 자유로운 상태로 말이죠.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더 들죠. 성이숴의 재즈레터 #1 편에서 소개한 Autumn Leaves 같은 곡의 경우, 요즘에도 많이 연주되는 정말 유명한 곡입니다. 아마 재즈를 전혀 듣지 않으셨던 분이라도 어디선가 들어 본 그런 곡이죠. 요즘 젊은 세대 뮤지션들도 자신만의 색깔로 꾸준히 연주하는 곡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여전히 'Autumn leaves'란 같은 이름을 가진 '낯선 친구', 그러나 내게 딱 맞는 친구를 소개받을 지도 모르는 겁니다.

자 그럼, 저는 재즈 골목으로 나가 오늘은 꼭 만날지도 모르는 친구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저기 재즈 클럽에서 은은한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군요. 안개가 자욱하게 낀 저녁입니다만 아마도 밤은 청량하게 맑을 겁니다. 오늘 밤 저의 재즈 바 깊은 성게의 바다에서 소개하는 연주자는 누구일까요? 저기 감색 코트와 검정 코트를 입은 남자 둘이 들어가는 군요. 에이 전 그냥 이 재즈 클럽에 온 다른 사람들처럼 들으러온 겁니다. 그 둘이야 이야기를 하든 듣든 알아서 하겠죠. 이 쪽에서 보니 검은 코트 쪽은 한숨을 쉬고, 감색 코트 쪽은 즐거워 보이는 군요. 무슨 얘길 하는 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전 음료를 한 잔 시키러 가겠습니다. 정 궁금하면 둘은 바에 앉아 있으니 같이 음료를 가지러 가는 척 하면서 얘기를 좀 들어볼 수도 있죠.

같이 갈래요?

 

 

  • 추천음악 1 : 마림바 재즈, 이런건 처음일껄?
Lionel Hampton - But beautiful

Geoff Dyer 제프 다이어의 책 'But Beautiful' 이란 재즈 책이 있습니다. 재즈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꼭 한 번 보면 좋죠. 하하 저도 결국 아무렇지 않게 추천을 하고 있군요. 그렇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라면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셨을테니까요~ 

 

  • 추천음악 2 : 호불호 없는 완벽한 한 곡을 고르라면..... 전 이걸 틀겠습니다. 
Bill Evans - Waltz for Debby 

재즈를 좋아하지 않아도,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나 그저 묵묵히 듣고 어딘지 모를 뭉클함을 느낄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 들어보면 느낄 수 없는 이 따스함이란.... 정말 좋은 곡이니, 찬찬히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준비물: 조용한 밤과 어떤 상태라도 좋은 마음 조금.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즈를 함께 듣는 분들이 계시다는 생각만으로 즐겁게 재즈레터를 보냅니다. 

 

 

그럼 다음 레터로 만나요.

우리 같이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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