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팬이 몇 명입니까
누가 저한테 물었습니다. 팬이 몇 명이냐고.
대답을 못 했습니다. 숫자가 기억 안 나서가 아니라, 뭘 세야 하는지를 몰라서요. 구독자를 말해야 하나, 댓글 다는 사람을 말해야 하나. 입을 떼려다가 그만뒀습니다.
별것 아닌 질문인데 그날 이후로 계속 걸렸습니다. 저는 평소에 사람이 왜 모이고 왜 흩어지는지를 붙잡고 사는 편인데, 정작 가장 기본이 되는 단어 하나를 정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팬. 다들 쓰는 말이고, 저도 수백 번 썼고, 그런데 뜻을 모릅니다.
사전을 찾았습니다. 팬은 열정적인 지지자라고 나옵니다. 그럼 열정적인 지지자가 뭐냐.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랍니다. 좋아하는 건 뭐냐. 호감이랍니다. 호감이 세지면 숭배랍니다. 그래서 팬은 호감과 숭배 사이 어딘가입니다.

전부 동어반복입니다. 좋아함을 좋아함으로 설명하고 강도를 강도로 설명합니다. 온도계 없이 "좀 뜨거운 상태"라고 말하는 거죠. 말은 됐는데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 안 했습니다. 그냥 측정의 문제라고 봤어요. 정의야 애매해도 되고, 대신 숫자를 잘 보면 된다고. 구독자 수, 조회수, 댓글 수, 재시청률. 이 정도 보면 대충 팬의 규모는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오래 못 갔습니다.

10만 구독자 채널이 굿즈를 냈다가 200개도 못 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3천 명짜리 채널이 비슷한 가격대 물건을 하루 만에 완판시키기도 합니다. 처음엔 기획이 좋았네 나빴네로 설명하려 했는데, 여러 사례를 보다 보니 그걸로는 안 됩니다. 규모와 결과가 그냥 따로 놉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구독자 수는 아직 이탈하지 않은 사람의 수입니다. 조회수는 클릭한 사람의 수고요. 댓글 수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수입니다. 전부 팬과 상관은 있는데, 팬의 수는 아닙니다. 상관관계를 정의로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숫자를 버렸습니다. 대신 행동을 보기로 했습니다. 마음속은 못 보니까 밖으로 나온 것만 보자. 이건 꽤 괜찮은 방법 같았습니다.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본다. 라이브에 들어온다. 물건을 산다. 남한테 추천한다. 누가 욕하면 편을 들어준다. 이 다섯 개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실제 사람들한테 하나씩 대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막혔습니다.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편의상 A와 B라고 하겠습니다. A는 3년째 거의 모든 영상을 봅니다. 굿즈도 샀고, 주변에 추천도 했고, 댓글창에서 시비 붙은 사람한테 대신 싸워주기도 했습니다. B도 똑같습니다. 보고, 사고, 추천하고, 방어합니다. 다섯 칸 전부 체크됩니다. 한 칸도 안 다릅니다.
그런데 A는 반년쯤 뒤에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싸운 것도 아니고 실망했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그냥 안 옵니다. B는 그 채널이 컨셉을 완전히 갈아엎었을 때도 남아 있었습니다. 남아서 다른 사람들한테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자기가 안다고 설명하고 다녔습니다.
이걸 보고 좀 허탈했습니다. 몇 달 동안 만든 게 체크리스트 한 장인데, 그 한 장이 A와 B를 구분 못 합니다.

행동은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입니다.
여기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밖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눌렀는가, 샀는가, 달았는가. 그런데 완전히 똑같은 행동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원인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결과가 같다고 원인이 같은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행동을 아무리 정교하게 쪼개도 답이 안 나오는 게 당연했던 거예요.
팬은 밖에서 보이는 게 아니라 안에서 작동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갑자기 신비주의처럼 들립니다. 마음속은 못 보니까 결국 모른다는 얘기 아니냐고요. 저도 그 생각이 들어서 한참 멈췄는데, 세어보니까 아니었습니다. 안에서 작동하는 게 무한히 많으면 포기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세 개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계속 보게 만드는 내부 동력은 딱 세 종류입니다. 만족감, 부채감, 일체감. 그리고 각각이 약한 상태와 강한 상태로 나뉩니다. 그래서 칸이 여섯 개 나옵니다.

우리가 팬이라고 불러온 사람들은 그 여섯 칸 어딘가에 흩어져 있습니다. 팬이 아닌 사람들도 그 안에 섞여 있습니다. 한 번도 구분한 적이 없으니까 전부 뭉쳐서 팬이라고 부르거나, 아니면 아무도 팬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겁니다.
정의가 없으면 두 가지를 못 합니다. 셀 수 없고,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팬을 만든다는 말은 전부 감으로 하는 소리였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미리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여섯 칸 중에서 팬은 앞의 두 칸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가장 만족하고 있는 사람, 당신을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팬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으시죠. 저도 처음 이 결론이 나왔을 때 계산을 다시 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다시 해도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다음 편에서 첫 번째 감정부터 뜯어보겠습니다. 잘해주는데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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