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채널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상 퀄리티가 좋습니다. 댓글에 하나하나 답을 답니다. 무료로 주는 자료도 아낌없이 줍니다. 사람들 반응도 나쁘지 않아요. 댓글창에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정말 도움됐어요" 같은 말이 꾸준히 올라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유료 강의를 열면 안 팔립니다. 커뮤니티를 만들면 조용합니다. 뭘 해도 사람들이 움직이질 않아요. 운영자 본인이 제일 답답해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묻는데, 저도 한참 대답을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때까지는 잘해주면 팬이 된다고 믿고 있었거든요. 이게 제 선입견이었습니다. 좋은 걸 계속 주면 호감이 쌓이고, 호감이 쌓이면 팬이 된다. 그러니까 문제는 늘 퀄리티나 친절도나 빈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채널은 셋 다 만점인데도 아무것도 안 됩니다. 제 가설이 틀린 겁니다.
1편에서 안에서 작동하는 게 세 개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족감, 부채감, 일체감. 이번 편은 첫 번째부터 갑니다.
만족감이 뭔지를 정확히 적어보려고 몇 번을 고쳐 썼습니다.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쓰면 또 동어반복이 됩니다. 그래서 계산식으로 바꿔봤어요. 사람은 뭔가를 받기 전에 반드시 기대를 합니다. 이 영상 이 정도겠지, 이 사람 이 정도 해주겠지. 그리고 실제로 받습니다. 만족감은 그 둘의 차이입니다.

받은 것 빼기 기대한 것.

기대를 5만큼 했는데 3을 받으면 마이너스 2입니다. 불만족이죠. 기대를 5만큼 했는데 5를 받으면 0입니다. 이게 만족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참을 멈췄습니다. 0이잖아요.
만족은 계산이 맞아떨어진 상태입니다. 딱 맞았다는 건 남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잔액이 0이면 거래는 끝난 겁니다. 서로 빚진 게 없고, 다음에 뭘 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아까 그 채널은 실패한 게 아니었습니다. 너무 정확하게 성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람들이 기대한 만큼 정확히 받고 있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 남았던 거예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는 칭찬이 아니라 영수증이었습니다.
만족감 안에서도 강도는 나뉩니다. 약하면 "이거 괜찮네" 정도입니다. 강해지면 "이 사람 건 믿고 봐도 된다"가 됩니다. 저는 이 강한 쪽을 신뢰자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창작자가 목표로 삼는 지점이 여기예요. 신뢰받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강한 신뢰자도 계산은 여전히 0입니다. 신뢰는 "이 사람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건 기대와 실제가 계속 일치한다는 말입니다. 기대가 안정적으로 충족되는 상태예요. 신뢰가 깊어질수록 잔액은 더 정확하게 0에 붙습니다.

그래서 이 두 칸은 팬이 아닙니다. 만족한 사람도, 당신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도 팬이 아닙니다. 1편 끝에 던져놓고 간 그 말의 정체가 이겁니다.
그럼 언제 남습니까. 초과했을 때만 남습니다.

기대를 5만큼 했는데 9를 받으면 4가 남습니다. 이 남은 4가 부채감입니다. 이게 중요한데, 부채감은 만족이 커진 게 아닙니다. 만족의 연장선 끝에 있는 게 아니에요. 계산이 안 맞아떨어진 상태, 즉 초과분입니다. 종류가 다른 겁니다.

사람은 잔액이 0일 때는 가만히 있지만 마이너스일 때는 움직입니다. 뭔가를 받았는데 갚지 않은 상태가 불편하거든요. 그 불편함이 행동을 만듭니다. 댓글을 답니다. 굿즈를 삽니다. 친구한테 추천합니다. 이건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갚으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부채감도 약한 쪽과 강한 쪽이 있습니다. 약하면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 돈이 안 드는 선에서 갚습니다. 저는 이쪽을 약한 지지자라고 부릅니다. 강해지면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자기 이름을 걸고 남한테 추천합니다. 강한 지지자죠.

여기서 좀 허탈한 사실 하나. 우리가 지금까지 "팬"이라고 불러온 사람들은 사실상 이 강한 지지자 한 칸이었습니다. 굿즈 사고 라이브 오고 방어해주는 사람들. 여섯 칸 중에 딱 한 칸을 보고 팬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부채감에는 치명적인 성질이 하나 있습니다.
줄어듭니다. 그냥 두면 저절로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갚으면 사라집니다. 이건 당연하죠. 빚을 갚았으니까요. 둘째, 이게 더 무서운데, 반복하면 기대선이 올라갑니다. 처음에 9를 받았을 때는 4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음에 9를 기대합니다. 또 9를 주면 이번엔 0입니다. 같은 걸 계속 주면 초과분은 0으로 수렴합니다. 잘해주는 게 반복될수록 부채감은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이걸 알고 나서 1편에 나온 A가 다시 이해됐습니다. 3년을 보고 굿즈도 사고 대신 싸워주기까지 했는데 반년 뒤에 조용히 사라진 사람이요. 저는 그 사람이 실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서운한 일이 있었겠지, 하고요. 아니었습니다.

다 갚은 겁니다.
조용히 사라지는 건 감정이 상해서가 아닙니다. 잔액이 0이 돼서 그런 거예요. 빚이 없는 사람은 그 방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싶을 때, 그건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 다들 청산을 마친 겁니다. 이게 기본값입니다. 가만히 두면 모든 관계는 0으로 갑니다.
여기까지가 좀 우울한 결론이라는 거 압니다. 만족시키면 아무것도 안 남고, 초과해서 줘도 결국 갚고 사라진다니까요. 그럼 남는 게 없다는 얘기 아니냐고요.
저도 여기서 한동안 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산이 안 맞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 갚았는데도 안 가는 사람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들어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위의 공식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처음엔 예외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예외치고는 수가 너무 많더군요.
그래서 이 사람들만 따로 모아서 봤습니다. 공통점이 하나 있었어요. 갚으려고 한 행동 때문에, 자기 인생이 조금 바뀌어 있었습니다.
다음 편은 세 번째 감정입니다. 부채감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걸로 바뀌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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