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기의 성북동

열 번째 성북동 문학 산책기

2026.09.29 | 조회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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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은 신기한 동네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유독 많이 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달항아리를 자주 그렸던 김환기, 미술사학자이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순우,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전향한 김용준 같은 사람이 있고 이태준, 서세옥, 송영방 등 여러 예술가들이 성북동에서 조선 골동품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예스러움이 가지고 있는 느긋한 정취. 이것은 우리가 성북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북동의 예술가들과 우리는 어쩌면 같은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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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인 한창기는 지극히 성북동스러운 인물이다. 뿌리깊은나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잡지다. 1976년 3월 창간되어 1981년 7월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기까지 뿌리깊은나무는 민중의 생활 양식을 깊게 조명했다. 소수가 향유하던 고급문화가 아니라 평범한 민중의 문화와 물건. 한창기는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안을 가졌다. 그 외에도 문학, 각종 예술 비평, 광고까지. 뿌리깊은나무는 문화 전반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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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뿌리깊은나무가 기념비적인 잡지인 이유는 따로 있다. 먼저, 뿌리깊은나무는 한글전용 잡지를 표방하면서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아직 일본식 세로쓰기와 한자 사용이 남아있고 영어까지 들어온 시기에 뿌리깊은나무는 입말(구어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한글의 아름다움을 수호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필자의 원고를 편집부에서 수정했다. 단순히 맞춤법 수정 정도가 아니었다. 뿌리깊은나무만의 문체로 글을 전반적으로 수정했고 필자에 따라 이럴 거면 싣지 말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수정된 글에 독자 반응이 좋자 오히려 반기는 필자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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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관점에서도 탁월했다. 뿌리깊은나무는 국내 잡지 최초로 서양식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편집 디자인이 적용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편집자가 본문 배치를 했지만(그래서 디자인이라고 할 게 없었고 이를 ‘와리스께’라고 불렀다.) 뿌리깊은나무는 이상철이라는 디자이너가 아트 디렉터로 디자인을 전담했다. 그리고 편집, 사진, 광고, 인쇄, 판매 등 관련된 사람들의 실명이 기록된 최초의 잡지다. 이 모든 것은 마지막으로 한창기의 손을 거쳤다. 그는 출판인이자, 문화비평가이고, 카피라이터, 작가, 국어학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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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놀라긴 이르다. 한창기는 세일즈맨 출신이다. 그것도 아주 탁월한 세일즈맨. 한창기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의 한국 지사장이었다.(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과사전이다.) 일찍이 영어를 잘 했던 한창기는 대학 졸업 후 미 8군 영내에서 귀국행 비행기 표나 영어 성경을 판매했다. 그러다 우연히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보고 감명을 받아 시카고에 있는 본사에 편지를 보내 브리태니카 한국 지점을 설립했다. 아니 감명을 받았다고 본사에 편지를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심지어 그 한국 지사를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낸 지사로 성장시켰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1세트가 피아노보다 비쌌던 1970년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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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는 브리태니카 한국지사의 문화 사업의 일부였다. 여기서도 한창기의 천재성이 드러난다. 외국 자본을 이용해서 우리 전통을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었다. 지사 신분이라 자유롭게 자금을 운용하기 어려웠지만, 한창기는 시카고 본사에 백과사전에 한국에 대한 내용이 너무 없어 소문이 좋지 않으니 한국 문화를 담은 잡지를 하루빨리 내야 한다는 식으로 설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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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는 판소리 감상회를 무려 100회나 열었고, 앞차와 찻그릇을 판매해 중국이나 일본도 아닌 한국만의 잎차 문화를 알렸다. 11권의 한국의 발견 시리즈로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당시 생활 풍경을 기록했다. 민중자서전 시리즈에서는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민중의 이야기를 채록했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 독재와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격동의 근현대를 몸으로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가 책에 있다. 정말 기가 차다. 관련 정부 부처가 해야 할 일을 작은 출판사에서 수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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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전시 <뿌리, 깊은, 나무>가 진행 중이다. 최순우 옛집은 1930년 정도에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최순우는 1976년에 이사와 198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집에 살았다. 한창기는 1978년에 성북동에 이사왔고 (후에 뿌리깊은나무 사무실도 성북동으로 이전했다), 서로 비슷한 취미를 가졌기에 둘 사이에는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순우는 한창기에게 뿌리깊은나무에 필요한 인재를 추천하기도 하고, 뿌리깊은나무 1977년 11월호에 최순우 옛집이 소개되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온 사진을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전시에서는 한창기와 관련된 여러 자료와 함께 뿌리깊은나무 스캔본을 열람할 수 있다. 또 현대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뿌리깊은나무를 표현한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뿌리깊은나무의 관점으로 보자면 가지가 새롭게 뻗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옥 마루에 앉아 뿌리깊은나무를 슥슥 넘겨보고 있자니 이게 신선놀음이겠다 싶었다. 사랑방에는 ‘두문즉시심산(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이를 보더라도 성북동의 뿌리는 바로 이 한적함이 아닐까 싶다. 돌고돌아성북천 계정을 팔로우하는 데다 2500자 분량의 이 글까지 읽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린다.

 

글쓴이. 고운

편집. 돌고돌아 성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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