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동에서 혜화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 성북근현대문학관이 있다. 성북동 길을 따라 꽤 올라가야 해서 언제나 한적하지만 성북근현대문학관은 성북의 정수다. 우리가 성북을 좋아하는 이유를 따라 올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북근현대문학관에는 우리와 같은 이유로 성북을 찾았던 작가들의 이야기가 있다. 현재 <길 위의 시인, 신경림>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신경림이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낯설 수 있겠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라는 구절은 들어봤을 것이다. 시대의 아픔과 소외된 이웃에 관심을 두었던 신경림은 실천문학, 민중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시를 썼다. 1956년에 등단하여 시인이 되었지만 그 후 10여 년간 시를 쓰지 않았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고향인 충주로 내려갔고 거기서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나 의미에 회의가 들었다.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고, 노동판과 광산에서 일을 하며 10년을 보냈다. 절필했지만 그는 이때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이후 그가 다시 시를 쓸 때 중요한 바탕이 된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시를 쓸 때, 그는 소외된 이웃에 특별히 눈길을 주었다. 노동, 사회, 인권, 환경 등 각종 사회문제를 시로 썼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중 시인으로 투옥되었고, 어린이를 위한 동시를 썼며, 시로 세월호 참사를 추모했다.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에 수록된 <그날, 아아 그날>에서 4월 16일은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바다도 울던 날’이었다. 신경림은 시는 시대의 요구에 해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윗 문단에 언급한 <가난한 사랑노래>다. 이 시의 부제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다. 쓰여진 배경은 이렇다. 술집에서 어쩌다 한 청년을 알게 되었다. 그 청년은 결혼을 할 예정이었지만 노동운동가여서 지명수배를 받고 있던 터라 공개적으로는 결혼식을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지하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 부부를 위해 쓴 시가 <가난한 사랑노래>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문장들엔 이상한 구석이 있다. 가난하다고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사람’이라면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 아니던가. 그런데 이 당연한 물음에 가슴이 철렁이는 까닭은 가난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인간성을 지워왔던 역사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층’ 같이 개인을 묶어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바꾸어 부른다. 그러고 성격을 부여한다. 이렇게 우리는 싸잡아 딱지를 붙이는 데 익숙하다. 단호한 시인의 물음은 우리를 카메라 렌즈를 당겨서 어떤 ‘한 사람’ 앞에 데려다 놓는다. 응당한 감정을 가진 한 사람 말이다.

신경림은 성북구 정릉동에서 30년을 살았다. <가난한 사랑노래>도 성북구에서 탄생한 시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에는 그가 골목길을 걸으면서 바라본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담겼다. 시를 읽고 배경이 되는 골목을 찾아보니 오며 가며 몇 번 지나갔던 기억이 났다. 시를 읽자 그 길의 모습이 세피아 톤 바뀌는 듯했다. 길은 신경림의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시로 말을 건냈다. 문학의 아름다움은 이야기에 뿌리를 둔다. 이야기를 압축하여 명확하고 힘 있게 이야기하는 글이 시다. 신경림은 특히 작은 것에 있는 거대한 이야기를 발견해 시로 썼다. 우리는 어떤가. 발끝을 바라보며 걷지는 않나. 그렇다면 미워하기는 너무나 쉽다. 누군가가 내 걸음을 방해하면 딱지를 붙이고 곁눈질로 흘기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원래 이렇게 설교하는 듯한 교훈적인 글엔 어딘가 소름이 돋았지만 성북근현대문학관을 나오면서 가슴에 찼던 고양감에 어쩔 수 없었다. 역시 무엇이든 함부로 딱지를 붙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전시는 6월 7일까지 열린다. 여유 있지만 고양감은 추운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감정이 아니던가. 발길을 서두를수록 좋겠다.
글쓴이. 고운
사진. 고운, 돌고돌아 성북천, 성북마을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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