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안예지 원장입니다.
내일이면 추석 연휴가 시작되네요.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나고 친척들도 한자리에 모이는 집들이 많으실 텐데요. 이럴 때 아이 키우는 집에서는 은근히 마음 쓰이는 순간이 하나 있지요. 문을 열자마자 다들 반갑게 맞아주시는데 아이는 엄마 뒤로 쏙 숨어버리는 거예요.
“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
“삼촌한테 안녕하세요 해야지.”
한 번 말했는데도 꿈쩍도 안 하면 괜히 엄마 마음이 더 급해집니다. 평소에는 인사도 곧잘 하는데 왜 오늘따라 이러나 싶고, 어른들 보시기에 버릇없어 보이는 건 아닐까 신경도 쓰이고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그냥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두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주냐에 따라 아이에게 다른 결과가 생길 수 있거든요.
처음에는 숨지만, 조금 지나면 잘 노는 아이가 있어요
처음 도착했을 때는 엄마 옆에 딱 붙어 있어요. 말도 잘 안 하고, 누가 말을 걸면 고개만 숙이고요. 그런데 10분, 20분 정도 지나면 슬슬 주변을 보기 시작합니다. 사촌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구경하고, 할머니 옆에도 슬쩍 가보고, 조금 더 지나면 아까 엄마 뒤에 숨어 있던 아이가 맞나 싶게 잘 놀기도 하지요.

이런 아이는 새로운 사람이나 장소를 처음 만났을 때는 조심스럽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비교적 편하게 적응하는 아이일 수 있어요. 이럴 때는 현관에서 인사를 계속 시키기보다 처음 몇 분만 조금 시간을 줘보세요.
“오랜만에 봐서 아직 좀 낯선가 봐요. 조금 있다가 인사할게요.” 하고 한번 넘겨주시고, 아이 표정이 조금 풀렸을 때 “이제 엄마랑 같이 안녕하세요 해볼까?” 하고 다시 해보는 거예요.
반대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아이도 있습니다
한참이 지나도 엄마 옆을 잘 떠나지 않는 아이도 있어요. 사촌들이 놀고 있어도 한참 바라만 보고, 누가 말을 걸면 더 굳어버리고, 한 시간이 지나도 크게 편해지지 않는 아이요. 이런 아이는 처음 낯선 상황을 조심스러워할 뿐 아니라, 그 상황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편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당일에 계속 “이제 괜찮잖아. 아까부터 있었는데 왜 아직 그래.” 하기보다, 아예 만나기 전부터 조금 준비해주는 게 더 필요할 수 있어요.
“내일 할머니 집 갈 거야. 누구누구 삼촌이랑 땡땡이 형아도 있을 거야. 처음엔 엄마 옆에 있어도 돼.” 친척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해봐도 좋아요. 이런 친구들일수록 낯선 상황을 힘들어하지 않도록 단계를 작게 작게 나누어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낯을 가리느냐’보다 그 뒤의 반응을 체크해주세요
처음 새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보시지만,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빨리 편해지는지 둘 다체크해주세요. 겉으로는 둘 다 “낯가려요”인데, 이 두 가지를 나눠 보면 부모가 해줄 일도 조금 달라집니다. 처음에만 조심스러운 아이라면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해보면 되고,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아이라면 미리 알려주고, 조금 더 천천히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좋겠지요.
물론 인사는 가르쳐야 합니다. 예의는 배워야 하는 것이니까요. 다만 그 자리에서 바로 해내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마다, 상황마다 조금 다르게 접근해주시면 좋겠어요.
아이의 이런 모습을 꾸준히 관찰하신 적 있나요?
이런 아이의 쭈뼛거리는 반응이 사람을 만날 때만 나타나지는 않아요. 새 학원에 처음 갔을 때, 여행지 숙소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보는 음식을 앞에 뒀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건 일단 해보고 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참 관찰하고 확인한 뒤에야 움직이는 아이도 있고요.

이런 모습을 보고 "기질이 다르다"고 해요. 기질이라고 해서 아이를 몇 가지 성격 유형으로 딱 나누는 것은 아니고요.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변화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감정이 올라왔을 때 얼마나 크게 반응하는지 이런 아이의 기본적인 반응 방식을 조금 더 자세히 보는 겁니다.
기질을 안다고 해서 아이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부모가 아이를 조금 덜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왜 이것도 못 하지?”가 아니라 “아, 이 아이는 처음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한 아이구나.” 라고 볼 수 있게 되고, 반대로 “계속 기다려줘야 하나?”가 아니라 “이 정도면 이제 한 걸음 해보자고 해도 되겠구나.” 하는 타이밍도 조금 더 잘 보이고요.
저는 기질을 보는 이유가 아이에게 모든 상황을 맞춰주기 위해서라기보단, 어디에서는 조금 기다려주고, 어디에서는 한 걸음 도와줄지를 알아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추석에 아이가 친척 앞에서 엄마 뒤로 숨는다면 인사를 잘했나 못했나만 보지 마시고 한번 지켜봐 주세요. 처음에는 어땠는지, 10분 뒤에는 어땠는지,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또 어떻게 달라지는지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새로운 학원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처음 보는 음식 앞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반복된다면 그게 우리 아이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왜 우리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 유독 힘들어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셨다면 한 번쯤 아이의 기질을 제대로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저도 진료실에서 아이의 행동이나 식사 문제를 상담할 때 필요하면 기질검사를 함께 보고 있어요. 아이를 어떤 유형으로 정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는 편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요.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고, 그리고 그에 맞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어쩌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추석에 아이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이런 부분도 한 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행복한 추석 명절 되세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