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호 주간 공심 뉴스레터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고비가 나를 쓰러뜨릴 때

2021.04.30 | 조회 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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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도 건강하게 잘 지내셨나요?

주간 공심 뉴스레터는 앞으로 변화를 모색할 예정이에요. 변화를 모색하려는 이유는 제가 파트 타임 직장인(?)에서 풀 타임 직장인으로 신분을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기까지 수없이 많은 생각과 고뇌를 해야 했어요.

글쓰는 것(작가의 신분) 제가 이끄는 모임이 과연 미래의 저에게 무엇이 되어줄 수 있을지 예측이 불가하더군요. 또한 그 모임은 순수하게 ‘즐겁고 재미있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모토를 생각했을 때, 직장은 저에게 필수가 되더군요. 생업이 안정되어야 모임도 재미있게 임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에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거죠. 앞으로 보내드리는 제 글은 선택과 집중에 따라 기존 글보다 더 뾰족하게 제작할 예정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할 예정이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에 빠져볼 예정입니다. 여러분도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당장 뛰어드세요. 20년 지나서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놓고 후회하지 마시고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고 보내드리는 글은 처음 글을 쓰겠다고 작정했을 때, 카카오 브런치에 ‘공대생의 감성 글쓰기’라는 매거진을 만들고 제목에 맞는 글을 쓰기 시작했듯, 보내드리는 글도 그 목적과 방향에 부합하는 글을 쓰려고 해요. 감성 에세이, 어떤 감성이 담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성, 마음을 건드리고 생각할 거리가 있는 글을 보내드리려고 해요. 그리고 등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 꾸준하게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보성 글은 지양하려고 해요. 전혀 안 쓰지는 않겠지만, 감성 에세이와 시를 비교해본다면 빈도수에서 떨어지게 될 겁니다.

깊고 세심하게 읽어주시는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에세이 :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고비가 나를 쓰러뜨릴 때

걷는 건 항상 문제를 일으켰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걷는다는 의미는 장시간 걸어야 한디는 걸 뜻했는데, 바로 지구력의 곡선이 경과된 시간에 반비례하며 추락한다는 데 있었다. 사실 이것은 의지와는 별반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절대 지기 싫어하는 성격, 더군다나 자기 자신에게 진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저질 체력 앞에서는 그 어떠한 의지마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40킬로그램의 군장을 어깨에 짊어지고 해발 1,300미터를 자랑하는 대암산(1)을 넘어가는 장면으로 기억이 회고된다. 아침부터 걷기 시작해서 오후 반나절쯤 경과됐을까. 왜 걸어야 하는지 단지 훈련이라는 이유 하나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수백 명의 중대원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오직 앞사람의 뒷모습에 의지하며 지금 이맘때의 계절을 숨 가쁘게 넘어가는 중이었다. 진심으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걷는 거 하나는 오래도록 자신 있었는데, 나약한 지구력 때문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고비 하나만 넘기면 돼. 저 능선 하나 넘어가면 곧 정상이야” 누군가의 달콤한 거짓말에 몇 번을 속았는지 모른다. 그런 거짓말을 열 번은 더 들었을까, 결국 나는 열한 번째에 무너지고 말았다.

의지는 이기고 싶었지만, 나는 체력이라는 괴물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싸움에 지고 나서 산등성이 어디쯤, 그러니까 5월의 더덕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양지바른 숲속에 혼자 앉아서, 왜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 건지, 노래진 하늘과 그 구름 사이를 유유하게 흘러가는 잿빛 구름을 보며 탄식했지만, 딱히 그 순간을 벗어날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풀숲에 드러눕고 말았다. 연두색 풀잎, 풀벌레들의 여린 속삭임, 산새들의 높은 울음소리를 들어가며, 미래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판단하게 될까? 하며 예측할 수도 없는 미래만 정처 없이 그리고 있었달까.

인생의 고비는 이렇게 아무 때나 엄습한다. 그때는 더할 나위 없이 고통만 가득한 고비, 의지로는 극복되지 못하는 고비, 이탈자로 낙인찍힐지라도 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굴복해야 하는 고비, 나는 땀으로 범벅된 군복을 입은 채로 어떻게 고비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을까 생각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생각은 대체로 쓸데없었다.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결정체. 이탈해버린 나약한 자신을 조우해한다는 감각만 또렷하게 만든 생각. 뭐 그래도 다행인 것은, 포기하니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닌 세상을 볼 여유, 세상 마지막 순간에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자연의 형태 정도 말이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의 나는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다. 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판단할 총체적인 자유를 가졌다. 그때처럼 강압에 시달리거나 위세에 굴복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다면 실행하고 하기 싫으면 단념하면 그만이다. 그때는 명령만 존재했다면 지금은 그 명령조차 나에게서 비롯된다. 그만큼 책임의 양은 늘어났지만.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제논은 우주엔 우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간의 미래는 자연이 만든 법칙에 따라 배치된다고 말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나의 이탈 역시 미리 정의된 것으로 판단하면 될까. 이미 머나먼 과거로 떠나보낸 20대 초반의 방황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작용을 하게 될지 예측 아닌 예측을 해야 하는데, 이미 현재는 결정 난 상태이니 난 그때의 상황을 현재에 맞게 조각을 맞출 수밖에 없겠지만. 물론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제우스는 인간의 육체를 제한했지만, 영혼이라는 제한적인 자유를 제공했기 때문에, 자유가 육체에 속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정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지난번 과제 평가에 문제가 생겨 이의 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대전에서 11시에 발표 일정이 잡혔으니 적어도 서울에서 7시에는 출발해야 9시 전에 대전에 도착하고, 발표하기 전 예행연습도 해보고 마음도 편안하게 가다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여기까지는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왜 내가 이의 신청 중심에 서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해당 과제의 연구책임자를 맡은 상태였다. 여기서 상태라는 표현을 쓴 건 서류상으로만 그렇다는 얘기다. 실제로 내가 실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사실, 연구소에서 책임자를 맡을 만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나뿐이었다는 사실, 다른 사람은 모두 다른 과제 책임자를 맡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내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과제의 억지로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예비 연구 결과에 오해가 생겨, 어쩌면 회사가 제재를 받을 수도 있고 나아가 개인에게까지 제제가 가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비유해보자면, 어쩌다 보니 꽤 높은 곳, 대암산 중턱 정도까지 오른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했달까. 꾸준하게 내 속도를 지키며, 지치지 않게 적당히 쉬어가면서 때로는 영혼을 몰아쳐가면서 정상까지 올랐으나, 대암산 행군 중에 벌어진 예측 불가의 사건처럼 난 또다시 고비를 넘지 못하고 풀숲에 드러누워야 할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때와 다른 게 한 가지 있었다. 21살 대암산 중턱 부근에서 쓰러졌을 때,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오직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당위성만 존재했으니까,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냥 쉬지 않고 한 방향으로 걸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쉬는 순간이 없는 건 아니었다. 50분 걷고 10분 쉰다는 철저한 규칙이 있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 쉬는 시간이라는 선택도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었을 뿐.

과제에 문제가 생겨서 만약 불성실 수행 평가(미완료)를 받는다면 토해내야 할 금액도 문제였지만, 불성실이라는 단어와 그것 때문에 내가 감당해야 할 자격 제한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1995년의 대암산과는 다르게 나는 선택의 권리가 존재했다. 그만두던가, 받아들이던가, 적극적으로 항의하던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현실에서 도망친다는 것이었고, 받아들인다면 사업권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항의한다면 전략적으로 디펜스를 펼쳐야 할 것이었다. 나는 사건으로부터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서서 문제의 본질을 따졌다. 그때처럼 오직 앞으로 전진만 하는 것이 아닌 옆길도 살펴보고 가끔 뒤도 돌아보는, 이익과 손해를 나타나는 모든 경우를 산정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통찰력을 지녔다는 것이 그때와 다르다는 것.

과제의 실패와 성공, 두 가지 요소는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내가 기대하는 것과 회사가 기대하는 것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가. 디펜스를 해야 한다면 어떤 전략으로 발표를 진행해야 하는가. 평가 위원에게 팩트와 근거로 의견을 피력해야겠지만, 감정을 적절하게 활용하자. 억울함과 노력을 적당하게 배합한 후, 그것을 말하기에 녹여내자. 그래서 평가 위원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나와 동시에 회사에 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대암산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지치지 않고 줄기차게 오르고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던 것처럼, 멀리서 볼 때, 나는 잠시 대열에서 이탈할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평가 결과도 비관적이지 않아서 퇴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것이 그때와 다른 점이었을까.

결국 나는 과거의 나처럼 나약함에 굴복하지 않아도 됐다. 그때는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버티는 것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내 몸과 마음에 무언가가 충분히 비축되어 있어서 그것을 볼 줄 알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생겨났다는 것, 그것이 그때와 지금의 내가 또 하나의 다른 점이다.

인생은 끝도 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수평 하게 이동하든, 다소 경사진 곳을 미끄러지며 다시 오르는 것이든, 우린 각자의 길에서 어떤 목적지를 향해 이동한다. 그런데 가끔 우리에겐 위기가 닥친다. 포기할까, 말까, 그냥 바닥에 누워버릴까. 끝도 없이 앨리스가 지하세계로 추락했던 것처럼 그런 선택에게 편안하게 몸을 맡겨버릴까.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줄까 이런 기대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인생엔 오직 나 혼자뿐이다. 문제는 그 어느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그게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며 현재까지 터득한 이론인 것 같다. 이동하면 살아가는 에너지는 채워지기도 소모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걷는 것뿐이니.


시 한 편 

액체의 환생

 

당신이 옵니다

액체 모양으로 고요하게 옵니다

 

당신은 태양의 후예가 아닌

비틀어진 옛사랑의 뜬소문인가요?

 

'왜'라는 절름발이가 건너편에서 대신 찾아갑니다

한 발, 두 발, 당신의 걸음을 세다,

제자리에서 철 지난 무릎을 괜스레 비난하고 말았습니다

 

위태롭게 물들어가는 우리의 그리움들

숲을 도배해나가는 만남의 검은 색채들

말을 잃어가는 그림자의 부연 설명들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복수가 존재했습니까?

 

미래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거주하게 됩니까?

이유는 존재합니까? 당신에겐

내 옆을 스치며 사라지는 황혼의 들녘에

익숙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당신은 지난봄에 부치지 못한

마무리되지 않은 번역서의 찢긴 조각,

번역은 이번 생에 마무리됩니까?

 

굳은 표정으로 맞서는 나에게

여전히 당신은 찬란한 가을 미소입니다

나의 하루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흘러갑니다

그곳엔 당신은 없는

 


 

금주의 추천 음악

 

오늘은 영화 음악 한 편을 소개해드립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했고 1989년에 개봉한 영화<Always>를 혹시 아시나요? 아주 오래전, 기억도 희미한 일요일 밤, KBS에서는 명화를 간혹 상영해주곤 했습니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영화 보다 음악에 깊이 침몰한 기억이 납니다.

 

<Always>에서 존 윌리엄스는 늘 영화에 고요하게 묻혀갑니다. 영화가 끝나면 그의 스코어는 기억 속에서 작은 조각으로 환원이 됩니다.

 

아래의 스코어는 주인공 도린다가 남자 친구를 잃고 혼자 비행하는 장면에 수록된 곡입니다. 하늘을 마음껏 누비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시면 묵직한 감동이 마음에 서 파도를 칠 겁니다. (아 오드리 햅번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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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나무

    0
    about 3 years 전

    작가님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계속 움직이며 우리의 궤적을 남기게 되고, 그 궤적들에 후회가 없기를, 가능하다면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것이지요. 일하면서 고뇌하고 고뇌하면서 일하는 모습들 속에서 작가님의 사유와 글이 탄생한다고, 작가님의 캐릭터라고 새겨졌네요 적어도 제게는...공심님 홧팅!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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