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존재에 대한 단상

2021.05.13 | 조회 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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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간헐적으로 보내드리는 공대생의 뉴스레터 오늘도 한 편의 글을 배달합니다.


이유 없는 슬럼프란 과연 존재할까요? 가끔은 슬럼프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순간으로 내 안에 머무는 모든 존재들이 침몰하고 맙니다. 인생은 그런 면에서 길고 기약 없는 항해인 것 같아요. 목적지가 분명해 보이지만 사실 신기루인, 말하자면 무의미와 유의미 사이에서 솟아오른 풍파들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출렁출렁 위태롭게 살아가다, 인생의 끝에서 결국 우린 침몰을 겪게 되겠지만, 그래도 인생은 노를 저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내리며 오늘을 견딥니다.

세상이 갑자기 가라앉을 것 같은, 풍랑의 슬럼프가 언제 시작됐는지 그 시점은 알 수 없어도, 현재 슬럼프 한가운데를 지나간다는 사실은 잘 알죠. 다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그 슬럼프의 처치를 조금 이해할 수 있고 위안이나마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네요.

글을 쓰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달콤한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가져왔어요. 머그컵에 반쯤 잠긴, 지나칠 정도로 안정한 커피의 파동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감정의 태풍 때문에 흔들리고 마는데, 넌 지금 나와는 꽤 반대 세계에 있구나,라는 한숨을 내뱉게 됩니다. 이런 순간은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부풀리는 것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에요. 그 어떤 순간에도 이런 아무것도 아닐 것으로 취급 당할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니까요. 물론 그럴 때마다, 내 안의 또 다른 존재는 냉정한 말을 한 마디 합니다. ‘언제 그런 게 한두 번이었어?’라고 말이죠. 맞아요. 한두 번이 아니니 미치죠. 이유도 없이 노크도 하지 않고 찾아와서 사람을 침몰시키니, 어찌 그 순간을 멀쩡하게 감당하겠어요.

오랫동안 글을 써오고 있어요. 마음속 어딘가 깊고 검은 곳으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었죠. 그 세계는 침울하고 축축하고 발을 디디면 한없이 꺼지는 그런 광막한 곳이었죠. 그 음침한 곳은 스스로 부정당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어요. 애초에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당하는 게 나으니까, 그런 세상을 판독해보려고 노력해봤자, 모두가 여정 중에 생을 마치고 말 테니까.

사람의 그늘진 면은 어쩌면 그 사람에게 토착화된 것이어서, 숨기려야 숨길 수도, 감추려야 그럴 수 없는 공간이에요. 부정할수록 더 도드라지는 것들, 표정 속에, 그 사람의 말투에 묻은 어떤 고정적인 패턴들, 고치고 싶지만 떼어낼 수 없는 위악 같은 것들이 난무하죠. 공존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저라는 인간을 만들어낸, 단어와 문장은 저를 키운 셈이에요. 그런데 저를 대표하는 단어를 지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일이 사는 동안 과연 가능해질까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환경에서 자라나겠죠. 화목하고 늘 웃음만 만발한, 아주 이상적인 그런 가정, 영화 속에서 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나 가능한 그런 환경을 한때 꿈꾼 적이 있었어요. 그 평범해 보이는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도란도란한 목소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그러니까 그런 화목한 가정은 이웃집의 창문보다 훨씬 멀었죠. 가깝지만 멀어 보이는, 그래서 더 사람을 침몰시키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보셨나요?

사실, 글을 쓰면서 진솔함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늘 생각했지만, 그 단어와 친하지 못했어요. 외면하고 살았죠. 그래서 한동안 글은 내가 쓰지만, 그 속엔 내가 없다고 판정을 내렸어요. 엄정하고 냉정하고 결론 지상주의에 빠진 정보와 이론, 통찰, 동기부여와 같은 내가 아닌 것들로 포장된 문장만 줄곧 사용했죠.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절망에 빠져요. 이유 없이 침몰해가는 나의 존재를 허무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되는 이유는 나에게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꾸만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이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상태가 벌써 10년 가까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제 얼굴에 나타나서는 근원적인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그 사람 말이에요.

제 기억으로는 유년시절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우리집엔 늘 암흑뿐이었어요. 아버지는 하는 사업마다, 거의 다 잘 안됐어요. 안됐다는 건, 경제적으로 형편없는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어요. 궁핍은 사람의 의욕을 상실시키게 만들어요. 의지만으로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잖아요. 사람이 희망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보통 두 가지에 빠지죠. 하나는 도박, 하나는 술, 물론 둘 중의 어느 것이든 가정을 침몰시키는 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아버진 불행하게도 도박을 선택했어요. 바둑이 도박이라는 악마가 될 수 있다는걸,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알았으니까, 저는 조숙했을까요?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너무 일찍 이해해버린 걸까요. 아무튼 도박은 사업을 말아먹게 만들었고, 직장에서 쫓겨나게 만들었고, 가정을 거의 파탄지경에 빠지게 만들었죠. 영화에 보면 그런 장면 나오잖아요. 도박에 미친 남편이 장롱을 뒤져가며 비상금을 찾아내려고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는 장면 같은 거요. 그런 장면을 TV가 아닌 현실에서 본다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될까요? 절망의 맛에 심취하게 될까요?

집안이 몰락해가는 걸 바라보면서, 마치 관찰자의 시선으로 조금 멀리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본다는 게, 불타서 침몰하는 난파선을 뗏목 위에 앉아서 허망하게 바라보는 것과 같다면, 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여기게 될까요?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의 존재가 그런 악몽 같은 과정을 겪었다면 먼 훗날 나에게 그 기억은 어떤 작용을 하게 될까요?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늘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바빴어요. 원망, 체념, 분노, 침울, 비토가 섞인 문장을 자식들 앞에서 쏟아냈어요. 거침없었죠. 비수와 같은 문장들, "당신이 우리 집을 망쳤어, 이 원수 같은 인간아,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저는 그 장면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악독한 단어로 그 문장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잘 알아요. 물건이 날아가고 깨지고 박살 나고 이웃집 어른들이 찾아와 싸움을 말리는, 그런 날이 사는 동안 계속 벌어질 것 같은 느낌, 인생에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맞겠다는 생각, 아마 그때부터 세상과 저를 차단시킨 것 같아요. 벽을 높게 세웠죠.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죠. '이 공간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라고요.

부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은 싫어도 그 언어가 만든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본능인 모방의 습성이 나타나는 거죠. 그게 바로 인간의 학습 능력일 테니까요. 하지만 사람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학습 받은 대로 살아갈 것인가, 의식적으로 반대로 살아갈 것인가, 라고요. 만약, 저와 같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똑같이 부모의 패턴을 반복한다면, 이 세상인 절망한 유전자만 가득할 테니까요. 인간은 균형을 맞출 능력이 있더군요. 무능력하고 형편없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절대 저 사람처럼 살지 않겠다는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생겼기 때문에, 저는 어두운 면이 아닌 밝은 면을 스스로 찾아가겠다고 결단을 내린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저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있을까요? 반대 방향으로 길을 개척하고 있을까요? 음, 잘 모르겠어요. 반대로 살아가려고 적어도 노력은 했으니까, 아침마다 거울 앞에 나타나는 증거를 지우려고 애쓰는 중이니까, 그나마 지금처럼 조금 밝은 세상에서 숨이라도 크게 쉬면서 살아갈지도 모르겠어요.

왜, 나는 오늘 이런 글을 쓸까 생각했어요. 이런 사실을 독자에게 알린다는 게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이걸 공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아요. 난 부모를 부정하는 형편 없는 인간에 불과할까요? 뭔 자랑이라고 이렇게 긴 글을 지껄일까요?

다만, 만약 공개가 되어서, 구독자님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전 용기를 조금 낸 거라고 믿으셔도 돼요. 그렇다고 제가 위안을 얻겠다는 생각도 동정표를 얻으려는 의도도 아니니 그 부분에 대해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정리하고 싶었어요. 한 번쯤 인생에서 획을 긋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잖아요. 저는 그 시점에 대해 고찰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글로서 그것을 유려하게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먹기까지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됐어요. 에너지를 내가 올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의도대로 생각이 글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전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쓰면서도 안절부절했죠. 이런 글을 쓰면서도 저는 독자에게 이 글이 무리 없이 내 마음속이 제대로 표현됐을까, 생각만 하네요. 그런 걸 보면, 저는 글을 쓰는 거 자체가 참 좋은 사람인가 봅니다.

에세이에서 결론을 내리는 게 참 우습긴 합니다만, 저는 모순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그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나든 말하자면 어떤 부모하에서 교육을 받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그 결정은 자신이 내리는 거라는 사실, 그리고 현재 누군가의 겉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겉모습이란 건, 마치 북극 빙하의 살짝 돌출된 부분처럼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러니 혹시나 구독자을 가로막고 서 있는 과거의 망령이 있다면, 저처럼 그 세계는 그저 환영일 뿐이니까, 얼마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벗어날 수 있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그 세계를 허물어뜨렸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유 없이 무기력에 빠져드는 나를 분명 구출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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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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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과삶

    0
    almost 3 years 전

    짠하네요 ㅠㅠ 용기내어 글쓰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분으로 성장한 것만으도로 감사한 일이네요.

    ㄴ 답글 (1)
  • 신무경

    0
    almost 3 years 전

    정말, 노크없이 찾아와 나를 침몰시키는....ㅠ시도때도없이 찾아오는 슬럼프 ㅠ 어쩜 이렇게 딱'맞는 표현을 하실까요.. 구독좋아요 백번 누르고싶어요 ,공심님♡ 퐈이아!!!!^^

    ㄴ 답글 (1)
  • 혜나무

    0
    almost 3 years 전

    작가님과 흡사한 기억들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용기내어 써볼게요.. 슬럼프도...

    ㄴ 답글 (1)
  • 향기

    0
    almost 3 year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라나

    0
    almost 3 years 전

    공심님의 용기는 귀하네요. 어둠 속 또렷이 붉은 촛불처럼. 사랑스러워요.

    ㄴ 답글 (1)
  • Sunflower 🌻

    0
    almost 3 year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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