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간헐적으로 보내드리는 공대생의 뉴스레터 오늘도 한 편의 글을 배달합니다.
영화 <테이큰>의 주인공 '리암 니슨'처럼 생긴 남자가 카페에 등장한다. 남자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곤 미묘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이 마신다. 잠시 후, 남자는 주인에게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제안을 슬쩍 내민다. 한 스푼, 두 스푼 천천히 원두를 우려내더니, '코피루왁'이라는 요상한 주문을 외우곤 커피를 주인에게 내민다.
주인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맛, 어쩌면 그 지구상에서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어떤 황홀한 맛을 느끼게 된다. 그때 남자는 한 마디를 던진다.
"누군가 당신 만을 위해 끓여주면 더욱 맛이 진하죠"라고.
영화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이다.
당신 만을 위해 끓여준다는 말에는 '그 사람이 오직 나만을 생각한다'라는 괄호가 쳐쳐 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차리는 모습, 정성껏 그리고 세심하게 자신을 보태는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이란 건 얼마나 넓고 깊을까.
회사 1층 카페에 주로 들르는 편인데, 나는 그곳에서 일방적으로 아메리카노만 주문한다. 늘 똑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카페 주인은 어떤 생각을 하며 내 주문에 반응할까.
섭씨 100도에 도달하면 비로소 끓기 시작하는 물의 느린 반응처럼 어느 상태에 도달하려면 그냥 기다리면 될까? 그는 그저 자동적으로 어느 시점이 되면 반응하는 사람에 불과할지도.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끓기만 하는 유형의 사람 혹은 아무런 생각도 개입시키지 않고 머신처럼 작동되는 유형의 사람. 이른 아침마다 어김없이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궁금해하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
얼마나 더 정성스럽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해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에서 잠시 멈칫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동안 카페에 수천 번 이상 방문하면서 그동안 나는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평가될까. 내가 마신 커피는 정말 맛이 좋았을까. 맛이 좋다고 착각하며 흡입한 것은 아니었겠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은 대체로 나를 위해 쓴다. 내가 쓰지만 때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대신 써주는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어떤 평가의 형상으로 변신한다. 나는 타인이 되고 타인이 내가 되는, 이상한 뒤섞임 현상,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몰입의 상태에 빠지고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나는 때로 지워져 버린다.
그곳에는 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로지 내 글을 읽는 책무를 맡은 타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타인은 누구인가. 나를 제외한 그 무엇, 물질이거나 혹은 사람이거나, 글을 해독할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어떤 존재도 될 수 있다.
독자를 위한 글, 그러니까 특별히 어떤 한 사람만을 위한 글이라면 어떨까? 나는 오직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단 한 사람만 내 글을 읽어준다면 얼마나 가까운 보폭의 거리를, 얼마나 많은 부피의 행복을 안아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무위에 불과할까, 보이지도 않는 존재를 배려하는 글쓰기는 대체 어떤 모양을 가졌을까. 이런 생각은 글쓰기에 얼마나 많은 보탬을 줄까.
너무 형식적이거나, 관성화된 것이거나, 의미 없는 채로 꾸준히 반복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누군가를 위해, 즉 당신 만을 위해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중이다. 어떤 상태에 서서히 변신해가는 중이지만, 만약 그 작업에 실패한다면 나는 영원히 끓지 못한 상태 말하자면 조금은 늘 못 미친 상태, 그러니까 미지근한 상태로 주저앉고 말지도.
글을 쓰며 나는 생각한다. 나의 당신은 누구일지, 그 당신을 찾기 위해 나는 이토록 오래도록 살아온 건 아니었을지, 돌연 쓰는 동작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진한 맛이란 결국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 알게 된다는 사실, 그 사실 때문에 커피 내리며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그 세계는 당신만이 유일하게 맛보게 될 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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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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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비번 찾으셨군요~ 글쓰면 생각도 정리되고 주관도 더 확고해져요. 그래서 글을 계속 쓰게 됩니다. 망망님의 글쓰기도 응원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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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늘 감사하게 읽습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커피 드시면서 글 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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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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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누군가 나만을 위해 글 써준다는 거 생각만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편지 받아본 적이 언제인지, ㅎㅎ 대필은 많이 해줬지만 받은 기억은 거의 없네요. 생각 너무 하지 마시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보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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