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곡지의 연꽃이 이제 계절을 정리하고 있다.
한동안 연못을 가득 채우던 꽃은 하나둘 사라지고, 늦잠을 잔 연꽃 몇 송이만 드문드문 피어 있다.
꽃을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도 많이 줄었다.
좋아하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찾아오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꽃에서 잎으로, 잎에서 이슬로,
이제는 연잎 아래 대궁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바라본다.
그날도 나는 그 작은 빛을 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의 말이 들렸다.
“사진은 AI가 제일 잘 찍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요즘은 핸드폰 사진이 가장 좋다는 말을 넘어, AI가 사진을 제일 잘 찍는다고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AI는 수많은 사진을 학습하고, 사람이 원하는 장면을 설명하면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가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워도,
자신이 살아본 시간까지 가질 수 있을까.
사람은 살아온 만큼 본다.
기쁨을 겪어본 사람은 기쁨의 빛을 알고,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은 사라지는 것의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 사진에는 기술만으로 담기 어려운 것이 있다.
같은 연꽃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는 이유는,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꽃이 사라지고 나니 나는 오히려 다른 것들을 보게 되었다.

잎의 결이 보이고,
대궁의 굽은 모습이 보이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을 생각한다.
피어난 것은 지고,
만난 것은 헤어지고,
마음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것이 허전하게 느껴지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귀하고,
비워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보인다.

꽃이 없는 연밭도 연밭이다.
사람의 관심이 줄었다고 해서 내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만 하지 않으려 한다.
비어 있는 자리도 그대로 바라보려고 한다.
사진도 그런 것 같다.
무엇을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지나치는 순간에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것.
오늘 관곡지에서 나는 꽃보다 잎을 보았고,
잎보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진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담는 것이다.
AI가 더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핸드폰이 더 편리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 연밭으로 간다.
꽃이 피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꽃이 지고 난 자리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만나기 위해서다.

당신은 꽃이 진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있나요?
#꽃이지고난뒤 #AI와사진 #사진명상 #마음의풍경 #海印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