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다시 몸을 바라본다.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다.
몸에는 문이 있고
그 문을 통해 세상과 끊임없이 만나고 있다.
나는 보고,
듣고,
숨 쉬고,
먹고,
말한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내보낸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면
문을 통해 드나드는 것은
몸만이 아니다.
느낌이 일어나고,
생각이 떠오르고,
기억이 지나가고,
마음이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는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몸과 느낌, 생각과 의지, 의식을
오온(五蘊)이라 한다.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은
이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비추어 보는 말이다.
몸도 변하고,
느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같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변화하는 모든 것을 묶어
‘나’라고 부른다.
‘나’ 역시
고정된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하나의 흐름이다.
다시
처음의 구멍을 바라본다.
구멍은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빈자리로
숨이 들어오고,
빛이 들어오고,
소리가 들어오고,
음식이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가 밖으로 나간다.
비어 있기에
통할 수 있다.

이것을 바라보다 보니
공(空)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가 오고 가며
서로 만나고 흐르는
열린 자리이다.
구멍을 바라보다가
문을 보았다.
문을 바라보다가
안과 밖을 보았다.
안과 밖을 바라보다가
흐름을 보았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도는 어딘가에 고정된
하나의 답이 아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다시 놓아주는 일.
변하는 몸과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
그 평범한 순간 속에서
삶의 흐름을 만나는 것.
그곳에서
도(道)를 향한 길이 시작된다.
몸을 통하여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하여 다시 나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었다.
그러나 그 문을 바라보다 보니
몸과 세상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하늘의 별도,
연꽃도,
숨도,
물결도,
나의 생각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하나의 흐름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 한가운데에서
잠시 살아가고 있다.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눈을 뜬다.
숨을 쉰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바라본다.
지금 내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누구일까요?
이뭐꼬(是甚麼)
#사진명상 #오온개공 #공과흐름 #몸과마음 #海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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