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천히 가면 세상이 다 보인다.”
“천천히 가면 더 많이 보인다.”
그때의 나는 빨리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빨리 가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산을 뛰어다니지 않는다.
체력도, 무릎도 예전 같지 않아
그냥 천천히 걷는다.
때로는 예전 같으면 몇 분 만에 지나쳤을
길을 한참 걸어간다.
아니,
걷는다고 하기보다
자주 쉬고, 멈춘다.
길가의 작은 풀 앞에서 멈추고,
빛이 산 위로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멈춘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그냥 서 있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젊은 날에는 산을 오르면서
정상만 보았다.
얼마나 빨리 올라갈 수 있는지,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정상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빨리 걸을 때는 목적지만 보인다.
하지만 천천히 걸으면
길이 보인다.
길가에 핀 연꽃이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고,
잠시 쉬어가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보인다.
사진도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좋은 사진을 찾아다녔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만나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멀리서 찾기보다
지금 내 앞 풍경에 잠시 머문다.
산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물 위에 머문 빛을 기다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피사체가 보인다.
아니,
어쩌면 피사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대궐할매의 말씀을 조금 알 것 같다.
천천히 간다는 것은
단순히 발걸음을 늦추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조금 늦추는 일이었다.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
무언가를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러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풍경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사진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동안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나 자신도 보였다.
젊은 날의 나는
산을 뛰어다녔다.
지금의 나는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걷는다.
예전보다 느려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수십 년 전,
가야산에서 대궐할매가 들려주신 말씀이
이제야 조금씩 마음에 들어온다.
“천천히 가다 보면 세상이 다 보인다.
옆에도 보고, 뒤도 한번 돌아보면서 가라”
그리고 매화산에서 만났던 그분의 말씀도.
“젊은 사람들, 천천히 가면 더 많이 보인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이렇게 오래
내 마음에 남아 있을 줄은.
그 길을 빨리 지나갔지만,
그분들의 말씀은
수십 년 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그 뜻을 알아간다.
천천히 가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천천히 바라보면
세상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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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숨.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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