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나는 참 잘 달렸다.
산에 가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남들보다 빨리 걷고, 빨리 오르는 것이 좋았다.

그 시절 어른들은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원정이는 간첩 잡으러 다닌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위가 좋지 않으셔서 우리 가족은
한동안 마을에서 떨어진 작은 암자에서 지내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산과 가까웠고,
산길을 걷는 것보다 뛰어다니는 것이 더 익숙했다.
지금은 아니다.
ㅎㅎ.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사십년도 지난 젊은 날 들었던 말들이 자꾸 생각난다.
특히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씀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합천 가야산이었다.
할머니 몇 분을 따라 가야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중에는 내가 ‘대궐할매’라고 부르던
인자하시고 밝은 스승이 계셨다.
나는 젊었고 산길을 걷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조금 걷다가 쉬고,
또 조금 걷다가 쉬었다.
젊은 나에게는 조금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대궐할매가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나이 많은 사람들하고 같이 가니 심심하고 힘들지?”
그러시더니 웃으며 말씀하셨다.
“천천히 가다 보면 세상이 다 보인다.
옆에도 보고, 뒤도 한번 돌아보면서 가라”

“네”
대답은 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다.
빨리 갈 수 있는데 왜 천천히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그 후 몇 년 뒤, 가야산 앞산인 매화산이었다.
봄날, 친구와 함께 산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우리보다 먼저 올라오신 몇 분과 함께 쉬고 계시는
한 어른이 있었다.
당시에는 어떤 분인지 잘 몰랐지만,
나중에 직장생활을 해보니 그때의 느낌으로
봄 체육행사에 함께 오신 조직의 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분은 뛰어 올라가는 우리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젊은 사람들, 천천히 가면 더 많이 보인다.”
참 이상했다.
대궐할매와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가면 세상이 보인다.
천천히 가면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젊은 날의 나는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했다.
그때의 나에게 산은
천천히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
빨리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상에 먼저 오르는 것이 중요했고,
빨리 가는 것이 힘이고 자랑이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들었던 그 말을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그 뜻을 알면서도
갈 길이 바쁜 현실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해 달리고 계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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