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번 들어오고 나가는 것(40)

― 숨과 공(空)

2026.10.08 | 조회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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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해인)

 

몸의 문을 다시 바라본다.

 

눈은 감아도 된다.

귀는 닫고 쉴 수 있다.

입도 잠시 다물 수 있다.

 

그러나 숨은 그럴 수 없다.

 

잠을 잘 때도 숨을 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숨을 쉰다.

 

의식하지 않아도 숨은 들어오고 나간다.

생명이 이어지는 동안 숨의 흐름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숨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생명에 가까이 붙어 있다.

 

무언가가 들어오고 무언가가 나간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내쉰다.

 

들이마신 숨을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고,

내쉰 숨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숨은 들어옴과 나감으로 이루어진다.

받아들임과 내어놓음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숨은 우리에게 아주 단순한 사실을 알려준다.

 

생명은 흐름이라는 것.

 

들어옴과 나감,

받음과 줌,

생성과 소멸.

 

어느 하나만으로는

생명이 이어질 수 없다.

 

우리는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내려놓으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들어온 것을 붙잡으려 한다.

 

생각도 붙잡고,

감정도 붙잡고,

사람도 붙잡고,

시간도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숨을 바라보면

알 수 있다.

 

들어온 것은

언젠가 나가야 한다.

 

나가는 것을 막으면

오히려 생명의 흐름이 막힌다.

 

숨을 참아 보면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생명은 붙잡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흐름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그런데 숨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숨은 몸만 살리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쉬게 한다.

 

우리는 힘들 때

“숨을 좀 돌리자”고 말한다.

 

화가 날 때도 숨을 고르고,

불안할 때도 숨을 고르고,

마음이 복잡할 때도 잠시 숨을 고른다.

 

왜일까?

 

숨은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

가장 가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쉰다.’라는 말에는

息(식)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息은

숨을 쉬는 것이면서,

 

동시에

마음과 정신을 쉬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숨을 고른다는 것은

단순히 호흡을 조절하는 일이 아니다.

 

마음과 정신에게

잠시 쉴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몸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도 조금씩 놓인다.

 

생명을 이어주는 숨이

동시에 마음을 쉬게 한다.

 

그러니 숨은

얼마나 중요한가.

 

눈은 쉬어도 되고

귀도 쉬어도 되고

입도 쉬어도 되지만,

 

숨은 생명이 있는 동안

멈출 수 없다.

 

그리고 그 멈출 수 없는 숨이

오히려 우리에게 쉼을 가르쳐 준다.

 

계속 들어오고

계속 나가면서도

그 안에는 쉼이 있다.

 

 

첨부 이미지

 

 

이것이 참 묘하다.

 

흐르기 때문에 쉴 수 있고,

놓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구멍은 무엇일까?

 

구멍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구멍은 안과 밖이 만나는 자리이고,

서로 다른 것이 서로에게 드나들 수 있게 하는

열린 자리다.

 

비어 있기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몸의 구멍도 그렇고

숨이 드나드는 자리도 그렇다.

 

비어 있기에

생명이 오고 갈 수 있다.

 

이 빈자리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공(空)’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무언가가 들어오고

무언가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허공은 비어 있지만

그 안에는 바람이 흐르고,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서

숨이 오고 간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들이마신 공기는

조금 전까지 바깥에 있었고,

 

내가 내쉰 숨은

곧 다시 바깥의 공기가 된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숨조차

잠시 나를 거쳐 갈 뿐이다.

 

내가 숨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숨이 나를 통과한다.

 

안과 밖은

완전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숨 하나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공(空)은

단절이 아니라

통함이다.

 

비어 있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고,

 

비어 있기 때문에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비어 있기 때문에

마음도 쉴 수 있다.

 

꽉 차 있는 마음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생각으로 가득 차고,

욕망으로 가득 차고,

집착으로 가득 차면

 

숨조차

편안하게 드나들기 어렵다.

 

그러므로 비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비움은 생명이 흐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비움이 있어야 숨이 흐르고,

숨이 흘러야 마음이 쉰다.

 

그러므로

 

공(空)과 숨과 쉼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비어 있음,

흐름,

쉼.

 

그 세 가지가

하나의 자리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다시 하나의 질문을 만난다.

 

그렇다면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아도 이어지는 생명 속에 있고,

귀를 닫아도 계속되는 흐름 속에 있고,

입을 다물어도 이어지는 숨 속에 있다.

 

무엇보다

 

한 번의 들숨과

한 번의 날숨 사이,

 

잠시 비워진 식(息)의 마음속에

도가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억지로 붙잡지 않고,

억지로 밀어내지도 않고,

 

들어오면 받아들이고

나가면 놓아주는 것.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마음이 쉬는 것.

 

어쩌면 도(道)란

숨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공(空)처럼 비어 있으며,

식(息)처럼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생명을 이어주는 것도 숨이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도 숨이다.

 

그러니 우리가 매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는

 

이 한 번의 숨이 얼마나 중요한가.

 

지금 당신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고 있나요?

 

#사진명상 #숨과쉼 #공과흐름 #비움 #연꽃이야기 #海印

 

<海印의 사진 명상 편지>

 

빛은 마음을 밝히고,

숨은 몸을 깨우며,

쉼은 나를 본래의 자리로 이끈다.

 

이 편지에 답장하시면

작가가 직접 읽고 함께하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마음에

고요한 빛 한 줄기 머물기를.』

 

海印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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