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타고난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사람이 타고난 성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2025.06.06 | 조회 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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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아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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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타고난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흔히 하는 말이고 다수가 공감하는 말이다. 이 말은 절대적으로 맞고 어떤 측면에서는 틀렸다. 티비 강연 프로그램에 나온 심리학자는 그런 말을 했다. "절대적으로 사람이 타고난 성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본이 되는 성질에 다른 능력치를 더할 수는 있습니다."

내 타고난 성질에 대해 나열해 보자. '내성적', '기복 있는 기분', '변화를 꺼리는'... 계속 떠올리고 있자니 막막해서 더 못쓰겠다. 아무튼. 지금 나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이 보는 내 성질은 이것이 적절한가요?'라고 물으면 다수는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더 괴랄한게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예외로 두고.

심리학자가 말한 내용을 풀어서 게임에 빗대어보자. 직업 선택에 따라 캐릭터의 능력치 분배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전사는 힘, 궁수는 민첩성. 마법사는 지능이 부각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최초로 고른 캐릭터를 마법사라고 가정해 보자. 사냥터에서 경험치가 쌓여 레벨이 오르면 능력치를 얻게 되고, 그 능력치를 분배하는 건 게임을 진행하는 유저의 몫이다. 마법사니까 지능에 모든 능력치를 쏟아부어도 된다. 그러면 마법의 힘이 강해진다. 그러나 체력이 부족해져 약한 공격에도 쉽게 죽을 수 있다. 그러면 체력과 지능에 나눠서 능력치를 분배해 보자. 마법의 힘은 비교적 약하지만 체력이 있어 캐릭터가 버틸 수 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다시 내가 타고난 성질로 돌아와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내성적이었다. 중학시절까지는 같은 반 친구임에도 학년 끝날 때까지 말 한 번 안 해본 경우가 허다했다. 조금 부끄러워져 먼저 말 붙이는 게 어려웠다.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을 배운 기억이 없었다. 저 사람이 나와 대화하는 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3월 2일, 새로운 교실에 발 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 학급에 아는 친구가 몇몇 있으니 버틸만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거리가 가까워 친구 사귀는 일에 어려움이 없었다. 교복을 입은 것 말고는 별다를 게 없었다. 수덕이와 유성이와 준섭이가 복도와 교실에 있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문득 '이런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계기 없이 불쑥 마음속에서 튀어나온 생각이었다. 튀어나온 부위가 머리였는지, 명치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 흔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피부에는 탄력이 있어서 다행이다.

집 근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마찬가지로 친구 사귀는 일에 어려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내성적인 모습으로 성인이 될 것 또한 분명했다. 16년 인생 최대의 모험을 걸기로 했다. 집에서 먼 거리의 고등학교에 지원했다. 우리 학교 누구도 그 고등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일이 없으므로 썩 알맞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입학하는 날. 우리 중학교에서 우리 고등학교로 진학한 건 단 2명에 불과했다. 그중에 한 명은 나였고, 다른 한 명은 전혀 모르는 친구였다. 전교에 아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상황이지만,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중학시절까지 마법사로서 지능 능력치를 착실히 쌓았던 내가 이제는 힘과 체력, 민첩성 능력치를 쌓아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고등학교는 입학 날부터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학교에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먹어야 하는데 전교에 아는 이 하나 없으니 숨이 막히고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 수는 없지. 유약한 마음과 달리 자존심이 강했다. 괜히 시니컬한 척 연기를 했다. 당시에는 압도적이었던 피지컬을 이용해 눈에 체격이 왜소했던 한 친구에게 "야 밥 같이 먹자."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도 심장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사람의 심장은 생각보다 쉽게 터지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일인지. 그렇게 내 능력치는 사회성과 친화력에 +1, +1, +1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타고난 성질이 내성적이고 머물러있기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mbti 테스트를 해보면 어김없이 e 성향이 나온다. 이것이 내 본질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좋다가도 싫어진다. 약속 날이 다가오면 내심 취소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약속에 나가면 세상에 이렇게 신날 수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가급적 혼자인 편을 선호한다. 이어폰 꽂고 풍경 바라보는 시간이 안락하다. 귀가 후 씻고 뽀송하게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여기가 천국이지.

타고난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어떤 상태였고, 어떤 상태로 고쳐져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충분히 들여다보는 시간과 정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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