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아무래도 할 수 있는 걸 잘 하는 편이

태생적으로 재미없는 인간

2025.01.17 | 조회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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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컨텐츠를 만들면 사람들이 오래 두고 볼까요.어떤 노랫말처럼 '쉬고 싶고, 다 성가시고, 집에 가고 싶을 때. 초콜릿처럼 꺼내 먹게' 될까요.

우리 시대의 컨텐츠는 너무나 휘발성이 강해요. 글이나 그림, 영상, 공예 등 모든 분야를 가리지 않아요. 여러분이 바로 어제 친구와 나눈 대화도 그럴 수 있겠고요. 대다수의 컨텐츠는 누군가의 몇 날 며칠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한켠에 피 땀 눈물 같은 게 묻어있을지도 모르고요(섬찟). 쏟아부은 정성에 비례해서 컨텐츠를 즐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크롤 한 번에 스쳐가는 건 조금 속상하다는 거예요. 알고리즘의 은혜를 입지 못해서. 또는 업로드 시간의 부적합성 때문에 스쳐가지도 못하면 조금 더 애가 타고요.

이따금 나도 그런 걸 만들어야 하나 싶습니다. 유행하는 밈을 끌고 와 짧은 호흡의 릴스/쇼츠 공장이 되어야 하나. 근데,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센스도 좋아야 하고, 정말 정말 부지런해야 하고요. 저도 가끔 릴스를 만드는 데요. 그쪽 감성은 접근조차 안되더라고요. 태생적으로 재미없는 인간...


 

첫 번째 책 <종로 보행> 벌써 10년 
첫 번째 책 <종로 보행> 벌써 10년 

201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 출판을 했습니다. 책을 만들기 위해 퇴사한 건 아니었고, 목공 학교 등록해두고 불쑥 책을 만들었습니다(책 만든 계기를 늘어놓기엔 구구절절이니 다음 기회에). 첫 번째 책은 종로 돌아다니며 찍은 필름 사진과 에세이였어요. 독립서점에 입고하고 플리마켓에 들고나갔죠. 초판을 다 팔고 2쇄도 찍었습니다. 생각 없이 만든 게 생각 이상으로 잘 되니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두 번째 책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더 잘 팔리는 걸 써보자!' 마음먹고 어울리지도 않는 섹슈얼한 주제를 건드렸지요. 아마 그때가 JTBC의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유행했던 것 같아요. 절반 정도 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더라고요. 그 무렵 나간 플리마켓에서 만난 동료가 말하길 '전작이 아주 좋았던 작가님의 신간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힘이 잔뜩 들어간 게 느껴지더라'라는 거예요. 본인과 어울리지도 않는 주제를 가지고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 문투로 글을 썼더래요. 이게 무슨 일이야... 완전 제 얘기잖아요! 최대치의 평정심을 유지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절반 정도 쓴 글을 미련 없이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쓴 게 아빠와 나의 이야기였어요.

두 번째 책 <아빠와 나> 벌써 9년 전
두 번째 책 <아빠와 나> 벌써 9년 전

할 수 있는 걸 잘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숏폼이 유행하는 시대에 긴 영상을 찾아 헤맵니다. 저는 정말 그래요. 종일 작업하며 귀에 무언가 틀어놓는 경우가 많아 긴 호흡으로 떠들어대는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걸 찾습니다. 10분 만에 끝나는 영상은 계속 새로운 걸 찾아야 하니 번거로워요.


 

 

이북 리더기를 샀습니다. 친구는 아이패드에 이어 왜 갑자기 지름신이 들었냐고 했지만, 사실 저는 고민을 꽤 오랫동안 했습니다. 욕망의 절정에서도 정말 필요한 게 맞냐고 되물으며 끝끝내 버티는 인내를 보였으니 할 만큼 했어요. 그저 결정의 시기가 맞물린 것뿐이에요. 밀리의 서재는 첫 달 구독이 무료더라고요. 무료가 아니어도 이미 책 한 권에 만 원을 가뿐히 넘는 시대에 한 달에 만 원가량의 구독료는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 제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는 책. 그중에서도 시에 관한 게시글이 자주 뜹니다. '아껴서 읽고 싶은 시의 문장들', '내가 사랑하는 시 공유하기', 나만 읽고 싶은 창비 시집 모음', '첫입부터 맛있는 시 5선', '포기하고 싶을 때 읽는 시집 5권', '박정민이 사랑한 여덟 권의 책과 시'... 시집을 왕창 골라놓고 마음에 드는 것들만 쏙쏙 골라 편식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맛 좋기로 소문난 동네 빵집의 슴슴한 빵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유난히 소시지 빵이 먹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요. 완독하지 않는 쾌감을 즐겨보겠습니다. 조만간 좋아하는 시구절 모음 전해드리는 날이 오겠군요.


 

 

한 주간 많이 들었던 음악을 늘어놓는 작담 플리 2025년 1월 셋째 주, 작담 플리

<존박 - 같은 마음 다른 시간>, <아이유 - 겨울잠>, <김수영 -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나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치킨런>, <WhiteUsedSocks - Don't feel s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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