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즈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디즈니 전시에 갔어요. 당시 전시의 부제는 ‘꿈과 희망의 스토리텔러’였습니다. 디즈니의 수많은 캐릭터의 역사와 오래전 그려진 원화 등을 볼 수 있었고, 전시의 부제는 20대 내내 저의 메신저 소개 글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 여긴 거지요. 기념품 샵 같은 데에서 뭘 잘 안 사는데, 전시 보고 난 뒤 미키마우스 피규어도 샀다니까요?
20대 후반 회사를 그만두며 더 이상 메신저 접속하지 않았고 ‘꿈과 희망의 스토리텔러'라는 문장은 제 삶에서 흔적이 옅어졌습니다. 단순히 메신저를 쓰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어요. 수백 번도 더 지향했으나 아무래도 그 문장은 제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인지해버린 거예요. 사람은 저마다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음울이나 현실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는 거죠. 좋고 나쁨에 관한 게 아니라, 세상은 무수한 개체로 구성되어 각각의 몫을 하고 있잖아요. 누군가는 해로운 것이라 말하지만 알고 보면 생태계에서 사라져서는 안되는 동식물이 있는 것처럼요.
나는 무엇을 말하는 사람일까요? 선뜻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다시금 떠올려도 꿈과 희망은 아닌 것 같아요. 호호. 그 사실이 슬프진 않습니다. 조금도요!
갑자기 발생한 변수에 몇 주 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주문받은 작업에는 ‘에폭시'라는 투명한 경화제가 들어가는데요. 이게 온도 탓인지, 아니면 제가 작업이 잘못된 건지... 굳지 않는 거예요. 며칠이 뭐예요, 몇 주가 지나도 끈적한 액체 상태인 거죠. 그렇다고 제가 이 재료를 한두 번 써본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건지 알 길이 없어요. 다행히 급한 건 아니라 담당자분께 연락드려 상황을 말씀드리니 편하게 작업하고 완성되면 연락 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정말 여유 있게 하긴 했는데. 그럼에도 내내 마음 한편에 무거운 납덩어리 같은 게 툭 떨어진 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이거 굳는 거 기다리다가 마음에 들어앉은 납덩어리가 굳어버리겠다' 싶은 거죠. 후 작업이 아무리 늘더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끈적한 액체를 걷어내려니 거친 사포를 수십 장 써야 했지만, 어차피 망할 거라면 할 거 다 해보자! 하며 사포 수십 장 교체하며 작업을 했습니다. 여전히 작업 중이에요. 수십 장이 뭔가요, 백 장도 더 쓸 것 같은데. 설날 지나고 납품 완료하는 게 목표예요.
지금은 다니지 않는 수강생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변해도 선생님은 안 변할 줄 알았어요."라고요. 아니, 무슨 지난 연인의 사랑이 변한 것처럼 말했네요 그러고 보니? 어이없어... 제가 원목 가구 외길을 갈 줄 알았대요. 그러니까 제가 호호호작담을 만들고 합판 소가구를 시작한 이후에 그가 한 말이었던 거예요. 대외적으로 제 이미지가 그렇다는 말을 몇 차례 들은 일은 있어요. 작업물이나 쓰는 글 같은 것 봤을 때 장인 느낌이 나는 사람이라고요. 제 의지는 한 스푼도 들어가지 않은 일이라고요!실제로 그런 마인드로 지냈던 적도 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저는 인생은 대응이라고 생각해요. 세상 모든 게 변하면 나도 변해야죠. 저 허리 디스크 있는 거 아시나요? 장롱 만들며 번쩍번쩍 들고 다니다가 몸이 아주 와르르 무너진 적이 있어요. 그 순간만 문제였겠어요? 평소 자세가 엉망이었고, 스트레칭 한번 안 하며 살았으니 내심 아파도 할 말 없다 싶었죠. 유연한 사람이 될 테예요. 무엇에도 부러지지 않는 부들부들한 사람이요. 현실 세계 김용호의 무드와 부들부들이 어울리지 않지만, 지향하는 바는 그렇습니다.
한 주간 많이 들었던 음악을 늘어놓는 작담 플리 2025년 1월 넷째 주, 작담 플리
<O.O.O(오오오) - 눈이 마주쳤을 때>, <자우림 - STAY WITH ME>, <오월오일(五月五日) - London Time>, <JUNGWOO - 클라우드 쿠쿠 랜드>, <시온 - com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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