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가장 잔인한 달

날씨는 유난히도 변덕이 심해요

2025.04.18 | 조회 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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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담이 통신

목수의 아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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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업 중에 '1년'을 주제로 삼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두 달을 각각 하나의 작품으로 총 열두 개의 작품이 모이면 비로소 거대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는 것이지요.

이 계획을 꾀한 게 6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쯤이면 열두 작품 모두 모였을 법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계획의 밀도가 부족해 각각 작품의 연관을 알기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애초에 꾸린 큰 틀은 여전히 마음에 들어 새 판을 깔아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1년' 작품들 중 4월을 주제로 한 작품 제목은 <1년 - 4월, 가장 잔인한 달>입니다. 올해 4월 날씨는 유난히도 변덕이 심해요. 예보에서는 4월부터 여름이 시작될 거라 했고, 정작 맞닥뜨린 4월은 비가 많이 내렸고. 벚꽃이 피었고, 벚꽃 위로 눈이 앉았고. 볕이 쬐더니 이따금 바람은 찬 공기를 머금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왜 가장 잔인해야 했을까요?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사용한 표현을 차용한 것입니다. 시의 본문이 길어 가져오지는 않고요. 그에 기반한 제 작품의 의도를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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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달, 4월. 시인 토머스 엘리엇(T.S.Eliot)은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이야기한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어준 겨울은 차라리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봄은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고 익숙한 아픔과 조우하는. 어쩌면 가장 힘든 날들인지도 모른다. 하릴없이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젊은이에게 맑은 하늘은 무슨 기대를 줄 수 있는가. 생의 마지막을 앞둔 노인에게 20대 청춘의 '숨'은 부러움 그 자체다. 절대적인 슬픔과 고통은 없다. 그것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직설적이다.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눈부신 4월은 어떤 이에겐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괴로움이 된다. 스물세 개의 알, 아직 깨어나지 못한 우리. 하지만 슬픔과 고통, 괴로움은 결국 깨어질 얇은 껍데기일 뿐.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자. 곧 빛을 내며 깨어날 것이니.

<1년, 4월 - 가장 잔인한 달> 김용호

 

여러분의 4월은 어떤 모습인가요? 예고된 무더위, 피어난 벚꽃, 그 위로 내려앉은 눈송이, 기어이 내리쬐는 볕, 바람이 싣고 온 찬 공기. 무엇이 됐든 끝끝내 바라는 모습이길. 그럼에도 과정이 지난하지는 않기를.


 

 

글을 쓰는 건 4월 16일 수요일입니다. 4월 16일이 수요일이었던 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에요. 큰 사고가 벌어진 날 말입니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한 날, 대부분의 사람은 긴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날 있었던 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커다란 충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당시 디자이너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주요 업무는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일이었습니다. 통계나 정보를 그림으로 옮기는 일이었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 업무를 하는데, 동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뉴스를 접했습니다. 대회의실에 모여 진행하던 업무를 모두 중단하고 사고 관련 속보를 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업무 지시하던 대표의 눈빛은 들떠있었습니다. 이걸 기회라고 생각하는 걸까.

침몰하는 배를 일러스트로 그리고 뉴스에서 카운트되는 사망자 수를 기입했습니다. 괴롭더라고요. 그렇게 한동안 관련된 뉴스를 시각화하는 일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쓰던 메신저 상태 창에 '사고를 컨텐츠로 이용하지 마세요'라고 써뒀는데, 대표가 "용호 주임은 마인드가 좋다"라고 칭찬하더군요. 그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일하다 보면 그런 거 있지 않나요? 하면 하는데, 과정이 번잡스러워 손이 잘 가지 않고. 일정이 너무 빠듯한 건 아니라 미루려면 미뤄도 되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저거 얼른 해야 하는데...'하는 일이요. 너무 설명이 복잡했으려나요? 그러니까, '앓는 이'처럼 여겨지는 일이요.

지금 하는 일 중에 특히 지원 사업들이 그래요. 역시 나랏돈 받아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증빙을 해야 하는데, 그것마다 필요한 서류가 제각각인데다가 증빙자료 업로드하는 사이트가 되게 복잡해요. 그리하여 제가 보름 정도 계속할 일을 미루고 있습니다. 호호. 미룰 만큼 미룬 것 같아서 다음 주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들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 거예요. 우리가 걱정하고 막연하게 어려워하는 것의 대부분은 막상 부딪혀보면 별게 아니라는걸요. 이 지원 사업은 지난해에 해본 거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시작만 하면 알아서 굴러갈 거예요.


 

 

한 주간 많이 들었던 음악을 늘어놓는 작담 플리 2025년 4월 셋째 주, 작담 플리를 전해드립니다.

<김창완 -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Balming Tiger - Armadillo(feat.Omega Sapien, Byung un)>, <루시드 폴 - 아직, 있다.>, <Sufjan Stevens - Mystery of Love>, <Ok Go -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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