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목요일 저녁, 구독자분들께 전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전라북도 부안에 있어요. '부안'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지인들은 대체로 "부산? 무안? 부안이 어딘데." 같은 답을 합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일 거예요. 부안은 텔레비전 뉴스에 잦게 오르내렸습니다. 좋은 소식은 아니었죠.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핵 폐기물 처리 시설을 유치하겠다는 부안 군수와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주민들의 대치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당 시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릅니다. 자극적인 워딩처럼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는지, 철저하게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지요. 주민의 91%는 반대를 했답니다. 치열한 대립 끝에 결국 핵 폐기장 건설은 전면 백지화됐습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났고, 부안은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발전된 모습이 없다는 거예요. 핵 폐기장을 지었다면 꽤 큰 지원금을 받았을 테고, 어떤 형태로든 달라졌겠지요. 그렇다면 사업은 실행되었어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스쳐가는 저는 판단하기 어렵지요. 호작담이 있는 동네는 아마 곳 재개발이 본격화될 거예요.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겠죠. 쾌적한 동네가 들어서겠죠. 무엇이 옳은지 저는 모릅니다. 내쫓기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수많은 원망뿐입니다.
저는 부안을 '시골'이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때 '나 추석 때 시골 가'의 그 시골입니다. 부안은 제 부모님의 고향이에요. 오랜만에 휴가 얻은 어머니는 이모네 집에 가고 싶다며 꽤 오래전부터 저를 운전기사로 예약해두셨습니다. 저도 별말 없이 다녀오자고 했어요. 효자가 아니지만 이 정도는 해야 그나마 욕 안 먹을 것 같아서. 호호. 이 무렵이 이렇게 바쁠 줄 몰랐어요. 지난 한 달 동안 집에 못 간 날이 절반 정도고, 절반의 절반은 새벽에 귀가했는걸요. 외부 강의, 행사, 주문 같은 것들이 절정에 다다르는 시기라서 말이에요. 지금은 부안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고요. 곧 이모네 집으로 이동해서 다른 원고를 써야 합니다.
부안에는 변산반도가 있어요.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국내 유일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국립 공원으로 멋진 기암괴석이 있고 아마 공룡발자국도 있을걸요?(아닐지도) 아무튼. 저는 부안에 바다가 있는 걸 성인이 돼서야 알았습니다. 할머니 계시던 큰집은 바닷가와 거리가 멀었고, 저를 바닷가에 데려가 준 어른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아마 이번 여정에도 바다는 볼 수 없을 거예요. 내일 밤 부지런히 인천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주말에 참여하는 마켓 준비를 하나도 못했거든요.
<변산>이라는 영화를 아실는지요? 이준익 연출, 박정민과 김고은이 주연한. '이준익 연출작 + 제목 = 사극' 당연히 이 공식을 떠올렸건만 전혀 아니더라고요. 박정민 배우는 극 중에서 무명 래퍼로 쇼미 더 머니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셔요. 영화를 위해 랩을 배웠다는데 실력이 꽤 좋습니다. 그의 곡 '노을'에서는 그가 자란 변산(부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노랫말 읽으며 연신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고향을 아니까. 그래도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어요. 상관없는 말이지만 요 며칠 많이 듣는 노래 중에는 아이유의 '마음을 드려요'가 있는데, 첫 노랫말이 '당신에게 드릴 게 없어서 나의 마음을 드려요'예요. 드릴 게 없을 때 꺼내주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아름다울 수밖에요.
글을 매듭짓는 중에 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어둠이 내렸는데 언제 돌아오냐고요. 사실 어머니는 지금 사촌 형 가게에 계시는데, 제가 다시 이모네 집으로 모셔가야 하거든요. 운전기사 업무 마치러 저는 물러가보겠습니다. 늘 기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댓글 다시는 거 조금도 귀찮거나 번거롭지 않습니다. 개의치 마시고 편히 읽고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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