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글의 제목 '오빠가 돌아왔다'는 2004년 발간된 김영하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를 차용했습니다. 사실, 돌아온 건 오빠가 아니라 누나거든요. 제가 사랑하는 라디오 DJ 삼대장 중 한 명이 돌아왔어요!
여러분을 키운 건 무엇인가요? 저는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나를 키운 8할은 라디오'라고 말했습니다. 명확한 비율 같은 건 영영 알지 못하겠지만, 분명 저는 라디오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처음 라디오를 접한 열일곱 이후로 생각과 취향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고요, 그때 차분하게 쌓인 것은 여전히 몸과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디오는 매일 방송하는 터라 다루는 분야가 참 넓어요. 사연자 편에서 고민 상담하지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임경선 작가, 영화의 줄거리뿐 아니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주던 이동진 평론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군침 돌게 맛집을 소개하던 노중훈/이현주 작가 등등. 그러니까 라디오 들으며 음악, 영화, 책, 인간관계, 맛집까지 오만가지 취향을 탐닉할 수 있었던 거죠. 십 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하던 그때요.그러면 열일곱 이전에 가졌던 건 무엇이냐 물으면, 글쎄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아, 어린 시절 저는 힙합을 좋아했습니다. 그것도 꽤 딥한 편이었습니다. mic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적진으로 돌격해 적장의 목을 벨 준비가 늘 되어있었더랬죠. 호호.
처음 라디오 틀었던 때를 기억해요. 고등학교 1학년 야간자율학습 시간. 공부할 마음은 없고, 그렇다고 도망갈 용기도 없었던 저는 mp3 속 반복되는 노래에 싫증을 느끼고 라디오를 틀었지요. 우연히 들은 방송은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였는데, 라디오라는 매체가 참 이상했습니다. 텔레비전과 다를 바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데,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 것 같은지 말이에요. 그래요, 라디오는 유난히 '우리'라는 소속감을 심어주는 매체였습니다. 그저 엉뚱한 동안의 배우로 알았던 최강희는 청취자들에게 살갑고 다정했습니다. 저는 본래 연예인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요.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지 가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없고,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보면 그 자체의 여운에 젖을뿐 그들의 사생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생긴 거지요. 그들은 '우리'의 울타리에서 만난 것이니까요.
이후 여러 방송과 디제이를 거쳤고, 저의 최애 삼대장은 굳어졌습니다. 성시경, 유희열, 유인나.
네, 누나가 돌아왔어요. 유인나 디제이가 돌아온 거예요. 정식 라디오는 아니고, 라디오 방송을 콘텐츠로 삼는 '유인라디오' 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어요. 첫 방송이 업로드되었지만, 아직 듣지 않았습니다. 몰입하기 좋은 때에 듣고 싶어서 애써 외면하는 중이에요. 영상은 멈춰놓고 댓글을 슬쩍 내려봤습니다. 모두 그 시절 라디오를 들었던 이들이더라고요. 모두 무탈하셨는지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다가 이렇게 다시 모이셨는지요.
또 다른 최애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은 2011년에 막을 내렸습니다. 몇 년 뒤, 특집으로 라디오천국이 부활한 적 있어요. 라디오는 가끔 이런 이벤트를 합니다. 그때 게스트로 출연한 임경선 작가에게 유희열이 물었어요. '우리 방송 이후 섭외가 물밀듯 밀려온 걸로 아는데, 왜 다른 방송에 한 번도 안 나간 건가요?' 임경선 작가는 여전히 냉소적인 말투로 '다른 방송에는 유희열이 없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라디오 키드로 자랐지만 라디오를 안 들은 지 오래됐어요. 내 최애들이 자리를 비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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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 빛>, <신인류 - 날씨의 요정>, <Yuika - 好きだから。>, <선우정아 - 백년해로>, <Clay and Friends - Going up the Co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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