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물결이가 죽었다

이불, 수영, 돌멩이

2025.06.27 | 조회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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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담이 통신

목수의 아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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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오래는 아니고 몇 개월. 생면부지 사람들과 채팅방에 모여 매주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방식의 글을 썼어요. 글 쓰는 게 직업이고, 좋아하지만. 글 쓰며 얻는 행복보다는 드러누워 아무것도 안 할 때 더욱 행복했기에 미약한 규제와 통제를 원했습니다. 너무 바빠 결국 그만뒀지만...!

오늘은 그때 쓴 글 하나를 펼쳐놓습니다. 절대 절대 새 글쓰기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알아주시고요. 아시죠? 메모 앱 뒤적이다가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어버리면 어딘가에 올려야 하니까요. 호호. 글쓰기 미션은 1,000자 소설이었어요. 거기에 세 가지 주제어를 포함해야 했습니다. '이불, 수영, 돌멩이'


 

 

  물결이가 죽었다.

  내내 푸르던 이파리는 하루아침에 잿빛으로 변했다. 지난 밤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골몰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문제가 아니겠지. 아주 긴 시간 서서히 잠식된 걸 거야.

  아침 수영 향하는 걸음은 늘 혼돈으로 가득하다. 여전히 비몽사몽인 채 초급반 레인 앞에서 스트레칭할 때면 ‘내가 무엇을 위해 잠까지 줄여가며 몸도 가누지 못하는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하지?’ 생각만 떠오를 뿐. 같은 반 수강생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속마음을 짐작게 하는 무표정을 짓는다. 뾰루퉁. 친구 군휘는 같은 아침반을 수강하지만, 등급 차이가 나는 터라 제일 끝 레일에서 자유 수영을 한다. 수업 시간이 끝난 뒤에야 만나 내 동작을 지적하는데, 그 와중에 물속을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보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고교 시절부터 한결같이 믿음이 안 가는 친구였다. 한편으로는 공감하고 싶지만, 아마 긴 시간 어렵겠지. 어쩌면 평생.

  수업 마치고 샤워를 하면 머리는 바싹하게 말리기 어렵다. 하나뿐인 드라이어를 사유하는 건 여러모로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다. 덜 마른 머리로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 유난히 덜컹거리는 지하철 속에서도 사람들은 균형을 잘 잡는다. 무표정한 채로. 물속에서 비틀거리는 내 모습이 번뜩 떠올라 부끄러웠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수영으로 밥벌이할 것도 아닌데 뭐. 익사만은 면하려 발버둥 치느라 잠시 잊었던 물결이가 떠올랐다. 물결이의 품종은 피쉬본. 생선 뼈와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처음부터 나는 굴곡진 물결 같다고 생각해 이름을 지었다. 내가 물에 떠오르는 걸 익히는 동안 물결이는 가라앉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수영장 수질이 안 좋은 걸까. 내가 매끈한 수영장 바닥을 딛고 일어날 때, 물결이는 까끌거리는 화분 속 돌멩이를 내딛고 있었겠지. 애먼 이름만 물결이라 짓고 정작 흠뻑 헤엄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진 못했구나.

  출근길 지하철은 콩나물시루와 다를 바 없지만, 탑승 역이 시발점이라 내내 앉을 수 있어 좋다. 아침 수영의 고됨을 위로받는 지점. 신도림역에서 문이 열리자 일제히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썰물 같았다. 내리는 이들과 타려는 이들이 부딪혔다. 파도 같았다. 퇴근하면 물결이는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아야지. 버린다는 말은 조금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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