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순간을 믿어요

여전히 영원을 믿는 당신에게

2024.11.22 | 조회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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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담이 통신

목수의 아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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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무언가를 좋아할 때 어떤 한순간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라고요. 네, 제가 좋아하는 것의 맥락은 그렇습니다.

일례로 저는 배우 봉태규를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 활동을 잘 알지 못하고, 재밌게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광식이 동생 광태'라는 영화 정도예요(사실 극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도 김주혁 배우가 맡은 '광식' 역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일상을 아는 것도 아닙니다. 연예인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 않아서요. 봉태규 배우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온 적이 있어요. 무대에서 과거 본인이 불렀던 OST '처음 보는 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의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말끔히 차려입은 캐주얼한 정장과 기교 없이 꾹꾹 눌러 담아 전하는 이야기 같은 노래가 참 좋더라고요. 가끔 그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봅니다. 여전히 그의 작품과 일상은 모르지만, 저는 봉태규라는 인물을 좋아한다고 곧잘 말합니다.


 

얼마 전에는 근처 공간에서 운영하는 영화 관람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그러고 보니 맨날 내 프로그램 운영만 했지 남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었네요. 제가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립니다. 호호. '행복한 라짜로'라는 영화에 관해서는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게다가 제목이나, 포스터, 배우까지 흥미로울 요소도 찾지 못했고요. 근데, 영화가 좋아 점차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난 뒤 왓챠피디아 라는 앱으로 별점이나 코멘트를 달아 기록해두는데요. 꽤나 별점에 인색한 편임에도 5점 만점에 4점을 줬습니다. 영화의 재미만 생각했다면 3점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영화 끝나고 함께 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감상을 나누고, 어떤 부분에 관해서는 의도를 파악해 보기도 하고요. 즐거움이 부풀었어요. 저는 영화나 책 같은 이야기의 소임은 '화두', '매개'라고 여겨요. 이야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 하여금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역할 한다면 만듦새와 별개로 기능을 한다는 거죠.


 

2000년대 초반 감성 물씬한 앨범 커버죠? 군 시절에 이 CD를 사들고 휴가 복귀한 일이 있습니다. 소녀시대나 카라를 기대한 부대원들의 갖은 구박과 야유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려요.
2000년대 초반 감성 물씬한 앨범 커버죠? 군 시절에 이 CD를 사들고 휴가 복귀한 일이 있습니다. 소녀시대나 카라를 기대한 부대원들의 갖은 구박과 야유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려요.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순간을 믿어요'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제 와서 꿈속을 헤매어본들 어디에도 너는 없을 거야. I saw something 너의 달콤했던 말. I saw something 너의 영원한 미소 그리워. 이 순간들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게 기쁨이 더 많았어.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

이 곡은 제 기억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군 입대를 앞둔 시점에 가장 즐겨 들었더랬지요. 지금은 습관처럼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틀이 짜여 있다고 여길 때가 많아요. 그래서 좀 더 새로운 거 없나? 무심하게 다른 플레이리스트로 넘기지요. 무심히 스쳐간 타이틀 속에는 얼마나 애틋하고 반듯하며 고요하고 벅찬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을까요? 반면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도드라진다는 사실에 벅차게 기뻐하며 즐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정말 순간을 믿는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지요.


 

쓰다 보니 한 가지 더 생각이 나네요. 많은 이들이 혹평하는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왓챠피디아 별점은 4.5점을 줬어요. 영화의 후반부, 소년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주 어릴 때 돌아가신 엄마를 마주하게 되고. 사건이 절정에 다다르자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의 세계로 돌아가면 엄마는 죽어요. 그러니 나의 세계로 가서 함께 살아요' 엄마는 이렇게 답해요. '아니, 나의 세계로 가서 널 만나야 해. 그러니 죽음 같은 건 두렵지 않아'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중반까지 이어져오던 지루함 같은 건 없던 일이 됐습니다. 모두가 하품 쏟아내던 상영관에서 저는 유일하게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지요.


 

제 글을 오래 봐온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말합니다. 감성도 물성도 모든 건 결국 변하고 말아요. 그 속에서 중요한 건 방향이겠지요. 변하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옳은, 나은 것을 향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원 대신 순간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쌓인 순간은 곧 영원으로 나아가겠지요.


 

한 주간 많이 들었던 음악을 늘어놓는 작담 플리 2024년 11월 넷째 주, 작담 플리

<찰리빈웍스 - 우리 사랑은!>, <산울림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Peach pit - Tommy's party>, <이찬혁 -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윤지영 - 언젠가 너와 나(Feat. 카더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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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옥옹

    0
    5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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