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지루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그는

원래 그렇다는 말은 말고

2025.08.15 | 조회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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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마치고 2주 만에 돌아온 작담이 통신입니다. 무탈하셨는지요?

지난 며칠, 인천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작업하던 중 걸려온 엄마의 안부 전화에 비가 많이 오긴 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호작담에서 가까운 도로가 침수됐다는 걸 SNS 영상 통해 봤습니다. 같은 길을 몇 시간 전에 지났는데, 금세 그렇게 되었더라고요. 호작담 꾸리며 몇 차례 물난리가 난 적 있지만, 비 때문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구독자 여러분도 비 피해 없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8월도 벌써 절반에 다다랐습니다. 입추 지나며 이른 아침과 깊은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더라고요. 곧 또 새 계절을 맞겠죠. 남은 계절과 새 계절의 우린 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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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안 좋아하는 말이나 표현이 있으신가요? 제 경우에는 '원래'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나는 원래 그래." 이 짧은 한 문장에 숨이 턱 막히곤 해요.

저는 이따금 말합니다. "나는 원래라는 게 그런 거라 생각해. 눈이 두 개, 코가 한 개. 그리고 입이 하나인 것. 그런 걸 '원래'라고 하지, 타인에게 쌀쌀맞게 구는 것이나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확인하지 않는 걸 '원래'라는 말로 수식할 수 없는 거야."라고요. 바꿀 수 없는 것.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원래 그런 거라고요.

몇 가지 말은 쓰레기통 같거든요. 지저분하다는 뜻이 아니고. 이전에 어떤 쓰임이었든, 어떤 생김새였든 간에 쓰레기통에 들어가면 쓰레기가 되어버리잖아요. 이를테면 '스트레스성' 같은 말이에요. 모든 말이 스트레스 때문입니다.라고 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두통이 너무 심해요. 소화가 안돼요. 잠을 통 못 자요. 물론 스트레스는 현대인 정신에 악영향 끼치는 주요 요소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요.

제 경우에는 원래라는 말도 그렇게 여깁니다. 난 원래 그래. 그러니까 개선될 수도 없고, 나아질 거라 기대하지 말라고 느껴지는. 다른 이에게는 '원래'는 또 다른 의미가 되겠지요? 이런 거 좋아해요. 같은 걸 다르게 보며 나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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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책을 안 읽다가 최근 새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김영탁'이더라고요.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면서 작가에 대해 찾아봤거든요? 영화감독 김영탁이었습니다. 모두가 알만한 흥행 감독도 아니에요. 제가 이 감독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감독의 영화로는 차태현 주연의 <헬로우 고스트>, <슬로우 비디오>가 있습니다. 잔잔한 휴먼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이 감독을 기억하는 이유는 MBC 예능 라디오 스타에 나와 그가 했던 말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로 성공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은 되게 지루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걸 만들려면 성공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고요. 사진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이 감독 되게 순하고 약간 멍한 표정을 잘 지으시는데, 그 이야기할 때는 눈이 반짝였어요. 그래서 며칠 뒤 <슬로우 비디오>보러 극장에 갔었고, 가끔 그 감독은 지루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해하곤 했습니다. 필모를 보니 그 뒤로 영화를 만들진 않았네요.

새로 붙든 김영탁 작가의 책 제목은 <곰탕>입니다. 타임슬립 SF 소설이에요. 곰탕 레시피를 얻기 위해 2060년대에서 20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300페이지를 조금 넘겼으니 1/3 정도 읽었네요. 지루하지 않습니다. 감독님은 지루한 영화를 포기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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