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는 산문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생애 첫 계약금을 받았다. 책을 사고 싶었다. 가장 익숙한 서점에 들러 여기저기 시선을 던지다 눈에 들어온 이름 하나. 최진영. 그리고 그 옆에 나란한 낯익은 이름들. 제목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펼쳐보지도 않고 집어들었다.
그 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원룸의 건조함과 훈기를 동시에 느끼면서 책을 펼쳐들고 앉았다. 최진영 작가의 글이 첫 순서로 실려 있었고, 나는 두어 장 채 넘기지도 않고 직감했다. 이 글을 다 읽으면 겨울을 마냥 미워할 수는 없겠구나. 그리고 다시 슬퍼졌다. 나처럼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당신과 이 글을 함께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깨달음과 함께 애도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애도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사랑을 애도하는 달인이 될 법도 한데, 전혀 능숙해지지가 않는다. 괜찮지 않다. 원망스럽고 속상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미운 것 또한 아니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다.
한번 좋아하면 미워하기가 어렵다. 힘이 든다. 미워하지 못해서 마음이 더 깎인다. 이 사랑을 지키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이 더 크게 자라난다. 결국 당신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고, 나는 싫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랑과 사람을 잃을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하루를 살아야 이 상실을 겪지 않을 수가 있는 건지.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고 얼마나 최선이었든 떠날 사람은 떠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한동안 '만약에'에 갇혀 지내게 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은 어느새 모두 휘발되었다. 오로지 내가 나에게 쏟아붓는 비난의 목소리만 남아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조차도 쥐여주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다시 또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겠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당신뿐이어서 나는 영영 이 상실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당신이 빠져나간 모양대로 난 구멍을 마주할 때마다 당신의 안녕을 기원하겠지. 당신의 마음에도 내가 남긴 구멍이 하나쯤은 있기를, 아니, 그런 건 생길 틈도 없었기를. 그러니까 나보다 당신이 더 완전하고 온전하기를.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