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WC가 진행 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또 하나의 굵직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동안 물밑에서 준비해오던 빅 뉴스를 EWC 기간에 집중적으로 터뜨리고 있는 듯 합니다. 덕분에 이번주 Weekly Esports는 e스포츠 올림픽 특집처럼 되어 버렸네요. 그래도 창단 20주년을 맞아 '명가'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공개한 T1의 소식은 집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IOC, 사우디에서 e스포츠 대회 개최?
지난 7월 12일부터 e스포츠 올림픽이라는 떡밥이 전세계적으로 화제입니다. 이 소식의 근원지는 현재 EWC(e스포츠 월드컵)가 열리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인데요.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IOC의 발표문 중에는 해설이 필요한 대목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몇 부분들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토마스 바흐, 게임 타이틀을 강조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말입니다.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 사우디와의 협력을 통해 대회에서 사용될 게임 타이틀, 성평등 촉진, e스포츠를 좋아하는 젊은층과의 연결 등 올림픽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평등, 젊은층과의 연결은 잘 알려진 올림픽의 가치들입니다. 그런데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올림픽 가치와 '게임 타이틀'을 연결했는데요. 이 부분에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실 토마스 바흐는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종목이 된 e스포츠에 대해서 'e스포츠의 올림픽 정식 종목화'를 반대한 사람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IOC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생각의 변화를 맞이했고, 지난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앞서 '올림픽 버추얼 시리즈', 2023년에는 종목을 확장한 뒤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를 개최했습니다.
이 대회들은 e스포츠의 형태를 띄고 있으나 올림픽 종목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게임들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특이점입니다. 특히 사이클의 즈위프트는 사실 게임이라기보다는 훈련용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 강하죠.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리그오브레전드>나 <발로란트> 같은 게임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범 종목으로 진행된 <스트리트 파이터 6>는 격투기로 간주된 듯 하네요.
아무튼, 토마스 바흐는 이번 발표에서 '게임 타이틀'을 강조했습니다. 세부 사항은 이후 많은 논의가 있겠지만, IOC는 스포츠 기반으로 올림픽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게임들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를 비롯해 <카운터 스트라이크 2>, <발로란트>, <PUBG> 등 총기를 활용해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는 FPS 게임들이 올림픽과 연계된 e스포츠 대회에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뜻이죠.
IOC, 사우디의 정책을 크게 홍보해주었다
이번 발표는 IOC가 했지만, 사우디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PR이나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파트너십이나 합의에 대한 성명문이나 보도자료는 '상호 컨펌'을 원칙으로 합니다. 한 쪽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실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우디 측은 이번 발표에 자신들이 홍보하고자 하는 부분들을 많이 싣고자 했고, IOC 역시 그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이번 발표에는 사우디의 정책, 그 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IOC 위원이자 사우디 여성 위원회 회장인 리마 반다르 알 사우드 공주는 "Vision 2030을 비롯해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의 지도 아래 여성의 권한이 많이 강화되었고, 스포츠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전 세계 여성들이 '안전하고 포용적인 공간(safe and inclusive space)'에서 열리는 올림픽 e스포츠 대회에 더 많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 뉴스레터에서도 몇 번 언급된 바 있지만 사우디가 Vision 2030, 네옴시티, 키디야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석유 시대 이후를 준비하고 있고, EWC 같은 게임 e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이슬람 국가의 이미지를 바꾸고자 한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아라비아는 서구권에서 'e스포츠워싱'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성소수자, 여성의 인권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지만 e스포츠를 통해 이미지만 바꾸려 한다는 비판이죠.
실제로 이번에도 Esports Insider는 기사 말미에 'e스포츠워싱'에 대한 내용을 또 언급했습니다. 발표문을 인용하는 단순 전달 보도임에도 마지막에 굳이 이 내용을 넣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IOC와 사우디 역시 서구권의 이런 분위기를 모를리가 없기 때문에 사우디 측에서 요청한 Vision 2030, 여성 인권에 대한 내용을 발표문에 대거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사우디의 정책 홍보와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한 포장이 너무 과했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들을 빼고 발표문을 다시 보면, 'IOC가 사우디와 12년 동안 정기적으로 열리는 올림픽 e스포츠 대회 개최에 대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IOC, 별도의 재정과 조직을 강조했다
그나마 산업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은 IOC 발표문 마지막 단락입니다. '별도의 재정', '별도의 조직'을 특별히 강조하는 모습이었는데요. 간략히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 IOC 내에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질 것이며, 이 조직은 기존 올림픽 대회의 조직 및 재정 모델과 명확히 구분된다.
- 올림픽 e스포츠 대회만의 특성을 고려한 재정 및 조직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앞서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게임 타이틀'을 언급하며 올림픽 정신에 어울리는 게임들을 대회에 포함시킬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마지막 단락은 많은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근거는 '기본과 구분되는 재정'입니다.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결국은 돈이 중요합니다. 세계 평화, 인류 화합도 중요하지만 이런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누군가가 먼저 돈을 써야하는 비즈니스이기도 합니다.
IOC는 e스포츠를 위해 신설되는 조직이 '기존 올림픽 재정 모델과 구분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의 100% 추측이지만, '우리 돈 안 쓴다'는 선언일 수도 있습니다. '재정은 사우디가 책임진다'는 해석도 가능하죠.
두 번째는 '별도의 조직'입니다.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무려 12년 파트너십을 맺은 사우디가 조직의 헤게모니를 가져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사우디 e스포츠 연맹이나 EWC 같은 단체들이 대회에 대한 전반적인 결정사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IOC과 사우디가 생각하는 '올림픽 e스포츠 대회'의 모습이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부분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우디 e스포츠 주요 관계사와 관계자들은 IOC의 발표 직후 SNS를 통해 다양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분위기를 돋우는 모습이었는데요. 이번 IOC와의 파트너십에 사우디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단 20주년 T1, 다큐멘터리 '명가' 공개
T1이 창단 20주년(2004년 창단)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명가'를 14일, 공식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황제' 임요환과 '페이커' 이상혁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썸네일은 T1 팬은 물론, T1 팬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e스포츠 팬이라면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거의 세 시간에 육박하는 러닝 타임과 함께 영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20년 역사 속 T1을 대표하는 두 종목 <스타크래프트>와 <리그오브레전드> 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요. 오래된 e스포츠 팬들에게는 추억으로, 요즘 e스포츠 팬들에게는 역사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반가운 얼굴도 정말 많이 나옵니다. T1 선수들 외에 라이벌이었던 다른 팀 선수들이 등장해 T1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시청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팀이 20년의 기간 동안 유지되고, 대세 종목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레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 대단한 일로 느껴집니다. 축구, 야구, 농구에는 이보다 더 오래된 팀들이 많지만, 이렇게 꾸준히 최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팀이 있을까 싶습니다.
T1에 대해서는 많은 측면에서 평가를 할 수 있겠고, 이번 다큐 역시 여러가지 감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역사를 정리해서 '명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게임단이 있다는 사실이 대단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T1과 함께 이동통신사 라이벌로 <스타크래프트> 시절 e스포츠 산업의 발전과 흥행을 이끌었던 kt롤스터가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당시 기자로 현장을 누비며 두 팀의 라이벌리를 직접 경험했었는데요.
우리나라 e스포츠에서는 T1과 함께 kt롤스터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kt롤스터는 T1보다 5년이나 앞선 1999년 창단되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게임단입니다. 그리고 T1와 kt는 한 때 라이벌전 승리시 별도 승리 수당을 지급하는 등 정말 뜨겁게 경쟁했었습니다.
T1 다큐 얘기하는데 왜 kt 얘기를 하냐며 불편해하실 수도 있어서 말을 아끼겠습니다(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역사와 전통'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kt롤스터 역시 그 어렵고 소중한 것을 25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프로게임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남기고 싶습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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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빙
안불편합니다 ! 오히려 조심스러워 하시니, T1이랑 KT의 라이벌리에 대해서 궁금해졌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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